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0시를 넘겨서 어제가 되어버린 일과 단상들이지만 내가 잠을 자기 전에는 그냥 오늘로 치고 오늘 시점에서 끄적여 보자면...
1. 오늘 하루를 왕창 버리고 KTX에다 돈을 쏟아 부으면서 경주에 회의하러 갔는데... 갑X들이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회의는 파토. --; 우리가 10시 반 차를 타고 내려가는 걸 알고 있었고, 11시에 회의 못할 상황이 생겼다면 전화를 해줬으면 좋잖아. 그럼 천안 아산, 하다 못해 대구에서라도 돌아갈 수 있었겠구만. 덕분에 또 하루를 왕창 버리면서 경주로 가야한다. 돈이야 어차피 프로덕션에서 내는 거지만 내 시간은... ㅜ.ㅜ
2. 방학 막바지이고 휴가철이라는 걸 실감.
오늘 삽질의 시작은 실은 동행한 감독에게도 있었다. 9시 기차를 타기로 했으면 미리 예매를 해놨어야지. 9시 기차는 매진, 10시 반 기차를 타고 내려갔고, 올라올 때는 시네마석인지 뭔지 영화를 틀어주는 열차만 자리가 남아서 그걸 타고 올라왔다. 내 돈은 아니지만 역시나 7천원이 추가. 잠도 못 자체 웬 시끄러운 영화냐 그러고 투덜투덜했는데 영화는 기대 외로 아주 재미있었다.
3. 영화는 톰 행크스가 공동 각본에 주연, 감독까지 맡고 상대역으로 줄리아 로버츠가 출연한 '로맨틱 크라운' 얼마만에 제대로 집중해서 보는 영화인지 정말 가물가물한데, 즐거웠음.
고졸이라는 이유로 해고 당한 마트의 모범 사원 래리 크라운이 전문대학에 가서 스피치 강의를 맡은 -자칭 파워 블로거인 야동 중독 웹찌질이 빈대 남편을 둔- 교수 줄리아 로버츠와 서서히 인간적인 교감을 나누다가 사랑으로 발전하는 로맨스를 기반으로 하지만 구질구질하지 않다. 그리고 그걸 배경으로 금융권의 합법적인 사기에 놀아나는 미국 사회의 현실(한국도 요즘은 마찬가지지만)과 불경기로 인한 해고, 학력 차별을 아주 영리하게 터치를 해주고 있다.
군더더기 없고 짜임새 있는 연출과 각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강추! 중간중간 적절히 터져주는 유머에다가 심각하지 않으면서 공감하게 하는 절묘한 설정은 감탄. 하나도 잘 못 하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만 잘 하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연기에 -공동 집필이긴 하지만- 이렇게 각본도 잘 쓰다니. 세상은 불공평함. ㅜ.ㅜ
4. 얘기가 나온 김에 미국의 나쁜 건 귀신 같이 잘 따르는 우리 금융권의 합법적인 사기에 관해 얘기를 하자면... 다행히(?) 나는 아니고 내 주변 작가의 일.
나를 포함해서 우리 직군의 인간들이 여기저기 들은 건 많아서 입은 똑똑하지만 실제로는 물정 몰라서 눈 뜨고 코 베이기 쉬운 허당들이 많은데 바로 옆에서 간만에 제대로 베였음.
부동산이 좀 많이 빠졌을 때 이 작가가 좀 무리를 해서 재개발 지역에 집을 하나 샀다. 당연히 대출을 꼈는데, 알다시피 우리 직종의 수입이 불규칙하다보니 거치식이 아니라 돈 생길 때마다 갚아나가는 형식으로 대출 설정을 했다. 처음에 조금 이자가 높지만 갚아나가는 만큼 이자는 줄어드는 거니까 여기까지는 현명했음. 그런데 한동안 수금이 잘 안 되서 이자는 불어나고 하니까 이 언니가 좀 오래 전에 특판으로 이율이 높게 나와서 붓고 있던 적금이 떠오른 거다. 꽤 많이 모인 거라서 그거 깨면 대출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겠다 싶어서 통장을 들고 은행을 방문~
당연히 은행의 창구 직원은 만기가 1년도 안 남았는데 왜 해약하냐, 등등을 물어 보고선 지금 깨면 손해니 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라는 식으로 꼬셨는데... 마가 끼었는지 아니면 그 직원이 최면술을 썼는지 이 여인네가 홀라당 넘어가서 그렇게 해버렸네. 그러고 돌아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뭔가 이상했겠지. 그리고 나랑 만난 날 그 얘기를 하는데... 이 언니야. 아무리 예금 이자가 높아도 대출 이자보다는 높을 수가 없잖아!!!!! 숫자랑 산수에 아무리 잼병이라도 그건 알겠구만.
뒤늦게 정신이 든 그 언니도 자신의 뻘짓을 인정하면서 하는 소리가... 너무나 전문적인 용어로 적금 깨는 게 손해라는 걸 설득력있게 설파를 해서 뇌가 주화입마에 빠져버린 것 같다고... --;
다시 해약해서 갚아버리려고 보니까 정말 그 직원이 마술을 부렸는지 대출 상환기간이 설정된 대출이라 이걸 그 이전에 갚으면 상환 수수료라는 걸 내야 한다. 내가 돈을 갚겠다는데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는 의미. 그냥 상환 수수료를 내고 치워버리는 게 더 나쁠지, 갚아야할 때까지 이자 내주는 게 더 나쁠지는 우리 머리로는 계산이 되지 않아서 은행직원과 그 은행 욕을 하면서 그날 대화는 종료. 걔는 그날 호구 하나 물었다고 엄청 좋아했을 텐데... 얼마나 잘 먹고 잘 살지 정말 궁금함.
은행이든 보험이든 직원이 적극 권유하는 상품은 절대 가입하면 안 된다는 게 정말 진리인 것 같다.
5. 경주까지 가서 헛걸음하고 온 것도 솔직히 열 받는 일이지만 오늘 최고의 충격과 공포는 김성근 감독의 해임이 아닐까 싶다.
2002년에 준우승한 감독을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잘라 버릴 때도 쟤넨 미쳤나 했는데 SK보다는 덜 하다고 해야하나? (하긴 그때 그놈들이 SK로 다 옮겨갔다고 하니까 똑같은 짓을 했다고 할 수도 있겠군.)
김성근 감독의 아들 김정준 코치와 친하게 지내던 당시에 프로야구 기자였던 친구가 2002년 시즌 후반부터 뉘앙스를 흘려주긴 했었다. 당시 이 친구는 기자를 관두고 사업을 하려고 슬슬 준비하고 있었는데 김감독님이 "시즌 끝나면 짤릴 거니까 거기 자리 좀 만들어줘~"라고 하신다고 했었다. 근데 그때는 정말 농담인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논리와 사고라면 바닥을 치던 팀을 플레이오프 진출을 시켜주는 감독을 자를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냐? 그렇지만 한국 시리즈까지 올라가고도 -내 마지막 한국 시리즈 직관. ㅜ.ㅜ- 잘랐다.
지금 부산에서 구청장하고 있는 -이래서 부산이 더 싫음!- 어씨와 LG 팬들에게 볼드모트인 그 이모모 감독 체제의 암흑은 말하면 입 아프고. 2002년부터 거의 야구랑 담을 쌓은 내가 슬슬 야구판에 다시 기웃거리기 시작한 때가 2007년 후반부터. 노태우 비자금이 왕창 들어간 회사를 응원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너무 거부감이 커서 난 캐넌과 영감님 팬이야~라는 정도로 구경하다가 LG와 달리 내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을 주는 팀이라고 판단하고 작년부터는 정말 본격적으로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재미없는 야구 어쩌고 하는데, 네가 응원하는 팀이 지니까 재미없지. 7:0으로 이기고 있다가도 홀라당 뒤집히고 아무리 점수가 많이 나 있어도 엎치락 뒤치락 조마조마하게 만들다가 대부분은 지는 LG 야구? 남의 팀이니까 재밌지. 그런 경기를 9년 내내 봐라. 그게 재밌는지 미치는지.
반칙을 쓰는 것도 아니고 룰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서 이기는 게 뭐가 어때서? 같은 조건에서 그걸 못 하는 게 ㅄ이지.
내 인생 최고의 한국시리즈는 90년, 94년, 작년 2010다. 팬에게는 너무나 편안하고 즐거운 시즌이었거든. 심장 뛰거나 벌렁거릴 이유 하나도 없이 우아하게 내가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구경할 수 있었으니까. (90년엔 마구 난타당하는 최동원 선수를 보면서 가슴이 아프긴 했지만... ㅜ.ㅜ) 2002년과 2009년 한국 시리즈가 최고의 명승부네 어쩌네 하는 건 이긴 팀 팬들의 얘기지 난 그때를 절대 복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이렇게 시즌 막판에 아주 X을 주는구나. 그래도 난 항상 모든 곳에서 긍정을 찾는 사람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 질 때가 많아서 지는 날 바이오 리듬이 급락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겠구나~ 이제는 질 때마다 행복해지기로 했음.
프런트야 아무 동정이나 이해의 여지가 없지만 이만수 감독 대행은 쫌 안 됐네.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이런저런 카더라~를 다 제쳐놓고 그냥 순수하게 봐도 비교 대상이 너무 큰데다가 최악의 상황으로 감독에 올랐으니... 어찌 보면 프런트가 머리가 좋은 듯. 지들이 먹어야할 욕의 상당 부분을 이만수 감독 대행이 먹어주고 있으니. 하여간 나쁜 쪽으로 머리 돌리는데는 2002년이나 지금이나.
이제 찝찝함을 덜고 가뿐하게 다시 안티 SK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의 하나인 것 같다. LG 어게인을 즐겁게 기원하면서 구경해 주겠음~ 이렇게 최대 2-3년 정도 기다려 보면 그때 그 시절 어씨처럼 목 날아갔다는 기사를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