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월드가 드디어 끝나고 기나긴 시즌이 끝났다.
올림픽 다음 시즌이라 약간 맥이 빠진 감도 있지만 생각 외로 재밌었다.
이대로 넘어가면 다 잊어버릴 것 같아 그냥 내 멋대로 간략 감상~
먼저 남싱부터~
챈 우승.
작년 올림픽 때의 연아처럼 한마디로 '압도적'이다.
이놈아!!! 작년 올림픽 때 이렇게 좀 타지.
그랬으면 역사상 가장 매력없고 포스 없는 눈이 썩는 올챔이 나왔다는 한탄은 안 해도 됐을 것 아니냐!
소치 때 이 정도로 해주면 러시아가 아무리 초강력 티타늄 철판을 둘러쓰고 편파 판정을 해도 금메달은 이 청년의 것인데...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얼마나 유지하고 올라가느냐가 관건이겠지.
정말 오랜만에 눈이 시원~해지고 가슴이 뻥 뚫리는 남싱 경기를 봤다.
스케이팅이란 바로 이런 것이야~
남싱으로 한창 전성기에 접어들 나이라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중~
코즈카 2위.
바로 며칠 전인데... 2위가 누구였더라? 잠시 가물가물... ^^;
그만큼 존재감이 좀 부족한.... 그렇지만 2위라는데 누구도 딴지를 걸기는 힘든 깔끔 + 매끈 + 모범적인 연기였음.
이번 결과로 알을 좀 깨고 나오면 정말 일취월장을 할 것도 같은데...
몇년째 알에서 좀 나와~~~~를 외치다보니 솔직히 나도 좀 지쳤다.
가친스키 3위.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오다의 삽질 + 러시아의 가공할 위력이 결합된 결과.
처음 러시아 국내대회 나와서 1,2위한 형아들의 옆 3위 자리에 반토막(정말 키가 딱 반토막이었다)만한 귀여운 꼬꼬마 시절부터 관심있게 보면서 잘 크라고 고사를 지냈고 지금도 많이 사랑하긴 한다만...
러시아 대회였기에 네가 3위를 했다는 걸 부디 각골명심하고 앞으로 정진하길.
근데... 이놈은 동문 사형에게 닮으라는 거 -무시무시한 컨시-는 안 닮고 닮지 말라고 비는 것-갈수록 커지는 코와 스핀. ㅜ.ㅜ- 만 닮고 있다는. 네 사형 스핀이 구리긴 했지만 그래도 네 나이 때는 비엘만도 돌아주셨단다.
불가능한 바람이다만... 너도 안무가 좀 바꾸면 좋겠다.
아쉬운대로 미쉰 할배랑 타라소바 아줌마랑 조인 좀 하면 안 될까?
몇년에 한번 보기 힘든 불운을 만난 다카하시에다가 동메달을 눈앞에서 날린 오다의 코메디까지. 코즈카를 제외하고 일본 남싱들에게 불운한 날이었던듯.
그나저나 데니스 텐은 재작년엔 엄청 치고 올라올 것 같더니 영 지지부진이네.
민석이도... 평소 정도로만 했으면 프리 경기는 할 수 있었을 텐데.
날짜 바뀐 게 민정이도 그렇고 민석이도 그렇고 완전히 리듬을 망친 것 같다.
그래도 올 시즌에는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
김민석 화이팅!!!
간만에 정말 좀 볼만했던 페어~
1위 사부첸코&졸코비
2008년 월드 때는 유럽이니까 우승이지 아니면 턱도 없었소~ 라고 비웃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금메달은 당연히 댁들의 것!!!! 이라고 닥치고 인정.
정말 오랜만에 페어 경기를 보면서 가슴이 설렜다.
러시아 전성기 때의 페어팀들과는 또 다른 맛이 있는... 솔직히 이 페어 팀 스타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왜 심판들이 좋아하고 또 인기가 있는지 처음으로 알 것도 같다.
자신들의 기량을 적당한 타이밍에 최고의 경기로 잘 터뜨렸음.
2위 볼로소자 & 트란코프
월드 전에 피겨 수다를 떨 때 이번엔 3위, 다음 시즌부터는 강력한 우승 후보가 아닐까 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2위 등극을 했다.
홈빨의 덕을 전혀 안 봤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어느 나라에서 해도 충분히 나오는 수준이니 이 친구들은 인정!
서로 능력 모자란 파트너와 함께 고생하다가 같은 레벨을 만나니 정말 시너지 효과가 장난이 아니다.
다음 시즌이 정말로 기대되고... 탈없이 성장하면 캐나다와 함께 양대산맥을 이루는 러시아의 홈 어드밴티지를 더해서 강력한 올림픽 금메달 후보가 될 것 같음.
3위 팡 & 통
초반 실수가 좀 아쉬웠다.
일본에서 월드가 열렸다면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라는 후광효과까지 붙어서 그럭저럭 2위는 할 수 있었지 싶지만... 여긴 푸짜르의 나라~
이 팀도 한 2-3년 전부터 껍질 깨고 나온 느낌이 있는데... 테크닉과 상관없이 생긴 아우라가 참 좋다.
러시아 피겨 몰락 이후 암흑이었는데 역시 오래 도를 닦으면 뭐라도 된다고 중국 피겨가 그래도 옛 러시안 스쿨과는 다르지만 조금씩 맛이 생기는 느낌.
등수와 상관없이... 내가 애정하는 바자로바 커플.
바자로바 네 이X !!!!! 너 점프 연습 안 할 거야!!!!!
이제 몇년간 100m 고르디바란 소리를 들었으면 이젠 10m 고르디바 소리는 좀 들어야지!!!
한국 웹을 싸움판으로 만들어 놓은 여싱. ^^;
올해 월드 여싱은 나가노 올림픽 때 콴과 라핀스키 팬의 불을 뿜는 대결 내지, 콴이 월드 첫 우승을 할 때 당연하다! 국적빨로 루첸이 물 먹었다!로 싸우던 그 판의 재현이지 싶다.
그때는 인터넷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하지만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그 얘기 나오면 당시 팬들이 편을 갈라 붐을 뿜는다. 아마 2011년 월드도 그 반열에 설 듯. ㅋㅋ
참고로 난 나가노 때는 라핀스키 우승이 맞다고 생각하고, 콴과 루첸의 대결에선 깻잎 반장의 차이가 국적으로 갈렸다고 봄.
1위 안도 미키.
이 블로그 오래 드나든 분은 아마도 아시겠지만 난 미키 좋아한다.
저번 4대륙 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점수 때문에 푸하하~하긴 했지만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온 그 저력이랄까 끈기도 그렇고 꾸준히 느는 스케이팅이며 전반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데... 이번 월드에 미키도 일단 자기 커리어 안에서 기념할만한 경기를 했다.
올 시즌 꾸준히 경기에 참가해 온 것 + 모로조프 코치 휘하라는 덕을 알게 모르게 봤다는 것 + 분위기가 암암리에 그녀쪽으로 몰려 연아양이 가산점을 짜게 받았다는 건 인정하지만 피겨라는 게 어쨌든 점수를 받는 경기이니 만큼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최선의 구성과 선택을 했고 그게 좀처럼 나오지 않는 연아양의 실수와 더불어 성공을 한 거다.
내셔널리즘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인 나도 많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건 2002년 소금호수 겨울 운동회 때나 2008년 예테보리 때처럼 뒷목 잡고 쓰러질 일은 아닌 듯. (이러다가도 찌질거리는 사람들 보면 평정하던 혈압이 살짝 상승. -_-+++)
2위 김연아.
기대는 했지만 솔직히 그 중압감과 공백을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13개월 동안 컴페티션을 쉬고 월드 나와서 2위면 다들 엄청나다고 칭찬을 해줘야 마땅하구만.
솔직히 지젤도 오마주 코리아도 내 취향은 아니다.
취향과 상관없이 오랜 피겨팬의 눈으로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따지자면 연아양의 커리어에서 걸작이나 전설로 남을 수준도 아닌 것 같다.
특히 오마주 투 코리아의 경우는 상업적인 고려를 더한 게 느껴져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는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상으로 잘 했다.
실수가 다른 때보다 많았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압도적'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앞서지 않은 그런 미묘한 경기에서는 늘 당해왔던 일이고 이번에는 그게 평소보다 한 번 정도 더 있었고, 또 그들이 미는 선수는 어쨌든 드러내놓고 잡아챌 실수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연아 이후의 피겨팬과 그 이전부터의 피겨팬으로 분류를 하면 전자들이 항상 미친듯이 분노를 하지만, 후자인 입장에서 난 정말 월드 때 우리 선수가 포디움이 오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감동이다.
퀄리파잉 통과만 해도 감지덕지였던 세월이 얼마인데.
올림픽 금메달 만으로도 84년 사라예보 때부터 시작된 내 피겨 팬 라이프에 정말 상상도 못한 큰 선물을 줬고 앞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도 그녀는 두고두고 우려 먹을 멋진 기억이다.
이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떨치고 유명세도 누리고 돈도 많이많이 벌면서 즐겁게 피겨를 하길~
근데... 연아를 교주로 모시는 열혈 광신도들 때문에 냉정한 팬이 되었는데... 기회는 이때다 하고 달려드는 반대 광신도들을 보니까 갑자기 없던 팬심이 형성 중. 역시 극과 극은 통하고 같은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
연아 이전엔 월드 본선 진출만 해도 다들 황감이었고, 피겨 출전하는 나라들 중에 올림픽은 고사하고 월드에 입상자 낸 나라가 몇이나 되는 줄 아냐!!고 열을 내려다가 생각해보니... 무조건 존재 자체가 싫다는데 어쩌겠음.
3위 카롤리나 코스트너
가장 의외였다.
난 레오노바 점수 나오는 거 보면서 '역시 푸짜르!'를 외쳤는데.... 복병이 뒤에 있었음.
점수를 보건대 누군가 살짝 삑사리를 냈던가, 친콴타와 푸친을 놓고 고민하다가 어차피 이태리에선 소치 때까지 카로 수준이 나올 리 없으니 마지막 예우를 하는 차원에서 친콴타에게 몰아준 게 아닐까 혼자 상상 중.
어쨌든 평소보다 덜 말아 먹었으니 차려준 밥상을 받은 거고 그것 역시 실력이라면 실력~
그녀 뿐 아니라 그동안 밥상을 차려 대령해도 차버린 경우가 한두번이었어야지.
레오노바... 네 평생에 월드 포디움에 설 수 있는 아마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은데... ^^;
시즈니... 점프 하나만 덜 실수했어도... 아니면 미국 월드였더라면... 그래도 멋있었어요~
미키의 1위와 상관없이 10위에 여싱 3명을 다 올린 일본이 부럽...
마지막으로 아이스댄스는 이제 지겨워서 간단히~
푸짜르가 모든 종목 포디움에 러시아 선수를 올리라고 했다던데 -믿거나 말거나~ ^^- 페어와 함께 가장 확실하다고 믿었던 아이스댄스에서 의외로 엄청난 삑사리가 나고 완전 미국의 판.
버추&모이어가 2위이고 데이비스 & 화이트 조가 1위라는 게 내겐 좀 충격과 공포이고 솔직히 아직도 납득이 가지 않지만 심판들이 더 정확하겠지~ 이러고 있음. 시부타니네의 3위는... 키미 마이즈너의 여싱 우승 때와 같은 소감??? 역시 사람은 먹을 준비가 어느 정도는 되어 있어야 남이 먹을 밥상이 눈앞에 뚝 떨어지는 행운이 있는 거다.
초반에는 정말 지루했는데 막판에는 그럭저럭 흥미로웠던 2010-2011 시즌도 이제 끝이 났다.
다음 시즌엔 누가 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두근두근 기다려지는군.
일단 지옥문이 열린 우리나라 96년생 아가씨들과 97년생 소년들~ 정말 기대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