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Opening Skinner's Box : 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2004 년에 출간된 책이다. 이 책도 지난 달에 알라딘의 과학책 세일전 때 구입한 컬렉션 중 하나.
얼마 전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를 읽을 때 '스키너'라는 이름이 이상하게 눈에 익어서 뭔 일인가 했더니 이 책의 제목이었다. 그래서 아마도 한참 밀렸을 책을 집어들었음.
저자 로렌 슬레이터는 20세기 심리학과 정신과에 있어서 역사적인 사건과 업적이랄지... 재앙이랄지 아직은 판단할 수 없는 사건들을 나름대로 10개를 선정해서 소개해주고 있다. 특이하다면 그냥 3자 입장에서 관찰이 아니라 심리학자인 자신이 때때로 직접 피실험자가 되어 해당 이론을 테스트하고 또 분석해가면서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3자적인 과학사 서적들과는 상당히 달랐고 또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고 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것은 -책이 아니라 내 개인에 대해서- 이런 서적, 혹은 비슷한 류의 상세한 이론을 대학 때 알았더라면 피상적으로 외우고 배웠던 심리학이며 교직이수 과목들에 대한 이해도며 몰입도가 좀 더 높지 않았을까 싶다.
여기 소개된 사건이며 케이스는 교육공학이나 교육심리, 일반 심리, 사회학 등의 교과 과정에서 한번쯤은 들었던 것이 상당수이다.
[#M_ more.. | less.. |대표적인 것이 충격 기계에 의한 복종, 선의 길이에 대한 실험. 이건 한완상 교수님의 사회학 수업에서 들으면서 감동했던 부분. 단 한명이라도 그 부조리를 반발할 경우 뒤 피실험자들의 반응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얘기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살인 사건을 38명이 목격하면서 단 한명도 신고하거나 행동하지 않은 사건. 지금도 오싹했던 기억이 생생. 애착 심리학과 인지 부조화도 배웠던 기억이 남.
수업과 상관없느 것으로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이건 그녀의 이름을 기억한다기 보다는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봤던 충격적인 케이스 때문에. 심리 상담 치료받던 여자가 자기 문제가 부모의 성추행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동생에게도 심리 치료를 권유하고 역시나 동생도 성추행이란 결론이 나옴. 그래서 부모를 고소하고 난리가 났는데 결국 알고보니 심리 상담사의 유도에 의한 가짜 기억으로 판명이 났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 그 문제의 심리 상담사와 관련 이론을 비판하던 이론적 근거가 아마 로프터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있음.
하지만 연구자의 실험 상태나 배경 등 필수적으로 알아야할 내용과 상관없이 실험내용과 결과를 전달받는 것으로 그쳤기 때문에 흥미는 있었지만 이상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갈 여지가 없었다.
물론 흥미가 아무리 크고 생각의 가지가 아무리 뻗어나가도 내가 심리학이나 상담학, 혹은 교사가 되는 일은 절대 없었을 테지만. 그런 일을 하기엔 난 너무 참을성이 없고 반복을 싫어한다. -_-;;
아마 미국이었다면 교과서로 쓰는 책에 휙휙 지나간 이런 내용들을 파악하기 위한 부교재들을 산더미처럼 던져줬겠지. 한국에서 지금 그런다면 그 교수 수업은 입사 시험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이유로 텅텅 비어버릴 것이고.
그래도 교과 과정에서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을 이렇게 번역된 책으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대학에 다니던 때보다 다양성의 측면에선 독서 환경이 훨씬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화성의 인류학자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뇌와 심리를 다루는 사람들은 엄청 답답증이 날 것 같다. 이거야말로 정답이 없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류의 학문에서 가장 위험한 건 정답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어느 정도 패턴은 있겠지만 완벽한 공식은 없고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는 전제 조건을 갖고 접근해가야 할듯.
더불어... 몇몇 나라들처럼 우리나라도 정신과 의사와 심리 상담사들은 필히 몇년에 한번씩 일정 기간동안 강제 휴식을 취하도록 해야할 것 같다. 당사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홧증이 마구 솟는데 이걸 몇년씩 끝없이 거듭하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쉽지 않을듯.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