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EEPING BEAUTY I 잠자는 숲속의 미녀
작곡: 피터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대본: 샤를 페로의 대본을 기초로 이반 A. 브세볼로쯔스키, 마리우스 프티파
안무: 마리우스 프티파
세계 초연: 1890/1/15. 세인트 페텔스부르크 마린스키 극장. 황실 발레
초연 무용수: 카를로타 브리앙자, 파벨 게르트, 엔리코 체게티, 마리 프티파, 바바라 니키티나
백조의 호수, 지젤과 함께 가장 많이 공연되는 레퍼토리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차이코프스키의 다른 발레 작품인 백조의 호수처럼 초연에서 참담한 실패와 혹평을 얻었다. 그 이유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음악이 너무 탁월했다는데 있었다. 당시 무용음악은 단순한 것이 대부분으로 사실 차이코프스키처럼 정교한 음악이 무용에서 쓰이는 건 드문 일이었다.
무용 음악은 2류라는 인식 때문에 무용음악 작곡을 경멸하는 음악가가 많았는데 림스키 코르사코프는 그 혐오가 아주 심했고 차이코프스키의 선생인 안톤 루빈시타인의 경우 차이코프스키가 발레 음악을 작곡하는데 대해 질책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라는 것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음악을 사용한 발레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사후에 이용됐지만. 한국인들에게는 피겨 음악으로도 더 유명해져 버렸고. 죄송 림선생. ^^;-
당시 발레 음악은 철저하게 무용에 종속된 것으로 바리아시옹 다음에는 반드시 군무 음악이 나오고 어떤 춤은 몇 마디 안에 끝내야 한다는 식의 정형화된 틀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틀에 맞춰 무용수들이 춤추기 좋게 쓰는 것이 중요하지 음악적 구조나 개연성, 사실성은 사실상 완전히 무시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라 바야데르에서 인도 무희들의 춤에 나오는 음악. 왈츠이다. --;)
러시아 발레의 개혁을 위해서는 발레 음악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브세볼로즈스키는 그때까지 발레의 반주 역할에만 머물러있던 안이한 발레 음악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당시 극장의 종신 작곡가인 레옹 밍쿠스를 제쳐두고 차이코프스키에게 이 작품의 작곡을 맡긴다.
심혈을 기울인 역작 백조의 호수의 실패 이후 10년간 발레음악에 손대지 않았던 차이코프스키는 마린스키 극장의 프티파의 위촉을 받고 샤롤 페로 원작의 발레음악을 작곡했는데 이것 역시 실패로 끝난다.
이 작품에 대해 대단한 기대를 하고 있었던 차이코프스키는 황제를 모시고 했던 초연에 황제에게 “좋군”이라는 단 한마디 냉정한 평을 듣는데 그친다. 그리고 잇따른 평론가와 관객의 혹평에 상처를 입고 장기간 유럽 외유를 떠났다. 평론가들의 혹평 내용은 그 음악이 너무 난해하고 복잡해 춤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뒤집으면 그의 음악이 당시의 평범한 무용음악과 구별되는 탁월함을 지녔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차이코프스키가 비평에 민감했다는 것은 그의 전기 작가들이 빠짐없이 언급한 그의 특징으로 그는 결국 이 발레가 재안무 되서 대성공을 거두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다.
프티파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에서 클래식 발레라는 장르를 완성한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확고히 드러낸다.
이 작품은 치밀하고 절제된 장소인 궁전을 중심으로 백조의 호수에서 나타났던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약한 부분과 악에 대한 관조가 아니라 선악 구조가 명확하다. 악은 카라보스로 상징되고 표현된다.
서막. 궁전 무도회장
오로라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에 6명의 요정이 초대된다. 요정들은 각각 공주에게 아름다움, 재기발랄 등등의 선물을 주고 마지막으로 라일락 요정이 공주에게 선물을 주려는 순간 초대 받지 못한 마녀 카라보스가 나타나 공주가 16살 되는 해 물레가락에 찔려 죽을 것이란 저주를 퍼붓고 사라진다. 아직 선물을 주지않은 라일락 요정은 공주가 물레가락에 찔리지만 죽지 않고 100년간 잠에 빠졌다가 왕자의 키스로 잠을 깰 것이라고 저주를 완화시켜준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서막은 거의 한 개의 독립된 막과 같은 정도의 분량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춤은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녀들의 아다지오와 6명의 요정들의 춤이다. 요정들은 각각 자신들이 주는 축복을 표현하는 짧은 솔로를 춤추고 마지막은 라일락 요정의 솔로로 마무리가 된다. (발레단에 따라선 라일락 요정이 마임 역할로 대치되는 경우가 있는데 파리 오페라 발레의 누레예프의 안무에서 라일락 요정은 중년의 대모와 같은 분위기로 등장해 마임으로 모든 것을 표현한다. 지나치게 긴 서막이 전체의 흐름을 지루하게 한다는 이유로 최근엔 서막이 생략되는 경우도 많다.)
발레에는 전통적으로 남자가 여자역을 맡는 배역이 몇 개 있는데 이 카라보스도 그 중의 하나이다. 카라보스는 남자가 여장을 하고 맡는 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서막에서 등장 인물들의 움직임은 황실이나 황실 발레단의 내부처럼 확실한 서열을 갖고 배치된다. 왕을 중심으로 그의 주변에 배치된 등장 인물들, 그리고 선한 힘의 대장 격인 라일락 요정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다른 요정들, 그리고 카라보스 역시 자신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등장한다.
1막.
왕은 온 나라안의 물레란 물레는 다 불태워버린다.
그리고 공주의 16번쨰 생일에 공주에게 청혼하는 왕자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노인으로 변장하고 나타난 카라보스는 물레가락을 공주에게 보여주고. 생전 처음 보는 물건에 신기해하던 오로라 공주는 물레가락에 찔려 쓰러진다. 슬퍼하는 왕 앞에 나타난 라일락 요정은 궁전의 모든 사람을 잠재우고 성을 가시덤불로 막는다.
공주의 16번째 생일에 청혼하는 4명의 왕자들과 추는 '로즈 아다지오'는 한 다리로 지탱하면서 밸런스를 장시간 잡는 아주 어려운 부분으로 모든 발레 작품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장면 중 하나이다. 뽀앵뜨로 아라베스크 자세를 취한 오로라는 네명의 왕자들이 차례로 그녀의 손을 잡고 턴을 하는 동안 혼자 밸런스를 잡고 있는 동작을 취한다. 왕자들이 그녀를 서포트하기 전의 휴지부에는 그녀 혼자 뽀앵뜨 자세로 밸런스를 오랫동안 잡고 있어야 한다. (실상 전 과정을 다 이렇게 한 경우는 마고트 폰테인을 제외하고는 보지 못했다. 통상의 경우 한 왕자에서 다음 왕자의 서포트까지 혼자 밸런스를 취하지 않고 금방 손을 잡아준다)
2막 백년이 지난 뒤 숲
사냥 나온 데지레 왕자를 본 라일락 요정이 그에게 오로라 공주의 환상을 보여준다. 환상 속에서 오로라와 춤을 춘 왕자는 라일락 요정의 인도를 받아 왕궁으로 온다. 카라보스의 방해를 물리친 왕자는 궁전으로 들어가 키스를 통해 공주의 잠을 깨우고 마법이 풀린다. (발레단에 따라서는 3막을 1장과 2장으로 나눠 1장에서 왕자가 궁전에 들어가 공주의 잠을 깨우는 것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2막에서는 왕자와 오로라 공주의 환상의 파드데, 라일락 요정의 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로라는 환상의 모습으로 나타나 왕자를 사랑에 빠뜨리는 춤을 추는데 이때 그녀는 1막보다 더 느리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한다. 이 부분을 가장 이상적으로 소화한 것으로 유명한 비비안 듀런트는 “오로라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춤춰야 한다”고 얘기했다.
프티파의 안무를 계승한 로얄이나 키로프보다는 그리가로비치가 새롭게 안무한 볼쇼이의 버전이 더 라일락 요정의 춤에 비중을 주고 있고 성격이 뚜렷하다. 이유는 초연 때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안무한 프티파가 테크닉이 떨어지지만 연기력이 뛰어난 자기 딸 마리아를 위해 라일락 요정의 캐릭터에 어려운 테크닉을 배제하면서도 개성이 강하게 안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3막 궁전. 오로라의 결혼식.
오로라에 뒤이어 온 궁전이 깨어나 결혼 축하연을 벌인다.
결혼식 축하연에선 페로 동화의 주인공들인 빨간 모자며, 장화 신은 고양이, 파랑새와 공주등이 나온다. (이 바리에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오로라 공주의 오빠와 시녀들 등 안무가마다 조금씩 다른 변형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 춤 중에서 파랑새의 솔로는 고전발레에서 남성무용수의 힘과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는 드문 솔로다. 그리고 마지막에 왕자와 공주의 화려한 그랑 빠드데로 발레가 끝난다. 이때 왕자의 솔로는 타란텔라조, 오로라의 솔로는 폴카조로 이뤄져 있고 이들의 움직임은 전체적으로 위엄 있고 경쾌하다.
인간과 원혼이라는 두 가지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발레리나의 내면세계 표현이 가장 어려운 것이 지젤이라면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체력적으로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동작 하나하나가 아카데믹한 고전발레의 전형적인 동작이기 때문에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보면 발레리나의 기량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초연 때 오로라 공주는 이태리 댄서 브리앙자가 춤췄고 라일락 요정은 프티파의 딸 마리아 프티파였다. 프티파는 테크닉이 떨어지는 딸을 위해 연극적인 성격이 강한 라일락 요정을 창조해냈고 이 배역은 현재까지도 오로라 공주 못지않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 작품이 제대로 평가 받게 되는 것은 20세기 초반에 디아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륏스에 의해 리바이벌 되면서부터이다. 그때부터는 고전발레의 금자탑이니, 발레리나의 기량을 시험할 수 있는 아카데믹 발레의 전형이라는 찬사를 달고 다니게 된다. 이런 저런 애기들을 다 빼더라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테크닉의 화려함과 정교함, 많은 볼거리로 처음 발레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쉬운 좋은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3막의 대표적인 엔딩 장면으로 기억하는 오로라와 왕자의 피쉬 다이브 동작은 프티파의 원본에는 없었고 니진스카가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안무했을 때 처음 넣었다. 그녀의 안무에서는 피쉬 다이브 동작이 한번만 들어갔지만 후대의 안무가들은 연속으로 많이 넣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헬지 토마슨으로 그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결혼식 파드데에서 피쉬 다이브 동작이 5번이 나온다. 또 그의 3막은 빨간 모자와 늑대 대신 미녀와 야수가 삽입됐다. 고전 해석의 대가인 노이마이어는 1978년에 함부르그 발레단을 위해 이 작품을 안무하기도 했다.
이 작품 역시 오랫동안 프티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전의 대명사였지만 롤랑 프티와 마츠 에크, 마이요 등 안무가들이 새롭고 참신한 해석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보여주고 있다.
MENT:
사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만큼 실제로도 많이 본 작품은 없습니다. 로얄 발레단이 한국에 거의 매년 오던 시절 질리도록 이 작품을 들고 왔으니까요. 누레예프도 왔었는데… 사실 그때 영 별로였습니다. 발레를 처음 보는 제 친구의 눈에도 헉헉거리는게 눈에 보였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냥 누레예프를 본다는데 의미를 두는 공연이었죠. 데지레 왕자님 중 최고인 안소니 도웰도 왔었는데 그 공연은 어릴 때라 못 봤고 87년인가 왔을 때는 그 왕자님이 카라보스역을 맡았었죠. T_T 그래서 안 봤습니다.
결혼식 장면이나 2막의 환상의 파드데도 좋지만 사실 오로라 공주역을 맡은 발레리나의 기량은 1막의 로즈 아다지오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 동작을 끝까지 뽀앵뜨로 버텨내는 발레리나도 별로 못 봤고 아예 안무 자체를 좀 편하게 해주는 경우가 많더군요.
실제 공연과 LD등을 통해 여러 발레리나가 춤추는 장면을 봤지만 마고트 폰테인만큼 완벽한 밸런스와 품위를 가지고 안정되게 로즈 아다지오를 춤춘 발레리나는 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발레리나의 경우 대부분 다리가 내려오거나 표정에 힘든 것이 드러나는데 폰테인의 경우는 밸런스와 표정까지 완벽했었죠. 어떻게 그런 어려운 동작에서 웃음지을 수 있는지. 내내 그것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후아~ 화려함 그 자체. 눈요기로선 이 공연을 제일 추천하고 싶습니다. 볼쇼이는 파스텔톤의 약간 침착한 색감만큼이나 차분한 공연이었고 키로프는 라리사 레즈나니의 미모가 받쳐주는 공연~ 실제로 라리사는 현역 때 최고의 오로라라고 평가 받았었지요. 일단 예쁘다는 것도 공주가 주인공인 공연에선 확실히 한수 접고 들어가게 되는 듯. ^^
실제로 본 공연 중에 기억이 남는 공연은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의 유안유안 탠의 공연과 유니버설의 김세연씨의 공연입니다. 둘 다 자신감 넘치는 시원시원한 모습이 노련한 폰테인과 비교되어 또 다른 맛을 주더군요.
세계적으로 놓고 보자면 아름다운 오로라 공주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폰테인의 강렬한 영향력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오로라 공주는 주로 영국 로얄 발레단 쪽에서 계승되는 것 같아요. 저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금 활약하는 현역 중 최고의 오로라는 코요카루를 들고 있지요. 기회가 있으면 그녀의 오로라는 절대 놓치지 마시길!
주연 무용수들 뿐 발레단의 전체적인 기량이며 화려한 세트가 동원되어야 하는 비용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이 발레를 고정 레퍼토리로 갖고 있는 발레단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동양의 발레단 중에선 우리나라의 유니버설 발레단이 유일하죠. 그리고 유니버설 발레단을 위해 이제는 은퇴한 수석 예술감독 비노그라도프가 잠공주를 안무해준 덕분에 이 발레의 수준은 세계적으로 봐도 상위 레벨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선 우리가 행운이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자부심을 가질 부분이지요.
예쁜 동화를 풀어내고 있어서 아이들 데리고 구경 오는 어머니들 많은데, 초보자나 어린이가 보기에 결코 적합한 작품은 아닙니다. 서막을 빼더라도 엄청 길어요. 처음 보는 경우 대다수의 어른도 주리를 틉니다. 어린이용으로 따로 짧게 안무한 약식 공연이 아니면 미래의 발레 애호가를 발레 혐오가로 만들 수 있으니 부디 참아주시길~
19금 성인 버전인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버전의 잠공주 공연에 애들 줄줄이 끌고 온 엄마들 보면서 식겁을 했었던 기억이 갑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