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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기타

애도 일기

by choco 2014. 12. 21.





롤랑 바르트| 이순(웅진) | 2014.12.19 


원제는 Journal de Deuil.


선물하기 위해 구입한 책이지만 일단 내 손에 들어온 책은 다 읽어봐야한다는 주의인 고로 포장하기 전에 잽싸게 열심히 읽었다.


롤랑 바르트의 메모를 책으로 엮은 거라 그런지 글밥이 많지 않아 쑥쑥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가는 것도 있지만 길지 않은 짧은 글들에서 많은 부분 공감을 했기에 더 집중이 잘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애도에 관한 내용이다.


롤랑 바르트가 평생을 함께해온 어머니를 잃고 자신의 상실감, 공허감, 슬픔에 대해 계속 사유하고 파헤치고 있다. 

그 깊은 성찰에 대해서 참 많은 부분 공감을 한다.

아마 가까운 사람,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를 영영 떠나보낸 경험자들은 짧은 글귀 하나하나에 가슴이 할퀴어지는 아픔이나 공감을 새삼 느꼈을 것 같다.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고. 탯줄이 끊어진 아이처럼 상실과 공허감을 느끼고, 아픔을 느끼는 예민함이 둔해지는 것이지 그 고통과 텅 빈 자리는 영영 메워질 수 없다는 것.

롤랑 바르트가 이 책에서 수없이 인용한 프루스트나 작가 자신처럼 정확하게 글을 통해 묘사해낸 사람이 적을 뿐 그 감정은 거의 동일하다.

설명할 수 없었던 그 공허감이 정확한 언어로 정리되서 다가오니 갑자기 더 슬퍼졌다고 할까... 감탄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동시에, 20세기 최고의 기호학자이기도 한 이 인물의 내면이 자라지 않은 어린 남자아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묘한 기쁨이랄까 씁쓸함을 느낀다.

어머니를 잃은 그의 심경과 죄책감, 또 어머니에 대한 그의 기억과 묘사를 보면 롤랑 바르트는 독립하지 못한 어린 영혼이다.

그가 독신이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하고 혹시라도 그의 아내가 되었을지도 모를 어느 불행한 여인을 구원해줬단 면에서 여성들과 얽히지 않은 그의 선택은 정말로 탁월했다. 

독신은 롤랑 바르트의 가장 지적이고 완벽한 선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책에 많은 주옥같은 성찰들이 있지만 내게 가장 와닿았던 구절 -롤랑 바르트가 얼마나 슬프고 힘들었는지 느끼게해줬던- 을 옮겨놓아 본다.


슬픔.  1978.7.13


물라이 부셀함에서.


영혼을 믿지 않는다는 건, 영혼들의 불멸을 믿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야만스런 일인가!

유물론은 진리이지만 그러나 그 진리는 또 얼마나 어리석은 진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