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하라 마리 | 마음산책 | 2014.11.?
도서정가제 직전에 출판사와 온라인 서점은 미친듯이 책을 싸게 팔고 나같은 사람들은 미친듯이 지르는 그 광란의 와중에 제일 마지막 즈음에 지른 책. 엄청 많이들 샀는지 주문하고 한참 뒤에 따로 왔는데 오늘 사진 좀 찾으려고 보니까 일시 품절이네. 다들 반값에 홀려서 그냥 지른 모양이다.
요네하라 마리는 작년인가 재작년에 ㅌ님 댁에 놀러갔다가 읽어보라고 콕 찝어서 빌려주길래 가져왔던 '미식 견문록' 이후 완전히 빠져버린 작가다. 난 게을러서 팬질을 해도 그냥 멀리서 조용히 흠모하는 게 다인데 이 양반은 살아 있었으면 한번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었던 그야말로 내게는 코드가 딱 맞는 마력의 소유자였다.
미식 견문록에서부터 그 안에 간간히 묘사되던 그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에서의 얘기가 굉장히 궁금했었기 때문에 전집이 오자마자 가장 먼저 잡은 책인 바로 이 프라하의 소녀시대.
기대를 많이 했지만 기대했던 그 이상이었다.
요네하라 마리는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공산주의 운동에 투신한 아버지 덕분에 동생과 함께 소녀 시절을 프라하에서 보낸다. 소위 민주 진영의 국가 국민이 합법적으로 공산권 국가에 가서 살 수 있었고 또 돌아와서도 편지 왕래를 했다는 사실은 내게 일종의 문화 충격이었다.
내 어린시절은 물론 10대 후반까지 소련을 포함한 수많은 공산권 국가들은 일종의 악의 축이었고 절대 가까이 할 수도 또 가까이 해서도 안 되는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존재. 프라하나 헝가리는 공산주의에 대항한 운동을 하다가 소련의 철퇴에 결국 무릎을 꿇은 아픈 역사를 가진 국가였는데 공산주의자들도 사람이었고 또 그 치하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삶과 긍정적인 점과 행복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보면서 제대로 느끼게 된다.
여기서는 그녀가 소비에트 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세명의 친구와의 학창 시절과 그들이 어른이 된 뒤 기적같은 재회를 그리고 있다.
그리스 망명자 출신 가정의 리차, 공산주의가 주장하는 평등의 의미에 대해 씁쓸하게 곱씹게 만드는 차우세스쿠의 측근이자 루마니아 상류 계층인 야나,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야스나. 분명히 실화임에도 무슨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고 반전이 이어진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정신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홀린듯이 읽어내려갔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간만에 제대로 몰입했다고 할까?
프라하의 소녀시대의 메인 얘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 그녀와 함께 소비에트 학교를 다녔던 북한에서 온 양수는 그후 북한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프라하까지 왔다면 그의 아버지는 외교관으로 상당히 고위층이었을 텐데 그 수많은 숙청의 부침에서 무사했을지. 작고 가난한 조국에 대해 굉장히 큰 애정을 갖고 있었다던 그의 삶이 나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