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많이도 마셨다. 그러나 느긋하게 티타임을 즐겼다기 보다는 홍차와 빵쪼가리고 한끼를 매우는 경향이 더 컸다. 그러나 올해 연말까지는 최대한 느긋 모드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그동안 마신 홍차들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
포트넘&메이슨 바닐라
기회만 있으면 강조하는 것 같은데 내게는 PECK의 바닐라가 궁극인 것 같다. H양이 사 준 마리아쥬 프레레의 바닐라도 또 호평 자자한 이 F&M의 바닐라도 뭔가 모자란 듯한 맛.
아니 냉정하게 얘기해서 포트넘의 바닐라는 뭔가 조금이 아니라 한 10% 이상 모자란 맛이다. -_-; 한국에서 정상적인 루트로는 구할 수 없고 보따리나 인터넷을 통해서만 구할 수 있어 상당히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걸 과연 그 가격을 주고 마셔야 하는 하는 회의가 폴폴.
다행히 호평에 홀려 지르지 않고 일단 교환을 해서 손해는 막았는데.... 먼저 수색부터. 그냥 평범한 담갈색.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겠다. 맛도 평범. 바닐라 파우더를 뒤집어 쓴 것 같이 싸구려틱한 향도 싫지만 이렇게 바닐라인지 아닌지 정체불명의 모호함도 좀 그렇다. 결정적으로 내게 불합격점을 받은 건 너무 빨리 써진다는 것. 한잔 달랑 마시는 것도 아니고 주로 포트에 넣어 느긋하게 마시는 사람에게 두번째 잔 끝무렵부터 써진다는 건 아주 심각한 문제다.
결론적으로 그다지 돈이나 이름값을 못한다. 물론 취향이 다르거나 나와 달리 좀 더 이 차의 매력을 잘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일단 한번 더 마실 분량이 남아 있으니 다시 한번 시도를 해보긴 해야할 거다.
마리아쥬 프레레의 초코민트
초콜릿 향이 나는 마리아쥬의 웨딩 임페리얼에 대한 인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얘에 대한 기도도 내심 하늘을 찔렀었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
초코와 민트라는 두 재료의 궁합이 아주 좋은 것임에도 잘 어우러져 있다는 느낌을 그다지 받지 못했다. 물론 이 차를 마실 때 내 컨디션이 바닥을 치고 심신이 피폐해져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심신이 피폐할 때 미각은 오히려 더 민감해진다. 그런 예민해진 상태에서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라면 글쎄?
향도 맛도 평범했다는 기억. 수색까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차를 마실 때 그럴 정신이 아니었음. 1회분 교환이라 이미 끝이 나기도 했지만... 내 돈 주고 구입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카렐 크리스마스
날이 쌀쌀해지니 쌉쌀한 계피향도 땡기고 해서 치즈빵과 곁들임으로 선택.
그냥 딱 기대했던 그대로의 계피향이다. 티 테이스팅 용어를 쓰자면 얄팍하고 단순한 맛. 겹겹이 쌓인 층이 입안에서 사르르 부서지는 밀푀유 같은 홍차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선택하지 말길.
하긴... 카렐의 티에 그걸 기대하는 건 좀 무리긴 하다. ^^ 정말 틴의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회사. 그래도 틴 때문에 카렐을 산다는 사람이 많은걸 보면 나름 성공적인 마케팅인 것 같음.
역시 교환으로 얻은 1회분. 맛있는 크리스마스 티들이 넘치는 관계로 교환이건 구입이건 두번 다시 내 손으로 선택할 일은 없을듯. 그러나 틴 때문에 선물할 때는 고려를 좀 할 것 같다. ㅎㅎ
해로즈 49번.
해로즈 150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블렌딩. 다즐링, 아쌈, 닐기리, 시킴, 캉그라. 이 다섯가지 종류의 찻잎을 블랜딩했다고 하는데 부드럽게 감기는 다즐링 향이 살짝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고 그렇게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명성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150주년이라는 역사에 맞게 뭔가 깊이 있고 중후하게 착 감겨드는 맛과 향이 나지 않을까 혼자 상상을 했었는데 그냥 무난한 홍차라는 느낌. 물론 브랙퍼스트로도, 오후의 티타임에도 어디에나 잘 어울릴 무던함이 있긴 하지만... 밀크티로도 나쁘지는 않을 것도 같고.
여하튼 49번에 대한 혼자 갖고 있던 엄청난 환상이 조금은 파사삭 깨어진 느낌. 다즐링, 아쌈, 닐기리는 그냥 스트래이트로 마셔봤는데 시킴과 캉그라는 처음 듣는 종류. 어떤 맛인지 한번 마셔보고 싶다. ^ㅠ^
근데 다 쓰고 나니 오늘은 어째 실패기 내지 실망기 모음이 되는 분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