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2/단상

잡상

by choco 2012. 12. 25.

카테고리를 어디에 넣어야 하나 잠깐 고민했지만... 어쨌든 일 관련 얘기가 가장 많으니 그냥 이곳에.

 

더빙 대본 쓰다가 잠시 호작질하는 중이기도 하고.  ^^;

 

길지 않은 기간동안 그래도 꾸준히 평균적으로 한 해에 한편 이상씩은 다큐멘터리를 해왔는데... 방송이 자본에 예속되는 게 심화된 이후로 다큐를 가장한 홍보물이 늘어나면서 다큐를 해야하는 당위성 내지 작가로서 갖는 보람이랄까,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여서 결과물을 얻어내는 그 치열한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냥 적당히 욕 먹지 않게, 내 이력서에 올려서 전과 기록이 되지 않도록 하는 그 하한선에 딱 걸리도록 뽑아낸 것도 솔직히 많다.

 

그렇지만 내가 그걸 했다는 사실에 정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는 게 몇 편 있는데... 오늘 문득 내 컴퓨터의 방송 디렉토리를 보니 그 작품들이 몰린 시기가 다 참여 정부 시절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데 아무 거침이 없었고 다루고 싶은 주제는 수준만 있다면 얼마든지(까지는 아니겠지만 여하튼), 최소한 정치적인 고려나 배려 때문에 못 한 건 나와 내 주변을 볼 때 없었다.

하다 못해 참여정부를 까는 것조차도 거침없이 공중파에서 다 했다.

 

내가 했던 다큐 중에 가장 뿌듯하고 지금 봐도 행복한 작품 중 하나가 한국 현대 문학 60년.

그때 1부의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4.19를 나는 이렇게 정리했었다.

 

한국 문인들은 화전민처럼 척박한 토양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과거의 부정,

전통과의 단절과 반대로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

새로운 문학의 창조까지.

이 모든 것이 혼재하는 가운데 한국 문학은 상처를 감싸 안으며 불사조처럼 부활했다.

 

그리고 4.19로 다시 찾은 자유를 통해 갈등을 이기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1960년 한 해는 인디언 서머처럼 한국 현대 문학사에 잠시 찾아온 봄.

 이질적인 휴지기였다.

 

이 짧은 봄을 차갑게 얼려 버릴...

깊고 짙은 한파가...

감당하기 힘든 거센 풍랑이 한반도에 밀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2부는 내내 문학의,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고 했던 치열한 노력과 암흑기를 얘기하다가...

3부에 프롤로그 시작에선 이젠 하고 싶은 말은 다 할 수 있고 읽고 싶은 건 다 읽을 수 있다고 썼었는데....

아무래도 김칫국을 너무 거~하게 마셨던 느낌이... ㅜ.ㅜ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근현대사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들이니 2015년에 한국 현대 문학사 70년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고...

2025년에 80년사를 정리하는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아니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정리하는 프로그램이 나온다면 그 작가가 지금 우리 시대를 뭐라고 정리할지 궁금하다.

 

나라가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다면 내 1부의 마지막과 비슷한 시련의 시기라고 쓸 것이고...

그때도 나라가 이 꼬락서니면... 생각나는 묘사가 있으나 끔찍해서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음.

그떄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두번째 묘사가 공중파를 탈 수준이라면 난 치앙마이에서 열심히 태국말 배우고 있겠지.

 

저 다큐 내레이션에서 히로히토 일본왕을 '스스로를 신이라 부르던 한 일본인'이라고 표현했는데...

지금은 과연 가능할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 게 정말 한심.

 

진짜 진보는 어렵고 후퇴는 진짜 순식간이구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