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인문(국내)

거꾸로 읽는 세계사

by choco 2020. 5. 24.

유태용 | 서문문화사 | 2019.10.14~2020.5.22

작년 파리에서 돌아오던 비행기에서 시작해서 띄엄띄엄 읽어오던 책.  내용도 재밌고 문장도 술술 들어오는데 이북이라 그런지 희한할 정도로 읽어지지 않아서 펼쳤다 닫았다 하다가 이번주에 작정하게 끝을 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작가 나름대로 선정해서 풀어내고 있는데 그 관점이 어디에 크게 치우치거나 강요하지 않고 가능한 팩트 위주로 건조하게 나가고 있어서 그게 제일 마음에 들었다. 물론 중간에 간혹, 그 챕터의 말미에는 작가 나름의 코멘트가 있지만 그건 이런 류의 책에서 당연한 거고. 물론 그 관점이나 의견이 나와 비슷해 크게 반대나 반박할 게 없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베트남 전쟁이며, 피의 일요일이나 러시아 10월 혁명같이 비교적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내용들의 빈 공간을 채워넣는 것도 즐거웠고, 말콤 X나 모택동의 대장정 같은 건 내가 갖고 있던 파편이 큰 그림으로 완성되는 게 재밌었다.

무엇보다 내게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사라예보 사건. 오스트리아 황태자가 세르비아 청년에게 암살 당했는데 왜 그게 뜬금없이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는지 늘 궁금했는데 그 빈 공간이 확실하게 연결이 됐다. 좀 더 디테일한 내용들은 관련 시대의 다른 역사책을 읽어서 보충을 해야겠지만... 19세기부터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그 가혹한 식민지 확대와 착취는 식민지 국가의 후손이란 걸 자각한 순간부터 읽기가 참 힘듦.  나를 제국주의자들 입장에서의 라 벨 에포크 일원으로 착각하던 때 유럽 역사는 참 흥미진진하고 재밌었는데.  이제는 그 즐거움을 다시 찾기는 힘들겠지.

각설하고 또 장이 팍팍 넘어가고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른 건 팔레스타인과 독일 통일 관련 챕터들이었다. 초등학교가 국민학교던 시절, 학교는 어린이들에게 신문 읽기를 굉장히 권장했고 활자 중독이었던 나는 tv 프로그램 시간표와 블론디 만화가 있던 신문 마지막 장에서 시작해서 신문 첫장까지 뭔 소린지도 모르며 꼼꼼하게 읽었다.

때문인지 덕분인지 아라파트며 사다트, 브레즈네프의 이름을 친숙하게 접하며 성장했고 브레즈네프-안드로포프(엄청 금방 죽어 존재감 없는)-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즈노스트-옐친으로 이어지는 소련의 붕괴를 실시간으로 읽을 수 있었다. 소련 서기장은 죽어야 바뀌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고르바초프가 쫓겨나는 거 보고 솔직히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던 것도 고백한다.

베트남이며 1,2차 세계대전이며 히틀러며 4.19는 까마득한 역사였는데 내게 실시간의 기억이었던 소련의 붕괴며 뉴스 화면으로 거의 동시간으로 봤던 베를린 장벽 붕괴 역시 역사가 됐다는 걸 보며 흘러간 세월 실감.

지금 이 순간도 또 어느 시간에서는 역사가 되어 있겠지. 뭔가 당연하면서도 허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