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시대에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아 불의가 이기는 데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덮고 싶어서 엉뚱한 과거 미화로 자신을 변명하는 노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중에 최소한 난 벽에다 대고 고함은 쳤다고 변명이라도 하려면 열심히 쓰는 것 뿐이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하는 프로그램에서 듣고 있는 증언들은 함께 나누는 게 좋을 듯.
프로그램에서는 소개되지 않을 좋은 얘기들이 많다.
이하전 (북가주 광복회장 1-5대 역임) INT Q-미국에는 오신 시기, 방법 0007 1948년 10월 10일에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밑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Q-어떻게, 어떤 일을 0027 그때 그 저희 2차 전쟁 이후에 미국 해외에 나갔던 미국 군인들을 이제 들어 실어서 귀환하는 데에 큰 배를 아마 나라에서 아마 어떻게 마련했겠죠. 0053 그래가지고는 실어오는데 거기에 한국 학생 혹은 무슨 대표로 오는 무슨 그 나라를 대표해서 오는 사람들 몇이 그런 사람들 아니면 탈 수가 없어요. 그 배를 어떻게 탈 수 있는 기회가 됐다구요. 0123 제가 그 때 해방 이후에 연대죠 지금 지금 연대. 그때는 연전하고 연대로 있는데, 연대에서 해방 후에 제일 먼저 추천하는 세 사람 가운데 제가 하나 이제 추천을 받아가지고 그 배를 타고서 이제 오는데, 0150 뭐 그때 대사관에 미국 대사관이라고 하는데 내가 대학교에 추천받아서 미국 간대니까 뭐 두말 할 것 없이 비자를 주더라구요. 학생비자죠. 그 배를 탈 수 있는 혜택도 줘서 타고 2주일동안 배를 타고 갔습니다. Q-항일운동 계기 0224 그렇죠. 제가 이건 너무 말이 길어지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제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가서 이제 법정대학에 시험치고 입학을 해가지고 공부를 해야 되는데 저희들이 유지 몇 학생들이 우리 이래가지고는 안 되겠다. 독립해야지 이렇게 일본에 그 종살이 하는 처지에 있으면 우리가 사람구실 못 한다 이제 그걸 느껴가지고서 비밀결사를 만들었다구요. 0316 그 제 책에 다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있는데 이 한국에 그때 말하면 조선이지 조선의 학생들 몇이가 고만 말 같은걸 잘못 해가지구서 이제 체포당했다구요. 0339 그래가지구서는 고문하니까는 우리의 그 내막이 다 드러났거든요? 그러니까네 평양에서 형사 그때 일본 사람 둘, 한국 사람 셋에다가 다섯명이 동경까지 출장 와가지고 우리를 잡아가지고 그래가지구 수갑 채워가지구서 평양까지 압송당해서 왔습니다. 0407 그래가지구서는 우리도 물론 고문당하고, 또 그러고 재판을 제대로 당하고, 받았죠 재판 받아가지구서는 일본 법률, 치안유지법이라구 그때 그랬어요. 치안 유지법에 1조 1항에 걸렸다구. 1조 1항에. 지금 말하자면 아 이제 그 뭐 세밀하게 다 말씀드릴건 없고 제 책에 다 있으니까, 0435 아 그래가지구는 그것이 이제 그 일본법, 치안유지법 제 1조 1항에 해당이 되거든요. 그거는 이제 5년에서부터 사형까지 있는 법률인데 거기에 걸려가지구서 재판을 받았어. 판결을 받았는데 아 너희들 어린 학생들이니까 특별히 봐줘서 2년 반 징역사는것을 갖다 판결받았다구요. 0513 그래가지구서는 이제 잡혔죠. 감옥에 들어가서 (기침 콜록콜록) 2차 전쟁이라고 하나, 일본하고 미국하고 전쟁동안에 내내 감옥에서 살았다구요. 그러구 겨우 만기 다 끝나서 이제 출옥을 했습니다. 0545 그러니까네 뭐 우리보고 뭐 지원병 나가라는 말도 없고 감옥살이하다가 정말 한 서너번 죽을 뻔도 하고 처음엔 물론 고문당해서 한번 죽었다 살아났고 그 다음에는 감옥살이 하면서 한 세번 죽을 고비를 넘겨가지고서는 살아가지구서는 이제 나왔죠. 0615 그것이 이제 제대로 발표가 됐다구요 이제 증거가 됐거든요. 그래서는 보훈처에서 우리를 독립유공자 애족장이라고 주더라고, 그래서 애족장을 지금 독립유공자 애족장을 받아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하하하.. 영광이죠 Q-비밀결사대가 했던 활동 0648 학생들간에 비밀결사 해가지구 거기 이제 제 책에 다 기록되어 있는데, 그걸 좀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근데 그 뭐.. 전부 제 감옥살이 내용을 거기에 다 적었어요. 0711 그래서는 결국은 학생들간에 비밀결사라고 해가지고 우리가 이제 공부가 끝나면, 우리.. 중국으로 도망 가가지고 광복회, 그때 그래서.. 광복군 그런 말이 있었거든 광복군이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에 참가해가지구서 그냥.. 그 일선에서 싸우는 그러한 것도 다 우리들끼리 연구하고 듣고 이제 그래가지구서는 이제.. 그러한 그 의논하는거죠. 0751 그리구 서로 정보 교환하구서 이제 그런 우리들끼리의 이제 그러구, 이제 학생들도 우리 동지들을 이제 모은단 말이에요. 규합..하는 그러한 Activity를 갖다가 이제 하는거죠. 그거죠. 0815 근데 그거이 일본 정부에서 가만 둬요? 그러니까니 잡아가지구서는 그.. 평양에 있던 우리 동지라고 하는 사람이 너무 경솔해서 그저 괜찮으리라 해가지고 말을 하고 다녔는데 그거이 다 실마리가 되가지구서는 결국 경찰의 귀에 들어가가지구서는 잡혔죠. 글쎄 난 얼마나 더 오래 이 얘기 하면 좋을지 모르겠지만서도 그래.. 간단히 겁니다. Q-샌프란시스코가 한인들의 독립 운동의 중심지가 된 이유 0901 그렇죠. 그거는 해방 전에 결국은 샌프란시스코가 정말.. 미국의 관문 아니에요, 그러니깐 그때 이승만씨는 주로 하와이를 중심해서 독립운동을 했고 다른 분들, 그 안창호씨라든가 다른 여러.. 독립지사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많이 모였죠. -> 한국에선 열심히 우상화 하는데 미국에서 제대로 독립운동사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이승만은 욕 나오는 존재임. 나도 한국에서 자라나 한국에서 교육을 받아와서 어느 정도는 쉴드 쳐주는 입장이었는데 파고들수록 그렇다. 이승만에 대해 정확한 내용은 백년전쟁을 보심이~ 나도 그런 거 만들고 싶어.... --; 0935 거기서 이제 흥사단이니 무슨.. 이제 다른 이제 그 독립운동 하는 그런.. 그때 독립운동이라고 하게 되면, 요기 있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가지구서 샌..그 중국 상해에 있는 그 임시정부한테 돈을 보내주는 거에요, 결국은. 1005 돈을 보내주면 임시정부에서 그 돈을 받아가지고 이제.. 도움이 되죠. 그제 독립군, 독립군이래는 것도 있었고 I'm sorry. 광복군. 광복군이래는 것도 있었고 어 이제 거기에 임시정부라는 것도 있었고, 그때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그래요. 1030 그런데 여기서 이제 그때 미국에서 돈 보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나라도 없는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아주아주 하등 임금을 받아가지고 뭐 한 시간에 뭐 몇 십전 받았다든가 뭐 그렇게 받은걸 갖다가 이제 자기 먹고 사는걸 갖다가 이제 재갖구 뭐 남는게 있어요? 1059 근데 그렇지만 서도 돈을 여기에서 모윽게되면 그래도 한번 모는데 몇 천불씩 나왔데요. 근데 그때 돈 가격이 물론 높았지만 서도 그렇게 성의껏 돈을 모아가지구서 임시정부에 중국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에 보냈데요. 1122 근데 그거 그 역할을 안창호씨가 주로 맡아서 했답니다. 근데 안창호씨가 정말 일전 한 푼도 삭감하지 않고 무슨 뭐 여비로 썼다든가 그러지 않고 전부를 이제 다른 이제 여비 같은거 그거는 개인적으로 썼고 여기서 모아주는 그 돈을 아주 고대로 임시정부에 갖다가 전했다. 그런 말이 있다구요. -> 흥사단 다큐멘터리를 만에 하나 할 수 있다면 꼭 넣을 에피소드일듯. 1154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 그래서 그 많이 도움이 됐죠. 임시정부 운영하는 데에. 제가 알기에는 그렇습니다. 뭐 특별히 또 그러구 어떤 분이 이 저희 northern california 지금 말하자면 저짝 여기서 좀 더 북쪽으로 가서 뭐 어떤.. 한국 사람이 저희 큰 농장을 가지고있는데 거기서 농사가 잘 돼서, 그때 벼농사를 했는데 상당히 이익을 봤대요. 1228 그래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이제 비행기 조종사 훈련도 하고, 그래서 인제 미국 군에 이제 편입해가지구서 같이 일본하고 싸우는데 이제 나와서 싸우자 그런 activity도 했다고 그래요. 근데 난 그런 말을 듣고 또 그랬지 뭐 그렇게 제가 실제로 가본 일은 없고 이제 그 후에 다 이제 전쟁도 끝나고 이제 그러니까니 다 좀.. 그냥.. 무효로 돌아가고 말았죠. 근데 그런 activity까지 했다고 그래요. 그만큼 애국심들을 많이 냈었죠. -> 사용할 인터뷰 Q-받은 고문의 강도 1335 감옥살이 하기, 고문은 감옥살이 하기 전에 해요. 지금 말하자면 그거는 사실을 캐내기 위해서 한단 말이야 그러고 이제 그러니깐 이제 경찰서에서 우리가 6개월 살았습니다. 그러고 경찰서에서 미결감이라고 하는게 돌아가요. 1400 왜냐면 경찰서에서 아 이놈들은 벌을 받을만한 법에 저촉되는 일을 했다 그러니까 이건 기소를 해야되겠다 하게되면 그건 감옥으로 넘긴다구. 감옥으로 넘기면은 감옥에선 그걸 미결감이라고해요. 재판받기 전에 그 몸으로 갇혀있는걸 갖다가 미결감이라고 하는데 미결감으로 이제 넘어가게 된다구. 1425 그러니까니 고문은 경찰서에서 있을 때에 고문을 받는거에요 그러니깐 사실을 캐낼라고 그러니까네 물고문도 하고 어 그래서 주로 때리고 처음엔 많이 맞았죠. 그 다음엔 물고문이 제일 나한테는 심했어요. 왜 그러냐면 사람이 곧 죽을라고하는 고 정도까지 하거든? 그 다음에 사람이 죽을라고 하게되면 거꾸로 놓고서는 이제 물을 토해버리구 살린다구. 1506 죽기는, 죽기 바로 전까지 하면 그 말이라구요. 그거이 이제 우리가 당한 고문이에요. 다른 고문도 뭐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우리한테는 그런 고문을 받았어요. 그것이 이제.. 그러고 처음에 많이 때려요. 때리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또는 뭐 또 다른 것도 한 것 없느냐고 결국은 이제 다른 동지가 없느냐 그걸 캐낼라고 하거든요 1537 그러니까니 우리 한거는 아주 유죄의 조건으로 들어가는 거고 그다음에 고문이라고 하는 것은 더 그보다 더 동지구합을 규합을 하지 않았냐 결국은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그냥 때리구 물 마시구 멕이구 그런다구요. 1603 결국은 우리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그러구 정 이제 그 이상도 없어요. 이제 이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살려준다구. 그러면 그걸로 끝났어요. 거기에서 이제 고문이지 그 다음에 미결감에 가게 되면 이제 형사라고 해야되나, 검사 검사. 검사 손에 넘어가는데 검사 손에 넘어가게 되면 고문이 없어요. 그때는 그랬어요. 1636 검사가 그렇게되면 서류를 다 이제 조사하구서 다시 한번 죄수를 만나가지구서 너 이거 사실이냐 사실이냐 사실이냐 이제 그거를 다 확인하거든요 그렇게되면 그 확인하게 되면 그거로써 이제 유죄가, 유죄될만한 조건이 다 붙으니까 더 이상 더 그렇진 안하고 이제 이 검사 손에서는 고문이라는게 없어요. 1712 그 때 일본시대에는 그랬어요. 검사에서는. 그 다음에는 재판으로 넘어가거든요. 그다음에 재판을 하게되면 너는 이제까정 어떤어떤 죄를 졌으니까 어떤어떤 조건 밑에 또는 법률 규정 밑에 무슨무슨 벌을 준다 이제 그렇게 하고서는 이제 딱딱 판결을 내리면 그렇게 되면 이제 감옥살이, 감옥으로 도로 보내고서는 이제 이복을 바꿔 입거든요. 이제 감옥 그때는 빨간 옷을 입혔다구요. 1753 빨간 옷을 갈아입고서는 죄수가 되는 거에요. 그렇게되면 그 판결에 싸인을 해야돼. accept한다고 하는. 받아들이겠습니다, 하면 이게 싸인하는데, 서명하죠. 그러고 만일 내가 그거이 나한테는 너무하다 상고할 권리를 주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변호사들을 다 통해가지고 상고해야 소용없다고 너 고게 포기하고서 그냥 받아들여라, 1833 그래가지구서 이제 서명하면 그러면 빨간옷 입고 감옥에 들어가 정말 감옥살이를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그런데 그때가 겨울이 돼서 아휴.. 정말 초겨울이죠. 그러니까니 미결감에 있을 때는 사복이라고 하는데 사복 다 벗어버리고 그렇게되면 감옥에서 입는 죄수 옷을 갈아입거든요? 1905 이제 그래야 뭐 죄수옷이라는게 뭐 얼마나 솜이 있어요 뭐 있어요. 그래서 풀럭풀럭 하는 그런거 입고서는 굉장히 하여튼 고문 이상으로 죽을뻔한 그 겨울에 겨울에 그렇게 있다가 가령 감기같은거 걸려가지고 폐렴으로 죽는 사람도 많았다구요 그때 젊었으니까 그래도 살았지 아휴... 그 때 정말 그때 지금 생각 기억해요. 1954 영하 15도. 그 섭씨 영하 15도가 되면 굉장히 춥잖아요. 거기에서 글쎄 감옥살이를 그 감방에서 그래서 주는거죠 거죽자리 하나 뒤집어 쓰고서는 겨울을 났으니 그러구 또 이제 그 사람이 이제 숨쉬면 이제 그 증기가 나오잖아요 증기가 나오게되면 그 감옥에 벽이 하얗게 언다구. 허허 2034 그런데서 그런데서 첫 째 겨울을 났다구 아후 정말 굉장히 추웠어요. 젊었으니까 살아났다고도 할 수 있죠. 그래가지구서 첫 겨울의 고생이라는 건 정말 잊을 수가 없다구.. 허허.. 2103 그 다음에는 공장으로 내보내요, 공장. 각 사람이 너는 뭐 옷 만드는대로 가라 뭐 혹은 이제... 무슨 이제 뭘 이제 천 짜는 대로 가라, 목공하는대로 가라 이제이제 그렇다 공장으로 내보내거든 근데 공장에 가게되면 하루종일 일하는 동안에 일하는데 2133 근데 그거 뭐라고해야되지 콩밥이라는걸 주지 않았어요? 그 요만한거 주는거. 정말 배가 고프다고 그거가지고. 그 그렇게 추운데 조그만걸 먹고서는 난 그래서 요새 혼자 생각에 이북에서 사람들이 굶어죽는다는 말을 하는데 배고픈건 정말 배가 고파 봐야 알아.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2211 근데 이북에 그래 그 많은 우리 국민들이 배가 고파서 죽어간대니까 나는 이해할 수 있어요. 내가 겪어봤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희 그때 일본시대에 지금 시대는 어떻게 죄수들 취급하는지 모르지만 고저 콩밥에다가 소금국. 2243 그 맹물에다가 소금쳐가지고서는 주는거야 근데 이게 소금국에다가 콩밥 조그만거 한 덩어리 그거 먹고서는 어떻게 배가 배가 고픈게 또 벌의 또 하나야. 기가 막히다구. 근데 그때 그 콩밥도 그래도 괜찮더니 그 다음엔 전쟁이 점점 더 나빠지니까 콩밥이 아니구 그게 뭐이게 되냐면 그 만주에서 나오는 그 뭔가 고랑, 고랑.. 고랑이라는게 옥수수..말구 그 강냉이, 강냉이라고 하는거 있잖아요. 그걸 기름짜가지구선 이제 그 남은 껍질 그걸 갖다가 쓸어가지구서는 제일 먼저 주는게 그 감옥사는 죄수들한테 그걸 갖다가 섞어가지고 그래도 콩도 영양분이 좋다구요. 2345 그런데 콩뿐만 아니고 그렇게 되면 그걸 섞으니까 콩 대신 그걸 섞으니까 영양가치가 있나 그 기름 빼서 이제 그 먹는거니깐 그때 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죽어나갔다구. 특히 나이 좀 든 사람들은 그거 뭐 그거 먹고 설사 한번 나게 되면 고치는 약이 없어요. 2415 그래서 매일같이 죽어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구. 죄수들 가운데. 그러나 우린 젊었으니까 그래도 거기서 견뎠죠. 견뎌가지구선 배가 고프다는게 얼마나 큰 벌인지. 허허허 -> 이렇게 고생해서 얻은 광복인데.... ㅜ.ㅜ 광복군 때려 잡으러 다니던 놈들이나 거기 빌붙어 살던 놈들이 20세기도 아니고 21세기에 부활하다니.... Q-흥사단 소개 및 활동 내용 2453 제가 흥사단이 하고 연관이 되는 것도 책에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마는.. OK. 전 해방이후에 그때에 45년에 해방되가지고 47년쯤 됐을거야 한 47년쯤에 들려오는 소리가 미주에 있던 흥사단 본부가 서울로 이사왔다, 그런 말을 들었다구요 2528 그래서 이제 이것도 말이 길어지는데.. 허허허허.. 제가 이제 비밀결사를 만들기 전이죠 벌써 그때에 그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에 대해서 말을 듣기도 하고 그러는데 그래서 그이가 도산 안창호씨가 세상 떠나기 한 일이년 동안인가 평양 부근에 대보산이라는 데가 있어요, 대보산. 2612 그 진남포쪽으로 가는 데. 대보산이 있는데. 산을 넘어서 서쪽으로 가게되면 송태라고 하는 데가 있어, 송태. 거기 산장에 조그마한 그 어떤 유지가 집을 짓고 있었는데 도산 안창호선생한테 드렸다구. 이거 와서 사십시오 2633 그때 감옥에서 나와가지고서 도산 안창호선생이 거기서 은거하고 계실 때에. 그러구서 일천 구백.. 내가 잊어버렸는데 내가 38년이라고 생각하는데 38년 그렇지 1938년. 옛날이지. 2659 1938년이야. 그때에 이제 내가 그때 중학교 3학년때에요. 중학교 3학년때에.. 그때에 이제 일본시대니까 그때 10월 10, 3월 10일이라고 생각한다구. 야 내가 아직도 잊어버리질 않아. 2726 3월 10일이 무슨 날이냐고 하게 되면 일본이 러시아하구 싸워가지고 이긴, 승전한 날이에요. 그러니까니 그때에 일본 사람들은 그걸 갖다가 기념하기 위해서 그 중학교 학생도 오고 뭐 전문학교 학생들을 동원시켜가지고 이제 그 연병장이 있었거든 연병장에 나가가지고 이제 행진을 시키는 행사를 해요. 2756 행진을 시키는 행사를 하구서 이제 그걸 다 끝나고서는 이제 집에 돌아가는데 평양에서 이제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에 그때에 이제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3월 10일 날. I never forget that. 2819 이제 그래가지구서는 그때에 제가 이제 행사 다 끝나구서 그때 뭐 철이 있어요? 철없지. 근데 다 학생들 학교 하라는 대로 따라 가가지고는 연병장에서 이제 연병대라고 하는데 그 하고서는 다 해 져가지고 이제 집에 돌아간단 말이에요? 돌아가는데 그 평양에 그 저희 집에 돌아가는 평양 뒷거리에 그 전차길 뒷골이지 이제 그쪽으로 돌아 다니는데 2854 거기에 뭐가 있었느냐면 옛날 동아일보, 동아일보 지사가 거기에 있었다구요. 그 뭐 그렇게 큰 집은 아닌데. 근데 그 앞을 지나가게 됐는데 내가 척 보니까는 사람들이 저 자꾸 손가락질하면서 저거 뭐 저거, 그래 나도 이제 주시해서 봤거든? 2918 보니까는 뭐라고 써놨냐면, 안창호.. 별세. 그랬다구. 안창호 별세. 죽었단말이야. 그래 사람들이.. 그때.. 그때만해도 한국사람들 사이에 이제 그 유명했었거든 안창호씨가 누군지. (기침) 그래도 난 뭐 그런가보다하고.. 그저 그렇게, 하도 어리니까 거기에 대해서 전혀 몰랐거든 한국 역사 내가 뭔지 알았나 2958 그래서 집에 이제 그냥 돌아오니까, 아따 우리집에서는 우리 어머님이 대성통곡을 하는거라. 또 아버님은 푹푹 한숨만 쉬고 있고. 아 그래 어머니보고 “아이 왜그러시유“.. “아이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이 죽었어“ 그러면서 대성통곡을 해요. 3030 아이고 그때. 어린마음에 이거 도대체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래가지고 그 다음날 학교에 가자마자 학생들한테 ”야 너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아 그러니깐 거기서도 선생도 쉬쉬하며, 말하지 말라고. 3055 그러니깐 점점 더 호기심이 나가지구서는, 도대체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그래 사람들이 저렇게 쉬쉬하고 또 말도 안할라고 하나, 그래선 이제 내가 책을 뒤지기 시작했지 도서관에 가가지고 근데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에 관한 걸 쓴 것이 있어요. 3125 그 때에 이름이 뭐더라.. 김광수라는, 아 이광수, 그 이광수라고 하는 그 소설가 유명한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쓴게 있어요 그걸 갖다가 읽어보니깐, 아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 선생이 조선 독립을 위해서 일하던 사람이로구나. 3145 그래서 그걸 그냥 읽어보니깐 과연 정말 우리 한국사람으로서 우리 조선 사람으로서 이거 무시 못 할 사람이로구나. 이제 그걸 알아가지고 자꾸 읽기 시작했단 말이야. 한국 그 이광수가 쓴 글 주로. 이제 그거. 3209 그리고 뭐 옛날에 상록수라는거 뭐 여러 가지로 이제 그 때에 이제 내가 한국 소설 같은 걸 읽기 시작을 했거든요? 그래서는 거기에서 이제 한국이 지금 일본에 지금 노예같은 상태에 있구나, 그럼 이래서야 되겠냐 우리가 독립해야지 이런이런 그 애국자가 죽고 또 그러고 일본 사람들이 이래 한것이라니까 3241 이래가지구서 우리가 한국사람으로서 이럴수가 있냐. 그래가지구선 내가 도산 안창호를 연구하는 동시에 그렇게되면 우리가 독립해야 되겠다는 사상이 거기서 나기 시작했거든? 그러니깐 우리 동지 몇이 모여가지고 독립을 해야되겠다 하는 결사를 맺은게 그게 동기에요. 3310 그러니까네 그 알고보니깐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이 흥사단을 만들었다. 또 그로고 또 그 사람들을 모아가지고는 동지회인가 그런 말을 해요. 그래서 한인들 사이에 유명한 사람들이 그 동지회에 뭐 가입하고 뭐 잡히기도 하고 그런 말을 이제 듣고 이제 그랬다구. 3335 근데 그런 말을 듣고서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우리가 젊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할 생각을 해야지 이래가지고 되겠냐, 그래가지구선 시작한 거이 우리 비밀결사에 그 시작이라구요. 그러니깐 내가 해방 이후에 서울에 와가지고서 이거 흥사단이라는 데가 지금 서울에 왔다고 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느냐 내가 가서 찾아가 봐야지 그래가지구선 인연이 그렇게 되가지구 제가 갔다구요. 3410 그래서 을지로에 그 사람들이 이제 그 을지로에 있었어요. 을지로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고. 그래서 내가 찾아가가지구선 아이구 저도 도산 안창호선생님이 시작한 흥사단에 들 수 없습니까? 그니까 아 있다구 하면서 그 무슨 서류를 줘요. 3437 그러면서 이걸 읽고 동감하고 하게 되면 여기에 지원서가 있으니 지원서가 있으니까 그 지원서에 쓰구서 그리고 흥사단에 가입하려면 시험을 쳐야 돼. 일전에. 이제 대화해가지구서 이제. 흥사단에 대해 이제 그 근본정신 같은 거.. 이제. 그걸 또 내가 읽었죠. 내가 그때 연전 다닐 때야. 3510 그때 연희전문학교라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연대가 되기 전에 연세대하고 합하기 전에 연전이라고 하는데, 그때 이제 그래선 내가 그것도 읽기도 하고 시험을 치고서 아 내가 흥사단 때문에 고생을 갖다가 얼마나 했는데 내가 흥사단을 갖다가 무시할 수 있냐, 이제 그런 정신으로 내가 흥사단에 자진해가지구서 손을 들고선 흥사단우가 됐다구요. 3537 그 다음에 이제 내가 미국 와가지고서 1948년, 48년에. 그렇지. 미국에 와가지고선 흥사단우 놀음을 했죠. 그러니까네 흥사단에서는 흥사단우라고해요. 회원이라고 하지 않고. 단우라고 해서. 하는데. -> 이번엔 넣을 수 없었던.... 이런 걸 알리기 위해서라도 꼭 흥사단 다큐를 해야 한다.... Q-기억에 남는 흥사단 활동 3611 예예. 그 알고보니까 흥사단은 물론 이제 그 근본정신은 정치적으로는 독립이지만 한국, 조선독립,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보게 되면 인간 수양 단체에요 그게. 수양단체. 인격을 수양한단말이야. 수련. 3636 인격을 수련하는 그래 결국은 사람이 올바른 사람이 되자. 결국은 그것이 흥사단의 원, 올바른 사람이 되면 으레 독립 정신이 들어갈 거고, 독립정신이 들어가면 올바른 독립 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흥사단의 근본정신이라구요 3700 거기에 그 저 도산 안창호씨의 위대한 정신적인 근본이 거기에 있다구요. 그래서 이거 참 좋은 수양단체라고. 그래서는 들어가면 이제 그 동맹수련이라는 게 있어요. 그래선 Number one 정직할 것, 그러고 number two 정말 나의 힘을 다 해가지고 무시를 해가지고 역행을 해가지고 내 완전한 인격을 올리자. 인격자가 되자. 3743 근데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은 인격자가 되지 않으면 독립할 자격이 없다. 이제 이 사상이거든요. 참 아주 좋은 사상이라구. 우선 정말 정직해야되고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이제 개인적으로나 뭐로나 이제.. 에.. 나라와 또 혹은 가정, 사회를 위해서 자기의 성의껏 이제 그 나를 바친다. 이제 그 사상을 갖다가 배양하는거니깐 참 좋다구. 3822 그래선 이제 제가 이제 정말 마음으로 존경하는 단체라구요. 그런데 뭐 특별히 이렇다고 하는 사업하는 건 없어요. 자꾸 격려하는 거죠. 격려해서 좋은 사람이 되자. 올바른 사람이 되자. 정말 부정하는 인격을 갖으면 안된다. 이제 그런 정신으로 모이는 참 좋은 단체라구 생각합니다. Q-샌프란시스코에서의 흥사단 활동 3900 야. 그 시작이 샌프란시스코 그 옛날에 있던 그.. 감리교 샌프란시스코 감미교가 하나밖에 없었어요. 거기가 주로 이제 그런 애국지사들이 모이는 장소였었지요. 그런데 또 다른 저희 빌딩이 하나 또 있어요. 3928 흥사단은 흥사단으로서 옛날 그 어떤.. 조그마한 이제 그 apartment같은걸 하나 얻어 가지고서 이제 모이기 시작하고 거기서 시작하.. 동지 규합을 하고 이제 그러면서 했죠. 그러니깐 시작은 샌프란시스코에서 했데요. 3953 글쎄 나도 1948년에 왔으니까 그 전에 벌써 시작할 때 그러고서는 많은 한국사람들이 이제 그.. 퍼져가지고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퍼져가지고서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죠. 리들리(Reedley)라는 데 또 이제 뭐 어데 거기 다뉴바(Dinuba)라고 그런 데에 사람들이 자꾸 퍼져서 나가면서 Los angeles가 결국은 인제 그때는 그렇게 LA가 크지 않았지만 요샌 굉장히 크지만 그때는 크지 않았지만서도 그래도 거기가 벌판이 크고.. 오렌지도 많이 거기서 나고 또 다른 건축들이 많이 들어가고 하니깐, 한국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려가게 되니까네 LA가 결국, 그 후에 이제 단서도 그걸 단서라고 해요. 단서도 장만하고 이제 그래서 그렇지 시작은 샌프란시스코래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Q-3월 23일, 자유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 4123 3월 23일... (pd: 그 스티븐슨 사건..) 그것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났죠. 그거이 이 장인환이란 사람하고 전명훈이란 사람, 두 사람이 스티븐슨이라는 소위.. 그 때 그 그사람이 외교관인데, 아마 가만 보니까 일종에.. 그 미국의 대사 격인거 같아요.. (끊김) Q. 자유의날 기념한 행사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4226 그쵸. 우리 여기서 매년 그래도 3월 23일을 기념한다구요. 거기가 역사적으로 큰 변화를 일으켰으니까 그래서 그 스티븐스라고 하는 사람이 일본에 미국 외교관으로서 갔다가, 한국에 아마 고종일거에요. 고종이 그이를 다시 불렀어요. 4253 그래선 한국에 결국은 한국 조정이라고 할 수 있죠. 한국조정에서 그 사람을 글쎄 그 뭐 이름을 어떻게 붙이면 좋을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일종의 고문. 정부의 고문으로서 그사람을 받아들였데요. 그니깐 그 사람한테 월급을 지급을 지급을 했겠죠. 4323 그리고 advice 고문격으로 참 뭐 뭘 좀 도와주면 좋겠다 그런식으로 이제 한국의 말하자면 한국 정부의 뇌물을 받고 있었죠. 고용원이지 고용원. 그런데 이 사람이 미국 정부에서 그사람을 불러들여가지구서 한번 일본과 한국 사이에 진짜 어떠한 정보를 받아야 되겠다 그런 이제 생각이 들어가지고 미국 국회에서 그사람을 불렀데요. 4409 그러니깐 그때에 그 사람이 물론 그땐 다 배로 다닐때니깐, 이제 배로 와가지고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을 했는데 그때는 그 미국도 기차로 왔다갔다 할 때거든요. 그니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그때는 배로 가게 되면 한 달이 걸렸답니다. 4436 그러니깐 아마 한달동안 배에서 있다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서 아마 피곤을 푼다고 해서 뭔가 큰 샌프란시스코 호텔. 무슨 필만(페어먼트 호텔)호텔인가 큰 거 있는데, 거기에 하룻밤을 유했데요. 4456 그 때 한국사람들 유지들이 모여가지고 이 스티븐슨한테. 어어 그사람이 샌프란시스코 도착하자마자 크로니컬 뉴스가 있는데 거기에다 대고 하는 말이 한국사람들은 일본이 통치해주는걸 좋아한다 그리고 또 한국사람들은, 조선사람이지. 조선사람들은 일본통치를 갖다가 환영을 한다 이런 말을 했거든요. 4532 그러니깐 이제 우리 한국 사람들, 샌프란시스코에 있던 한국 유지들이 그게 그렇지 않다, 사실이 아니다 그걸 갖다가 항의를 하느라고 그 사람이 묵어있는 여관에 가서 이걸 취소하라 당신 말한 걸 갖다가 취소를 하고서 그런 말.. 그게 사실이 아니다 4601 이제 그걸 갖다가 말하니깐 그 사람이 반대를 했대요. 난 취소 못한다. 그러면서 아주 아주 당당히 반발하면서 난 내 말을 취소를 못한다. 그래선 이제 사람들이 다 효과없이 그냥 돌아왔데요. 4627 그런데 그 다음날은 이 사람이 이제.. 그 때 오클랜드하고 샌프란시스코에 뱃 나루배가 있어가지고 왔다갔다 할 때 거든요 이제 그래선 이제 오클랜드에서 기차를 타고서 워싱턴 DC까지 가는데 그 전명훈인지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나와가지고서, 그 사람 이제 부두에 나오는데 부두에 배타러 나오는 걸 갖다가 쐈데요. 쏘니깐 이제 그것이 빗나갔데. 4702 그래가지고 그 사람이 맞지를 않았데. 근데 그 뒤에 장인환이가 이제 제대로 총을 쏘니까 그 장인환이가 쏜 총이 제대로 들어가 맞아가지고 그 사람이 병원에 입원해가지고 수술하다가 결국은 죽었죠. 4724 이제 그것이 이제 큰 사건이 아니에요. 말하자면 그것이 이제 계기가 돼서 미국에서도, 아이고 이거 한국에 사정이, 조선의 사정이 보통이 아니구나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죠. 그 후에 미국 정부에서 뭐 어떻게 했다는 말은 없어요. 그러나 하여튼 그 한국사람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애국..적이요, 또 그리고 한국사람들이 정말 일본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이라 그것 갖다가 제대로 거기서 나타냈거든요 4810 그랬다고해서 우리 3월 23일 그러니까 삼일절. 3월 1일하고 그 다음에 23일을 자유의 날이라고 해서 우리가 지켜, 지금까지 지켜옵니다. 기념식을 한다구요. 저도 이제 몇 번 가서 거기 기념식에 기념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 스티븐슨 암살 관련 부분 내레이션 용. 장인환 의사는 미국 감옥에서 10년 복역하셨다. Q-자유의 날 기념식 진행 정보 4840 기념식이라는게 보통 기념식이랑 마찬가지죠. 이 대게는 영사관에서 총영사님이 나오고 또 영사님도 다 나오고 그러면서 거기에 한인 가운데에 유지들이 나와서 기념사도 하고 그러고 만세삼창하고 나서 해어지는 그것이 기념사죠. 아 기념식 Q-현재 전명훈, 장인환 의사의 남아있는 흔적 4920 난 몰라요. 저희 그 사람의 동상이 있잖아요. 동상만 있고 그러고 사진도 있고 그 사진... 저희 한국에서, 한국 보훈처에서 인정한 애국자들의 사진이 있잖아요. 한인회 회관에. 근데 거기에 제 사진도 하나 있습니다. 근데 거기에 사진이 있는거지 다른 뭐 필적이 있다든가, 다른 사진이 있다든가 그건 전혀 본 일이 없어요. 저는 본 일이 없어요. Q-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났던 항일운동, 독립운동의 의미 5028 저는 이제 1948년에 왔으니까 그 전에 어떻게 했다고 하는 내막은 그렇게 없고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안창호씨 일종의 안창호 씨를 중심으로 한 흥사단 혹은 국민회. 그때 그 국민회라고 했죠. 대한인국민회. 5054 이제 막 그러구 되있죠. 그 국민회. 그래 안창호씨를 중심으로 하는 그 모임하고 그러고 이제 그 이승만 박사가 주동하는 동지회라고 있었어요. 그 동지회라는 것이 있어가지고서 이제 알고보면 그렇게 사이가 좋지 않았데요. 서로 이승만씨는 안창호씨가 하는 일이 너무.. 그렇게 박력있는 운동이 아니다. 독립운동에. 5135 사람의 인격이나 그거 한다고 해서 무슨 독립이 될 수 있냐, 그런 생각을 가지고.. 하여튼 또 대한.....대한 한인회라고 하는 큰 빌딩이 LA에 있는데, 저도 이제 가봤지만, 이제 그걸 중심으로 해서 그것이 도산 안창호선생님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고 그 다음에 동지회. 동지회 그건 이승만씨가 주동하는 동지회라는 것이 있어가지고서는.. 서로 다르게.. 5215 근데 이승만 씨는 그래도 그 사람이 smart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난 뭐.. 하여튼 뭐 부지런히 공부를 해가지고 정치학 박사를 학위를 얻었지요. 이제 그래가지고서는 이제 미국 정부에서도 그 공부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더 승인하는, 알아주는 그러한 처지 아니에요? 5242 그러니까 이승만 박사를 더 추대하고 후원하고 그랬지. 그때 사실 도산 안창호라는 사람이 지금 와가지고서 그 사람의 인격이 정말 훌륭하다는 것이 나타나지 그때만 해도 뭐 도산 안창호씨가 정치적으로 미국에 인정을 받거나 그러진 못한 것 같아요. 5307 그저 도산 안창호선생은 뒤로 임시정부 돌봐주고 후원해주고 그런데 이승만씨는 자꾸 자기를 도와달라, 자기를 도와달라 이제 그런 많은.. 그런 식으로 일을 했데요. 그러고선 동지회라구 와가지구서는 하와이 호놀룰루에 집이 있잖아요. 5336 교회가 중심인데 그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 자기 나름대로 정치운동이라고 할까? 그런걸 많이 하고 또 거기가 어디나라.. 부인이더라.. 서양 부인하고 결혼했죠. 그 외에 이승만 씨가 후손이 있다는 말은 못 들은 것 같아요. 5408 제가 아는 보이는 거는 그만합니다. 더 이상 제가 뭐 세밀한 것은 말씀드릴 수는 없구요. -> 흥사단 다큐 만들면 최근 10년 사이 갑자기 증식하고 있는 이승만 찬양파들과 한 판 떠야할 수도... ㅎㅎ;;; 어쨌든 이게 팩트라는~ 난 다큐에선 거짓말을 안 해!~ 2013년에 흥사단 창립 100주년이라 바뀐 정권 아래서 할 얘기 다 하면서 멋진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하필이면 2008년이 명박 1년이라 특집 다큐 하나 못 만들었던 김기림에 이어 지못미 안창호 선생님이 되지 않을까 싶어 두려움. -_-; 5418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