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14.12.20
미장원에서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하면서 읽은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나도 정확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뭔가 아주 많이 불편하고 나와 맞지 않는다는 막연한 이유밖에 댈 수 없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노르웨이의 숲은 힘들게 읽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고 오래 전 중학교 때인가 읽었던 스푸트니크의 연인들만으로 하루키에 관한 내 인내심은 완전히 소진되었다고 할까? ^^; 그런데 반대로 그의 에세이나 이런 여행기 류의 가벼운 글은 정말 아주아주 좋아한다.
그가 즐기는 것들. 동물, 음악, 식도락, 여행에 대한 느낌이나 시각 등은 정말 양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고 싶을 정도로 나를 마구 끌어들인다. 그가 창조한 가상세계는 내게 불편하지만 이렇게 적절한 가미를 한 그의 실생활은 정말 부럽고 따라하고픈 묘한 관계의 작가가 내게 하루키이다.
이 책은 형식상 여행기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솔직히 여행기스럽지 않다.
이 위스키 성지여행을 통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위스키 여행을 위한 정보를 얻으려는 목적으로 책을 산다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려야 한다.
책의 반은 작가의 아내가 찍은 사진들(냉정하게 말해서 대단한 퀄리티나 특별함은 잘 못 느끼겠다)이고 내용은 스코틀랜드 아일래이 섬과 아일랜드를 가볍게 여행하면서 마신 싱글몰트 위스키들과 그의 식사, 그리고 방문한 2-3군데 양조장에 대한 가벼운 얘기가 고작이다.
기대와 내용의 괴리는 일본에서 발행된 이 책의 원제목과 국내 번역본의 제목 차이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다.
하루키가 붙인 일본판의 제목은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그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혹은 병풍으로- 위스키와 여행에 관한 전반적인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을까.
2주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행에서 대단히 깊고 밀도 있는 정보를 얻어내기도 힘들 것이다.
여행만이 남겨주는 개인적인 느낌과 추억.
그것을 하루키는 위스키와 연결해서 독자들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이란 건 참 멋진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든다.
사람의 마음 속에만 남는 것, 그렇기에 더욱 귀중한 것을 여행은 우리에게 안겨준다.'
후기를 대신한 글의 얼추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슬슬 일어난다.
여행의 느낌을 공유하고 향수와 추억을 떠올리고 싶은 사람들에겐 추천.
빡빡하고 밀도있는 정보나 성찰을 원하는 사람에겐 비추.
편안한 책이 땡기는 사이클인지 개인적으로 내겐 즐거운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