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 아키라 2020.6.?
이 만화의 존재를 안 건 꽤 오래 전인데 이용권을 모아서 다 본 건 지난달.
천재를 좋아하는 일본 만화답게 과거에 아주아주 화려한 지휘의 천재였던 마에스트로가 사라졌다가 망한 오케스트라의 멤버들을 다시 끌어 모아서 공연을 하기까지의 내용.
이 급조 혹은 부활한 오케스트라의 멤버들은 과거 단원들. 사실상 주인공에 가깝고 관찰자이자 화자인 콘서트 마스터는 다음 시즌에 해외 오케스트라에 취업하기로 결정되어 있고 다른 단원들은 엑스트라 등으로 일본에 남아 있는 사람들. 거기에 더해 이 지휘자가 영입한 역시나 슬픈 사연을 가진 천재 일보 직전 재능의 플루티스트나 이런저런 사연의 젊거나 늙은 음악가들이다.
매 회 단원들의 사연이 하나씩 펼쳐지면서 당연히 공연이 무산될 위기도 왔다가 당연히 그래야하듯이 어마어마하게 멋진 공연으로 마무리~ 이 마지막 부분에서 지휘자의 사연도 밝혀지고.
한때 이 바닥에서 제법 오래+깊게 굴렀던 터라 납득 가능한 수준의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잘 지켰다는 것에 감탄했고 무엇보다 재밌었던 건 다른 음악 만화나 드라마에서는 조연이나 단역으로도 만나기 힘든 악기 연주자가 에피소드의 주연으로 등장하는 게 내게는 인상 깊었다.
늘 주인공이거나 최소한 주인공의 친구거나 라이벌인 바이올린이나 플륫 연주자의 드라마상 활약은 당연하지만 오보에, 바순, 호른, 트럼펫, 팀파니 연주자들의 얘기는 어디서도 다시 만나기 힘들듯.
전혀 일본스럽지 않은 그 지휘자의 스타일과 그가 구가해낸, 역시나 일본스럽지 않은 음악의 묘사는 좀 웃기고 이입이 안 되긴 했지만 만화로선 아주 완성도 높은 재미있었다.
청중은 물론이고 한가닥 하는 프로 연주자들마저 휘어잡으며 다른 차원의 세계로 끌고가는, 마성과 카리스마 넘치는 마에스트로의 시대가 이제 끝나간다는 게... 슬프다. 라떼라고 비웃고 꼰대라고 불러도 할 수 없다. 단순한 지휘자와 마에스트로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음. 큰 이변이나 기적이 없는 한 아마도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전통적인 의미에서 21세기의 마지막 마에스트로로 기록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