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윗 세대와 우리 아래로 한 10년 정도까지 세대에게 바나나는 엄청나게 비싸서 정말 1년에 한 번 하나 먹을까 말까 한 꿈의 과일이었다. 어릴 때 내 소원 중 하나가 바나나를 실컷 먹어보는 거였을 정도였다.
커다란 과일선물 바구니에 들어있던 바나나 한 무더기는 어린 내 눈에는 정말 황홀한 광경이었다. 때문에 정부의 권유로 제주도에서 바나나 키우기 시작했을 때 우리도 국산 바나나를 싸게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다. (수입 자유화 되면서 제주도 바나나 농사 짓던 사람들 다 망했음.)
어느날부터 수입 자율화가 되면서 하나 가격이 짜장면 가격보다 비쌌던 바나나가 싸지기도 했지만 20년 가까이 박인 관념, '바나나는 엄청 비싸고 귀한 과일이다'를 단기간에 뽑아내기는 역부족이었다. 미국에 처음 갔을 때 바나나가 제일 싸고, 제일 돈 없는 사람들이 먹는 과일이라는 얘기도 맛있는 바나나를 실컷 먹고 있다는 내 행복을 줄이진 못 했다. 내게 바나나는 국제화 내지 글로벌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어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노점에서 바나나를 샀다. 이유는 가장 쌌기 때문에. 가장 먹고 싶은 건 마른 목을 달달하게 적셔줄 차가운 귤이지만 그건 너무 비쌌다. 우리도 어떤 사람들이 소원하는대로 미국과 닮아가는 모양이다.
8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바나나에 대한 이런 묘한 애증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리고 어느날 어느 다른 나라에서 찾아와 바나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래진 이방인에게 이건 가장 싸서 돈 없는 사람들이 먹는 과일이야라고 얘기해 줄수도 있겠지.
어릴 적 소원대로 바나나를 배 터지게 먹고 있지만 3천원이면 까만 비닐봉다리 가득 담아올 수 있었던 귤이 왜 그렇게 그리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