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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우리 세대의 아버지.

by choco 2012. 11. 24.

그는 열심히 살았다.

그 시절 누구나 다 그랬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다.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좋은 대학에 갔고 졸업 후 그 기대대로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엘리트 직장인이 되었다.

 

회사가 자신의 미래라고 믿고 헌신했고 믿음대로 회사와 함께 커갔다.

착한 아내와 사이에 아이도 태어났고 알뜰하게 저축을 하고 몇 번의 이사를 거친 끝에 좋은 동네에 아파트도 장만했다.

남들보다 능력도 뛰어났고 노력도 많이 한 그는 몸 담았던 회사의 전문경영자가 되었다.

그의 친구들 중 일부는 사업을 시작해 건실한 중소기업을 일궈내기도 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이 중산층, 혹은 그 이상이 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imf를 거치면서 승자독식으로 바뀐 환경에서 그들의 믿음은 무너진다.

건실한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문을 닫고,

겨우겨우 그 위기를 버텨낸 일부는 가진 것을 소모히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기 시작한다.

예금, 공장, 땅, 그리고 집까지.

경제 환경은 철저하게 대기업, 재벌의 위주로 중소기업은 이제 성장의 희망이 없는 하청업체로 재편된다.

지금 수많은 공단의 중소기업 사장들 99%의 현실이다.  

 

전문경영인, 혹은 월급사장인 그에게도 그 운명은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의 법은 소유주가 아니더라도 경영자에겐 회사의 연대보증을 서도록 하고, 그 보증은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다는 것.

호황일 때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 그 불합리는 위기에 그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다행히 그는 그의 전재산인 집과 예금을 아내와 자식의 명의로 돌려놓을 혜안이 있었다.

덕분에 회사가 문을 닫음과 동시에 길거리에 나앉는 다른 월급사장들보다는 조금 나은 운명을 맞는다.

 

평생 모은 예금과 집이 그래도 그의 노후를 보장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저금리는 그의 저축을 소진하고 이제 그와 아내의 남은 시간이 끝나기 전에 0이 될 확률이 높아졌다.

노후의 작은 버팀이 되어줄 거라고 믿었던 자식은 자신의 삶과 가족을 지탱하기에도 허덕이고,

마지막 재산인 집은 자식의 명의이기에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다.

 

그의 명의는 아니지만 어정쩡한 재산과 그럭저럭 평균은 되는 수준의 자식은 그에게 국가에게 기대는 길조차도 끊어놓았다.

최소한의 생활비로 버틴다고 해도 그에게 남은 돈으로 병든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년.

그 이후에도 이들 부부가 살아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까?

 

자존심을 지키면서 자발적인 죽음을 맞는 것?

응답이 없는 자식에게 자비를 구걸하는 것?

 

이게 우리 세대 상당수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나마도 성공한 축에 속한.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만 무겁고 갑갑할 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가 참 무력하다.

 

그래서 나는 사회가 바뀌길 소망한다.

최소한 패자부활전의 기회라도 있기를 바란다.

 

그가 가진 돈이 다 떨어진 5년 뒤에도 자존심을 갖고 살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더불어 내게도 반드시 닥칠 그 노년의 시간을 불안 없이 인간답게 보내고 싶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