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제 키스 & 크라이 관련 포스팅은 때가 때이니만큼 검색어로 너무 많이 들어와서 비공개로 돌렸습니다. 좀 조용해지면 다시 공개로 바꿀게요. 댓글 단 분들은 죄송.
1. 필라델피아란 영화는 저 영화의 개봉 이후 거의 10년이나 지나서 TV로 봤다. 영화를 본 곳은 지인의 집. 밥 먹을 때 대충 배경으로 틀어놨던 영화였는데 그 영화를 기억하는 건 그때 나눴던 대화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가 그녀는 불쑥 자신에게 치근거리는 부사장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었다. 나이 차고 미혼인 -기혼인 경우도 때론 마찬가지긴 하지만- 여자들에게 절대 드물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라 공감하면서 함께 울분을 토해주려고 했는데..... 최고의 반전은 그녀에게 치근거리는 부사장이 여자였다는 것. ;ㅁ;
학원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대학에 가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고백을 했을 때보다도 이날 충격이 더 컸었던 건 무슨 이유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둘뿐이고 집이라는 안전한 공간에 마침 시의적절한(?) 영화, 그리고 알딸딸한 술이 아니었으면 절대 나오지 않았을 고민이라 그날 이후 그 얘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그녀가 그 부사장을 잘 물리쳤는지 어떤지에 대한 결과는 아직도 모름.
나도 사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포스팅을 보면서 뜬금없이 그 일이 떠오르네.
2. 최소한의 공감..... 그냥 사람마다 그 '최소한'의 단위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그 최소한의 공감, 양심, 도덕률이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다가 내 인생이 지쳐 피폐해질 테니까. (아마 내 최소한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거고.)
그리고 양심적으로 고백하자면 내 최소한의 공감은 양심이나 도덕보다는 공포에 더 많이 기인한다.
용산에서, 명동에서 쫓겨나고 죽는 사람들이 선 저 자리가 무너져 천길 아래로 떨어져버리면 결국 그 벼랑이 바로 내가 선 자리까지 오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 바로 다음까진 아니더라도 다음 다음, 혹은 다음 다음 다음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다.
그런데 자신들은 그 벼랑에서 천리 만리 떨어져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물론 천리 만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 있는 사람은 그럼에도 그 벼랑이 자기 곁에 오면 폴짝 뛰어서 비행기 타고 안전한 곳으로 튈 수 있겠지.
하지만 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다 비슷한 처지인데 알량하게 한두발짝 뒤에 있다고 저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
멀리 갈 것도 없이 용산 참사를 보면서도 법을 무시하는 X들은 어쩌고 하면서 시원하네 어쩌네 하던 그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덜한 강도로, 목숨이나 생존과는 상관없는 수준으로 ㅅㅅ과 조합의 용역에게 핍박을 당할 때는 게거품을 물더라.
용산도 주동자가 ㅅㅅ이었는데 그럼 자기들은 다를 거라고 믿었을까? 아니, 믿었겠지.
나도 앞뒤옆에서 훤히 다 내려다 보이고 지켜볼 수 있는 중산층 동네에서 용역들이 그 난리를 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었으니까.
재개발로 폐허가 된 그 자리에 있었던, 부추를 듬뿍 넣은 하얀 짬뽕이 정말 맛있었던 중국집, 치킨을 즐기지 않던 내가 자진해서 찾아가던, 맛도 가격도 환상이었던 푸짐한 치킨을 내놓던 용산의 그 맥주집을 추억하면서 패배주의나 현실에 매몰되지 말아야겠다.
이메가 일당들이 낙하산으로 있는 동네에서 열심히 돈 벌어다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면서 걔네들이 제일 싫어하는 단체에 십일조는 불가능이고 삼십일조라도. ^^
그리고 후진 동네 용산답게 가격이 참 착했던 그 호프집과 짬뽕집 주인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지만 장사 잘 하고 잘 사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