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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의료사고

by choco 2014. 11. 1.

 

내 독서 스타일이 주제든 작가든 일단 꽂히면 그 분야는 완전히 초토화를 시킨다.

 

10대 후반에 꽂혔던 작가가 A.J 크로닌.

 

의사였다가 소설가가 된 좀 특이한 케이스의 작가인데 데뷔작인 모자집의 성부터 시작해서 국내에 번역된 그의 소설은 거의 남김없이 다 읽었던 것 같다.

 

그의 소설 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젊은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글이 하나 있다.

 

가장 자전적인 소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왜냐면 그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내용과 상당히 많은 에피소드가 겹침)

 

여튼 아픈 사람들을 낫게 해주는 것에 기쁨을 찾던 열정적인 젊은 의사에서 돈과 명성에 눈 먼 세속적인 의사로 변해가던 그가 다시 각성하게 된 계기가 의료사고였다.

 

돈 많은 환자들이 이 의사 저 의사 찾아다니면서 의료 쇼핑을 즐기는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인지 그 카르텔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 예전에 그와 친했던 서민 환자의 아내가 남편을 위해 추천을 의뢰한다.

 

부자는 아니지만 남편을 열악한 공공병원이 아니라 좋은 환경의 고급 병원에서 수술받게 하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에 따라 주인공은 자기 카르텔의 명성 높은 외과 의사를 소개해주지만 결국 그 환자는 잘못된 수술로 인해 사망한다.

 

친분이 있었던 환자라 수술에 참관했던 그는 자신이 소개한 외과의사의 형편없는 기술과 그의 실수 때문에 환자가 죽은 것을 안다.  하지만 죽은 환자의 아내는 주인공 덕분에 남편이 좋은 병원의 유명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후회가 없다고 오히려 그에게 감사하고 위로를 한다.

 

하지만 그는 안다.  한때 그가 몸 담았고, 이 여인이 남편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했던 그 병원의 의사들의 실력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걸.  그런 일반 공공병원에 갔다면 아주 간단한 수술로 금새 완치되었을 거라는 걸.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줄 수 없었던 주인공의 각성이 시작되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는 보장된 부와 명성, 성공을 뒤로 하고 진실된 의사의 길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가 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신해철의, 아마도 높은 확률로 의료사고일 그 황망한 죽음을 보면서 그 소설이 다시 떠올랐다.

 

아마도 그 병원은 근사한 인테리어와 편리성, 그 분야의 특화된 전문성을 내세우면서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그 빠름과 편안함, 조용함을 원하는 환자들을 유치하지 않았을까...  몇년 전 담낭 수술을 위해 밤 새워 수많은 병원들을 검색하면서 솔직히 나도 그런 류의 전문병원에 아주 강하게 끌렸었다는 걸 고백한다.

 

왜 거기 안 갔는지는?  솔직히 기억 안 남.  아마 이미 잡아놓은 예약 바꾸기 귀찮아서가 아니었을까?

 

그와 일면식도 없고 좋아하는 노래 몇 곡만 있는 라이트 중에서도 라이트 팬인 나도 이렇게 수많은 '만약'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그 가족과 친지들은 어떨지.

 

의료사고라면 부디 흐지부지 되지 말고 다 밝혀져서 억울함이 없이 저 세상에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