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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예술

음악가와 연인들

by choco 2012. 9. 18.

이덕희 | 예하 | 2012.?~2012.9.14

 

ㅅ님에게 얻은, 1988년에 나온 오래된 책. ㅅ님은 책장 정리 차원에서 재활용 쓰레기 줄이기를 한 거겠지만 내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내가 어른이 되서 가장 행복한 이유 중 하나가 내가 정말 보고 싶은 책은 사서 볼 수 있다는 건데 -요즘은 공간의 문제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야 하지만- 어릴 때는 당연히 그게 불가능하다. 아예 어릴 때라면 엄마에게 사달라고 하지만 중고등학생 이후로 넘어가면 참고서를 제외하고 그냥 읽고 싶은 책을 사달라는 건 전교 등수가 한 자리수에 들어가는 모범생이 아니고선 대역죄에 해당된다.

 

매주 신문에 소개되는 책 관련 기사들을 보면서 나중에 돈을 벌면 읽어야지 했던 책들이 많았는데 그중 일부는 정말 사서 읽었고 또 지금도 갖고 있다.  이 책도 읽고 싶은 책 중 하나였는데 세월에 밀려 잊고 있다가 ㅅ님의 정리 리스트를 보고 번뜩 떠올라 잽싸게 줄을 섰다. 

 

새삼 느끼는 게, 잊지 않고 계속 소망하면 어린 시절 꿈꿨던 대부분의 소원은 다 이뤄진다.  그게 아이 혹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소박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주 허황된 것이 아닌 한 어른의 소원도 성취는 가능할 것 같다.  물론 거기에 노력도 더해져야겠지만.

 

각설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끝낸 소감은... 당시 늘 나를 두근거리게 하던 이덕희 선생의 예술 서적은 참 많은 짜집기로구나란 것이 제일 먼저.  저작권의 개념이 모호하던 그 시절이었기에 인정 받고 책을 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이분의 발레 관련 책인 발레에의 초대와 매혹의 초대에 이어 또 하게 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은 태어나는 타이밍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면 욕을 먹겠지만 이 책이 나오던 1988년에는 그녀를 제외하고는 이런 소스를 가져다가 소개할 사람도 없었으니 당시의 잣대로 봤을 때는 감사한 내용이긴 하다.

 

토스카니니, 카루소, 브람스, 슈트라우스, 베르드, 리스트, 쇼팽, 베를리오즈, 파가니니, 베토벤, 모짜르트, 하이든까지. 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12명의 음악가와 그들의 연인에 관한 기록인데 개인적으로는 바그너가 빠진 게 좀 아쉽니다.  예술가에게 바람기는 필수 옵션에 가깝긴 하지만 그 중에서 바그너도 나름 최고봉인데 그와 친구이자 후원자의 아내 코지마의 역사적인 로맨스라고 쓰고 역사적인 민폐 불륜행각이라고 읽는 사건을 좀 디테일하고 만나고 싶었는데.

 

어디선가 읽어서 알고 있던 내용 반, 새로웠던 내용이 반인데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에 관한 내용은 '오!'하는 설득력과 감탄을 나오게 함.

 

그래도 예술가 중에서 그나마 음악가들이 가장 건전한 편에 속하는데.... 다른 장르 예술가들의 연애사도 정리하면 재밌겠군. 아, 그러고 보니 화가와 모델이라는 책도 있구나.  그래. 화가들이 비하면 양반 중에 상 양반들이지.  이쪽은 바람은 피워도 결혼을 깨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근데.... 아내 입장에선 이쪽이 더 나쁠 수도. --;  

 

음악가의 연인들이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든 어떻든 간에 이제 어른이 된 여자 입장에서 볼 때 여기 등장하는 12인은 참 최악의 연인이자 남편들이긴 하다.

 

요즘은 찾아볼 수 없는 약간의 국한문 혼용체에다 일본식 단어와 문장이 조금 적응되지 않지만 술술 잘 읽히고 재밌긴 하다.  저작권 등등이 무섭지 않다면 문장을 다듬고 새롭게 편집을 해서 내도 꽤 팔리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덕희 著가 아니라 이덕희 編이라고 써야할 듯.

 

ㅅ님 땡큐~  덕분에 소원 풀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