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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대나무숲

by choco 2019. 9. 14.

누워서 내 얼굴에 침뱉기라서 어디 가서 얘기도 못 하고 여기에다 끄적끄적.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잠깐은 몰라도 길게 호구였던 적은 없고 누구에게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는데 가족에겐 내가 가장 만만하고 호구인 것 같다.  초장에 잡았어야 했는데 여러 상황상 그나마 일정 조정하기 편한 내가 좀 참지가 쌓이면서 이게 모두에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느낌.  나 혼자 호구인 이 상태를 바꾸려면 서로 한번 얼굴을 붉히거나 분위기 싸해지지 않고서는 이제는 힘든 시점일듯.

좀 더 참자면 한두번은 더 참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이러다 임계점을 넘으면 (이미 용량이 찰랑찰랑 넘기 직전) 만세 부르고 난 모르겠으니 이제 다들 알아서들 하쇼!의 파국이 보임.  인간들은 왜 호의를 베풀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더 요구를 하는 것일까? 차라리 남들은 조심하고 그 선에 대해 고민하는데 오히려 가까워질수록 그걸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음. 

외가에서 삼촌들이 차례 안 지낸다고 @)@^_(ㅖ$^@*()$^ 욕을 하시는데... 그거 다 남의 집 딸들이 지내는 거지 삼촌들이 지내냐고, 나도 아빠만 아니면 이런 거 안 하고 싶다는 말이 정말 부글부글.  아빠도 결국 자기 딸 손 빌려서 원하는 차례 지내고 있구만 누가 보면 본인이 꼭 직접 차리고 치우는 줄 알겠음.  이러면 거의 다 사서 지내면서 뭘 그러냐고 하겠지만 시장에서 음식들은 그냥 날아서 제기에 올라갔다가 제자리로 가냐고 하고 싶다. 한분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한명은 거의 다 하면 나와서 거드는 척만 하면서.  왜 같이 하자고 안 불렀냐는 말이라도 안 하면.. -_-+++  지가 혼자서 좀 하면 팔이 부러진다냐?  

이렇게 욕하면서... 나도 그럴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

우리 부친과 나는... 내 지난 세월을 정말 탈탈탈 털어봐도 애틋하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억은 정말 단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 연배의 아버지들은 다 비슷하니 그러려니 하고 어쨌든 부모로서 해줘야할 지원은 아무리 박하게 봐도 대한민국 평균 수준 이상으로 해주셨다. 

사람 가죽을 쓰고 태어났으면 최소한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 한다는 게 내 모토인 고로 내가 할 도리에 대해선 불만이 없고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한다.  그런데... 당신은 단 한번도 준적이 없는 정서적 지원과 대화, 관심 등을, 그것도 내게만 요구할 때는 속에서 불끈!  왜 아빠도 안 한 효도를 내게 원하냐는 소리가 혀끝까지 밀려오는데... 그게 사실이긴 해도 상처가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진짜 꾹꾹 눌러 참는다. 

그 외로움과 관심을 원하는 마음을 알기는 하지만 나도 힘드니까 제발 내게 더 이상 요구하지는 말았으면.  더불에 뒷북 치는 관심도.  종소세 세금 신고가 다 끝난지 벌써 5달이 다 되어가는데 뜬금없이 작년에 얼마 벌었냐, 세금 신고는 어떻게 했냐. 그 정도면 그냥 가산세 내고 장부기장료 안 주는 게 더 이익이었을 텐데 왜 그랬냐 등등.  내가 물어볼 때는 알아서 하라고 짜증만 내더니 지금 와서 어쩌라고? 

솔직히 돈 주더라도 지금 세무사한테 하는 게 아빠가 해주던 것보다 100배는 더 마음 편하다. 뭘 물어봐도 친절하게 답변도 잘 해주고.  부친에게 뭘 물을 때는 무슨 브리핑 자료 준비하는 것처럼 전후좌우 맥락을 다 맞추지 않으면 이런 걸 어떻게 대답해주냐고 짜증 내고, 뭔가 제대로 처리가 안 된 거 있으면 어떻게 이 모양으로 하냐고 또 혼나고.  돈을 안 내긴 했지만 날짜 순서와 분류대로 영수증 정리하고 각종 증빙자료 준비할 때 내가 세무사 사무실 보조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차라리 그 시간에 글을 써서 기장료를 벌고 싶었다.  -_-;

우리 부친이 그렇게 대하는 게 나뿐이었기 망정이지 모든 사람에게 그랬으면 정말 딱 망하기 좋은 조직이었을듯.  뭔가 애매하고 확인하고 싶어도 짜증 듣고 혼나기 싫어서 그냥 대충 덮고 넘어가는 일이 진짜 많았고 지금도 꽤 많다.  오늘도 혼자 동동거리면서 점심 차려드렸더니 뜬금없이 저 소리 하는데 진짜 속에서 욱.

여행 가는 것도 가고 싶으면서 괜히 트집 잡고 이상한 소리 할 때마다 그럼 관두자는 말이 열번도 더 나오지만 진짜 나무아미타불을 되뇌면서 수행 중.

내가 전생에 우리 가족에게 안 갚고 죽은 게 많나 보다. 이러면 또 다음 생에서 다시 돌려 받네 어쩌네 하는데 혹시라도 내가 더 줬다고 해도 다 탕감해서 0으로 처리하겠음.  너무너무 좋았던 사람이든 힘들었던 사람이든 나중에 누구도 다시 만나는 일이 없도록 이번 생에서 깔끔하게 정산 완료합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에서 죽음 이후의 세상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영혼이 정화되서 다시 태어나고 어쩌고 하는데 제발 아니길.  죽고 나면 딱 끝이고 더 이상 아무 것도 없으면 좋겠다.  또 태어나서 다시 살아야한다면 정말 암담함. 

며느리만 명절 증후군 있는 거 아니다. 진지하게 내년 설에는 당일날 다 치우고 호텔로 호캉스나 혼자 갔다올까 함.  인간 아무랑도 보지 않고 말도 안 하고 혼자 좀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