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는 초능력까지도 끌어내는 모양.
파일을 보내줘서 집에서 하면 두시간도 안 걸렸을 일을 굳이 사람 끌어내는 바람에 공기 나쁜 사무실에서, 당장 부셔버리고 싶은 버벅거리는 컴퓨터로 점심도 못먹고 반나절을 붙잡혀 더빙 대본 쓰고... 방송국 들어가서 머리 뽀개지도록 회의하고 온 하루.
당장 팍 엎어져 자고 싶지만 오늘까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ㅠ.ㅠ 그래서 열심히 읽었다.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극과 극은 통한다.'
열린 교육, 자연주의 교육의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히는 독일과 반대로 엘리트 교육, 주입식 교육의 대표주자인 한국의 학부모들이 보는 나쁜 교사와 학교. 그리고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어쩌면 이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혼자 실실 웃기까지 하면서 봤다.
지금 독일 교육에 관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긍정적인 사례를 만났고 이 책을 읽기 직전 독일 교육에 대한 내 호감도는 하늘 끝까지 치솟아 있었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지금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나 비슷한 비율의 악화와 양화가 있다.' 는 결론이 더해졌다.
학생들의 학업 성취와 인성 교육. 교사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그걸 못하는 교사들이 많은 건 사실일 것이다. 반대로 잘 하고 있는 교사들도 분명히 있겠고 이 책에 묘사된 교사의 모습과 한국 학부모들의 동조에 분노하는 선생님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잘 하는 10명보다 못하는 1명의 폐해가 엄청나게 더 크다는 것이다.
여기 묘사된 극단적인 사례와 분노에 가득한 저자의 음성에서 우린 그걸 읽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생각과 개선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운이 좋았는지 난 이 책에 묘사되는 그런 무능한 교사 때문에 학을 뗀 경험은 없다.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대부분의 경우는 운이 좋았다기 보다는 적재적소에 적절하게 약을 쳐서 내가 교사의 그런 횡포와 무능함 내지 무관심을 받지 않도록 안배해 놓은 내 모친의 능력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약발과 상관없이 보통 학생들이 평생 한번 만나기 힘든 좋은 선생님들을 대학원까지도 꽤 많이 만났다. 그리고 그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과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내게 분명히 남아 있다.
지금도 학교로 찾아가 죽여버리고 싶은 선생님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고, 모친의 거의 예술 수준으로 승화된 약치는 기술에도 불구하고 무능하거나 나쁜 교사 때문에 고생했던 동생을 보건데... 결론적으로 나는 운이 좋았다고 인정을 해야할 것 같다.
그걸 보면 학생에게 교사의 역할은 때론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수준도 될 것이다. 따라서 나쁜 교사에 대한 어머니 혹은 아버지들의 걱정과 분노는 학부모가 아닌 내게도 와닿을 정도.
안정성과 다른 직업에 비해 여유로운 휴가 일정은 분명 교사란 직종의 더할 나위없는 매력이다. 같은 이유로 나도 교직을 이수했으니까. 차이라면 난 교생 실습 1달동안 내가 얼마나 나쁜 선생이 될지 확연하게 깨닫고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정도. 아마 한 3년 동안은 의욕을 갖고 열심히 했겠지만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데 지쳐서 아마 5년차 이후부터는 최악의 교사상 아니면 가장 무관심한 교사상을 수상해도 됐을 거다. ^^;;;
선생님의 권위는 분명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능력과 자질이 부족한 선생님을 학교에서 솎아내는 장치는 분명 필요하다.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더불어 극단을 택하지 않고 무자비한 엘리트 교육과 무능력을 양산하는 자유방임 교육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 위치할 또 다른 길을 찾아내는 작업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교육이란 정말로 어렵다.
책/기타
발칙하고 통쾌한 교사 비판서
로테 퀸 | 황금부엉이 | 2006.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