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게 몰린 마감(왜 항상???!!!!!!)임에도 김무성 쇼로 인해서 오후부터 저녁을 통째로 날리고 있는 가운데 아주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줘야할 것 같아서 느낌이 다 날아가기 전에 간략하게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감상을 끄적.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빌려서 본 스크린이란 잡지에서 미녀와 야수라는 영화에 대한 기사가 나왔었고 그 영화의 감독으로 장 콕토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미녀와 야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콕토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20대에 접어들면서 나를 좌절에 빠뜨렸던 어린 천재 라디게의 소설 육체의 악마 책의 작가 소개를 통해 그의 연인이었던 장 콕토를 다시 만났다.
한 분야를 깊이 파 일가를 이룬 천재보다 다빈치니 장 콕토, 베자르 같이 다방면에 박식하고 능통한 소위 르네상스맨에게 더 끌리는 내게 장 콕토의 존재는 알게 된 순간부터 매력덩어리였다. 라디게와의 로맨스라던가 (더불어 거기서 파생된 3가지 색깔 금을 엮어서 만든 반지 다지인이라던지) 문학, 미술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흔적을 좇으며 흠모의 마음은 더 커졌다.
내 글의 꽤 중요한 단역으로 출연시키면서 그 팬심을 풀어내고 다시 잊고 살았는데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서 고등학생 때 꼭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미녀와 야수를 몇장의 사진이 아니라 영화로 다시 만났다.
1945년인가 46년에 만든 영화라던데 지금 시각에서 봐도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연출과 고급스럽고 세련된 미술. 특히 벨은 동화 속에서 막 빠져나온 것처럼 아름답고 고혹적이다. 옛 여배우들의 마력과 카리스마는 요즘 여배우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듯. 아마 흑백의 매력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싶은 환상적인 영화. 중간중간 어쩔 수 없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간혹 있었지만 그게 전혀 거슬리지 않는 완성도였다. 어떻게 그 시절에 저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감탄이 나옴.
그 영화만으로도 황송할 판에 필립 글래스라는 또 다른 천재가 미녀와 야수의 영상에 자신만의 음악을 입혀서 완벽하게 콜라보를 한 형태로.
시간을 뛰어넘은 두 천재의 만남이라고 감히 단언하고 싶음.
필립 글래스가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의 사운드를 다 제거하고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영상에 맞춰 연주하는 형식으로 재편을 했는데 본래 그런 것처럼 (아니, 내겐 오리지날 사운다가 어색하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영화의 분위기에 딱딱 맞는 유려한 선율에 아름다운 사랑의 아리아들 덕분에 95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
무대 위로 인사하러 나온 필립 글래스를 직접 본 것은 금상첨화.
한줌도 안 되는 현대음악 팬들이라 돈이 안 되는 공연임에도 이렇게 좋은 작품을 초청해준 LG 아트센터에 고맙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이었다.
이 긍정의 에너지를 받아서 일을 팍팍 열심히 해야하는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