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가 낳은 장자였던 문종 세자시절부터 그가 살아있을 때 수양대군이 머리도 감히 못 들었고 역시 정비의 장자라 왕위 계승 때 누구에게도 신세를 질 필요가 없었던 숙종이라 환국으로 마음대로 정국을 들었다 놨다 해도 그 시끄러운 조선 문신들이 찍소리를 크게 못 냈던 걸 보면 정통성이라는 게 진짜 무섭긴 한듯.
내가 제일 재밌게 방송을 했던 때가 노통이 계셨던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이때 마침 광복이며 정부수립, 국군창설 등이 10년 단위로 떨어지던 때라 큼직한 프로젝트들도 많았고 꽤 마음대로 해볼 수 있었다.
이때 썼던 한국문학 다큐 3부에서 이제는 진짜 봄이 왔다는 식으로 나레를 풀었는데 그게 사실은 1부 말미에 썼던 인디언 섬머였긴 했지만.
여하튼 3.1 운동이며 임시정부 등이 다시 10년 단위로 떨어지는 요즘 일이 재밌다.
진짜 인정 받고 대접 받아야할 분들이 햇볕 아래 나오는 걸 보는 게 행복함. 그동안 남보다 많은 뒤편을 만날 수 있는 이 직업 때문에 먹고사니즘과 양심의 하한선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힘든 때가 쫌 있었다.
정말 너무너무너무 쓰기 싫어서 한줄 쓰고 1-2시간 놀고 하면서 밤을 꼴딱 새던 세월도 있었는데 격세지감이네.
본래 말이 되는 건 아주 간략한데 말이 안 되는 걸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면 엄청 길어지고 결국은 뭔 소린지 모르게 된다. 방송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더불어 요즘 시대에 가장 간단하고 적절한 예가 죄지은 판검사들 관련 우리나라 판사들의 판결문. 말 안 되는 거 우길 때 진짜 혓바닥이 김.
일반적으로 볼 때 이미 난 우리 바닥에선 시조새인데... 내가 현역에서 글 쓸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으나 남은 시간은 이렇게 큰 스트래스 받지 않으면서 정통성 있고 말 되는 역사관을 지키면서 살고 싶다.
친일파들의 논리에 맞춰 답을 하자면... 난 그 시대에서 살아도 친일 인명사전이나 당시 신문에 칭찬기사로 나올 김무성 아버지 수준으론 안 살았을 것 같다. 대신에... 내 저항의 최대치 역시 그냥 발표 못 할 글들을 혼자 쓰고 또 쓰던 황순원 선생 정도였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