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

복지

by choco 2014. 3. 18.

오늘 날 잡고 그동안 미뤄놨던 애신의 집 바자회에 보낼 물품들 싸면서 부친과 짧은 대화.


나: 나가서 박스 좀 사갖고 올게요.

부친: 박스를 사서 보낸다고?

나: 작은 박스 여러 개 하는 것보다 큰박스에 넣어 숫자를 줄여 보내는 게 싸요.

부친: 택배비도 우리가 낸다고? 자기들이 가져가는 게 아니고?


물건도 우리가 챙겨서 보내고 택배비도 우리가 부담한다는 얘기에 완전 노나는 장사라는 부친을 보면서 우리나라에 보편적 복지가 정착될 날이 오기까진 정말 멀고도 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부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기부도 제법 크게 하신다.

팔만한데 잘 안 입는 옷 정리하시라니 꽤 쓸만한 메이커 옷들도 포함해서 주셨음.

그럼에도 내가 내 돈을 내고 내가 수고를 해서 뭔가를 나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외의 거부감을 보이신다.

부친에게 택배비 달라는 게 아니니 그쯤에서 끝을 내셨지만 이해는 못 하시는 거다.


나와 내 동생을 포함한 우리 세대의 상당수 좀 배운 쁘띠 부르조아들은 '내가 조금 덜 먹더라도 그걸 나눠서 남을 도와야 한다'는 개념이 장착된 거고,

우리 부친 세대를 포함해 복지란 단어만 나오면 경기하는 51%는 '내가 먹고 남은 거 주면 그거라도 감사해야 한다'는 게 기본 개념이지 싶다.

배 터지게 먹고 또 먹다 남은 부스러기를 주느냐, 적당히 먹고 남은 걸 주느냐 그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겠지만...

이러니 자기 밥그릇에서 딱 한숟가락만 덜자고 해도 종북이니 좌파니 빨갱이 소리가 서슴없이 나오는 거겠지.


수혜의 대상이 되는 다음 끼니를 걱정해야 하고, 다음달 집세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할 여유가 없을 거다.

나만 해도 먹고 살만하니 이런 고민을 하는 거지... 당장 내일 방값이 없고 밥 먹을 돈이 없으면 봉투 붙일 거리라도 찾고 있지 이렇게 태평한 포스팅을 하고 있겠냐.


가난한 사람들의 반란은 거의 대부분 민란으로 끝났고 성공한 혁명은 중산층의 주도로 이뤄진 게 역사적 사실인데... 새누리를 포함한 기득권층이 중산층을 어떻게든 줄여서 팍팍한 서민이나 빈민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어찌 보면 이해가 되기는 함.

그래야 먹다 남은 부스러기라도 감사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노예나 농노처럼 일을 하는 거겠지.


자신의 인생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애 낳지 않겠다는 사람들 정말 이해한다.

나라도 주인을 위해 죽어라 뼈 빠질 노비를 생산하고 싶지 않을듯.


더 뒤지면 한박스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3박스 만들고 나니 기력 상실.

내일 1시까지 끝내줘야 하는 마감을 하고 기운이 남으면 그때 빨리 하나 더 만들어서 우체국 들고 가던가.

오늘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