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경에 나온 책인데 그때 잠깐 보다 놓았다가 오늘 끝을 냈다.
와인 관련 서적을 몇권이나마 뒤적였던 짧은 경험에 비추어볼 때 상당히 쉽고 재미있게 잘 쓴 책이다. 와인 전문 경매사인 저자의 잠재 고객이 될지 모르는 재력을 갖춘 관심있는 애호가들에게 어떤 와인을 고르고 투자해야할지에 대한 정보서로는 아주 훌륭하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이벤트를 제외하고 저렴한 1-2만원대 와인을 주로 마시는 평범한 애호가들이 와인을 고르는 참고서로 활용하려고 한다면 그 목적에는 부합하지 못한다.
투자에 좋은 와인 리스트의 높은 가격대는 뭐 투자 개념으론 당연하겠지라는 납득이 되지만 특별한 날을 위한 이벤트 와인 리스트에 기대를 갖고 봤다가 거의 기절. 나도 종종 애용하는 빌라 M, (여기부터는 가끔. ^^) 뵈브 클리코나 로랑 페리에 등을 제외하곤 모조리 0가 다섯개 이상 붙어있다. 거의 뇌물 수준으로 인사를 해야하는 상대가 아닌 이상 10만원대 이상 와인을 개인적인 이벤트를 위해 구입한다는 것은... -_-;
약간의 상대적 박탈감 + 내가 원하던 수준의 내용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만이지만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나름대로 시적으로 재미있게 풀어쓰려는 노력도 보이고 대부분의 경우는 성공했다. 재수좋게 좋은 와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내가 마시고 있는 게 무엇인지 최소한 그 가치는 알 수 있을 것이고, 또 와인 전반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는 점으로 보면 나름 만족할만 하다.
좋은 얘기는 다른 감상에서도 줄줄이 나왔으니까 난 평소 성격대로 좀 까칠한 비평을 두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저자의 엄청난 경험과 높은 식견, 지식은 인정하지만 전체적으로 내가 곧 진리라는 논조는 좀 그랬다.
책에서 극찬한 와인을 몇 종류 맛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 기억엔 고개가 갸웃해지는 게 한두 종류 있었고, 특히 저자가 칭찬한 그 보졸레 누보는 내 인생 최악의 보졸레 누보를 넘어 내 인생 최악의 와인 리스트에 올려도 좋을 정도였기 때문에 이렇게 까칠하게 쓰는지 모르겠다. 나 혼자만 그렇게 느꼈다면 내 입맛이 괴상하다고 하겠지만 선물받은 병을 같이 뜯은 가족과 친구 모두 동시에 요리용으로 쓰자고 결론을 내렸고, 단골 와인샵의 매니저도 그 상표 때문에 보졸레 누보를 싫어하게 된 사람이 많다고 했을 정도였다.
와인이란 게 운송 과정, 보관 상태 등등 많은 변수에다 개인 취향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지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감정가인 로버트 파커마저도 자기가 내는 와인 잡지에 '개인적인 취향이고 감상이라는' 전제를 달아놓는다. 객관적 사실 전달이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에 입각하는 부분에선 논조를 조금 약화시킬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또 하나는 작가보다는 편집쪽에 가진 의문. 여운을 주기 위한 마무리가 아니었을까...하고 혼자 변명을 달아주고 있긴 한데... 샴페인 섹션에 들어갔어야 할 폴 로제의 처칠이 왜 마지막 부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논조로 떡하니 달라붙어 있었을까? 짧게라도 결론을 내려주는 글을 붙이거나 아니면 차라리 세레나 서클리프에서 끝이 났어야 했다. 혹시 내게 파본이 온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글을 쓰는 지금 뒤늦게 하고 있다. ^^
중언부언이 심했던 관계로 결론을 스스로 정리해보자면 수입이 대한민국 5%에 드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실용서이자 지침서, 그 아래에 위치한 나같은 애호가에겐 꿈을 꾸며 즐기는 대리만족과 와인 지식서 정도.
비싸고 좋은 와인은 모두가 안다. 이 정도로 성장한 한국의 와인 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가격대비 그 이상의역할을 해주는 와인에 대한 정보와 소개이다. (물론 너무 히트치면 곤란하긴 하다. 그 신의 물방울 때문에 만원 후반대 가격으로 애용하던 와인이 3-4만원대 되어버린 쓰라린 경험이 있다. -_-++++)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올 댓 와인을 기대해본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재미있게 읽었다. 더불어 올해 이태리에 가게 된다면 사올 와인도 한병 정했다. 프란차코르타 벨라비스타. 이걸로 사와야지. ^^
책/실용
올 댓 와인
조정용 | 해냄(네오북) | 2006.? - 2007.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