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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120시간

by choco 2021. 7. 21.

본인은 말꼬리잡기라고 우기지만 윤석열의 속내가 드러난 120시간에 대한 단상이랄까... 

1주일에 120시간까지는 아니지만 한 2년 가까이 3주에 한편 나가는 팀에 속해서 거기에 근접하는 노동량을 소화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게 2년 내내였다면 여기 앉아서 블로그를 하고 있지도 못할 거였고 살짝 완급은 있었음. 

1주 때는 대충 매일 10~14시간 근무. 일요일에 쉴 수 있으면 감사한 한주. 2주 때는 1주 때 아이템이 날아간다거나 하는 사고가 없으면 10시간 정도.  재연촬영을 금~일로 나가기 때문에 주말에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물론 이것도 아주 매끄럽게 진행이 됐다는 전제 아래. 그리고 대망의 3주차. 이 방송주에는 집에 들어가더라도 옷만 갈아입고 몇시간 잠깐 누웠다 오면 다행이고 사무실이나 편집실 의자에 1~2시간 기대서 자는 게 일상.  최장 근무는 이틀 밤을 눈을 1분도 못 붙이고 사흘째인 토요일 오후에 퇴근해서 다음날까지 내내 기절했다가 배고파서 깨어나 밥 먹고 다시 자고 월요일에 출근해 다시 1주 차의 루틴으로 돌아갔다. 

나만 저랬다면 누군가의 욕이라도 했겠지만 말단인 나부터 PD까지 각자 제일 바쁜 시간대만 다를 뿐이니 노동시간은 거의 비슷했다.  그나마 우리 팀은 양반이었지.  PD수첩과 그것이 알고싶다는 MBC와 SBS에서 소문난 지옥팀.  우리의 3주차가 저들에겐 매주 매일이었으니까.  세상의 소금이 되겠다는 의욕을 갖고 스스로 선택한 공채 작가부터 시작해서 모르고 그 명성에 기대 들어온 무수히 많은 계약직 작가와 AD, FD들이 조용히 손들고 사라졌음.  

여튼,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저 3주차의 노동시간을 덕분에 한번 계산해봤더니 가장 심한 때는 100시간이 넘고 평균 90시간 대였다.  북한의 정치수용소 노동시간이 100시간이 넘고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도 98시간이었다니 내가 일했던 환경이 아우슈비츠와 아오지를 왔다갔다 했구나. 일본이 조선인 강제 징용해서 끌고 간 아소탄광인가의 조선인 노동자 에게 주당 119시간 노동을 시켰다던데 딱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왜정시대 왜놈) 마인드. 

새벽에 방송국 앞에서 택시 잡으려고 기다리면서 앞에 차가 휙 지나갈 때 멍하니, '저 차에 치여 다치면 합법적으로 쉴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종종 했었는데 그게 번아웃된 상태에서 온 심각한 우울증이었다는 걸 아주 최근에야 알았다. 

요즘 방송국은 주 52시간 적용 유예를 줘서 19년 하반기부터 적용을 했는데 기존 인력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까 재방송 시간을 늘리고 노동시간을 줄여 돌리더라는.  사람을 늘려서 고용도 창출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지만 그건 이상향이고... 일단 갈리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52시간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행히도 요즘 애들은 소처럼 시키는대로 자기 몸 갈아서 일하던 우리보다 훨씬 똑똑해서 이제는 저렇게 쥐어짜면 아무도 안 붙어있으니 피디수첩도 그것이 알고싶다도 프리뷰 등은 외주알바를 써서 전보다는 훨씬 낫다고는 하더라. 그래도 제대로 주 52시간으로는 절대 못 돌아가니 시간 외로 몰래몰래 착취는 당하고 있겠지만....  앞으로 더 나아지기를.  그러려면 노동시간을 법적으로 줄이는 노력은 필수겠지. 

사설이 길었는데 주 52시간도 많다.  한국 법은 주 40시간 노동이 기본인데 52시간을 한계로 정하니까 너도나도 다 52시간 일 시키려고 눈이 벌겋게 되어 있구만 120시간?  그러고 푹 쉬게 해준다고?  한국에서???  그 근처까지 쪽쪽 짜여본 입장에서 욕이 랩으로 막 나오고 있음.  

그나저나... 저 때의 나 정말 대단했구나.  20대니까 가능했지. 지금은 밤샘 한번 하면 회복에 최소 1주일이 걸림.  이제는 밤샘해야하는 스케줄은 돈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거절.  

옛날에 까마득히 높은 언니들이 "너희 나이 때는 기운은 있는데 일이 없어 일을 못하고 자기들은 일이 있어도 기운이 없어 못한다"고 할 때는 뭔 소린가 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일하자는 연락이 오면 반가움과 같은 분량으로 귀찮음과 두려움이 밀려옴.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