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그 기억과 감정은 정상적인 한국인이라면 크고 작고 차이만 있지 아마 평생 지고 갈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날의 기억을 공유하던 친구는 슬프게도 너무 일찍 먼곳으로 떠났지만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시간 순으로 떠오른다.
언제 오시나 10월이 오면서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던 군밤 할아버지 트럭이 드디어 왔다는 기쁜 소식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조심스러운 주말을 보내면서 또다른 트라우마로 남을 그날의 기억을 주섬주섬.
예약이 꽉 차서 지난 토요일로 라미띠에 예약을 겨우 해서 막힐 걸 예상하고 일찌감치 강남으로 길을 나섰다. 우리를 태워준 기사분 (택시 기사분으로는 특이하게 반 윤석열이었음. 부친만 없었으면 친밀감을 마구 발산했을 텐데 부친 눈치보느라 조신하게 끄덕)은 이태원과 국중박의 할로윈 행사로 그쪽이 완전 난리라고 전해주셨다. 그날 그쪽으로 두 팀이나 태워줬는데 너무 막혀서 이태원, 이촌동 탈출을 원하던 터라 우리 콜을 반갑게 잡았다고 하심.
그날 기사님은 판교에서 두 아이와 함께 무슨 만화 캐릭터 분장을 한 (들었는데 잊었음) 부부를 태워다줬고, 강남에서 기절할 뻔한 수준의, 80만원짜리 특수 분장을 한 처녀귀신도 이태원에 내려주고 왔다고 하심. 명절 수준으로 뻥뻥 뚫리는 길을 오늘 다 이태원 쪽으로 몰려가서 아침부터 길이 하나도 안 막혔다는 얘기를 나누면서, 재수 정말 좋다고 라미띠에로 갔다.
라마띠에에서 와인을 코스별로 곁들인 거~~~한 저녁을 먹고 역시 뻥뻥 뚫리는 길을 행복하게 달려서 집으로 돌아옴. 우리 바로 앞에 선 택시에선 한복 의상의 청년 둘과 검은 코르셋 캣우먼 복장의 아가씨가 내렸고 우리는 그들을 곁눈질로 구경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술로 깰 겸 슬슬 걸어서 국중박에서 하고 있다는 K귀신 행사를 구경가자는 동생에게 너 아직 젊구나, 미쳤냐는 눈길을 날려주고 씻고 좀 뒹굴거리다가 일찌감치 기절. 술이 덜 깨고 자면 속이 별로 좋지 않은 체질이라 밤에 깨서 물도 좀 마시고 아이패드 켰다가 눈을 의심했다.
용산 소방서장님 브리핑 하는 영상 보는데 그 양반 손이 덜덜 떨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새벽 4시에 다시 추가 브리핑 하는데 희생자 숫자 변동 있을 것 같다는 소리를 들으니 내 손이 덜덜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상황을 더 볼 자신이 없어서 이상한 거 올리는, 인간이 아니다 싶은 것들은 차단만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유해 콘텐츠로 다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후회됨. 근데 그때는 도저히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여자들이라서 괜히 뒤탈 생길까봐 CPR을 안 했네 어쩌네 하는 일베발 벌레소리를 전하는 지인에게 화르르 불을 뿜고... 멍하니 배회 중.
1999년인가 분당에 있는 방송국에 일할 때 생방송 끝날 즈음에 갑자기 어마어마한 폭설이 내렸다. 버스는 당연히 못 다니고 전철을 탔다. 꽤 늦은 시간임에도 무시무시한 인파가 다 전철로 몰려서 사람들에게 꽉 끼어 밀려 움직이면서, 여기서 누군가 한발짝만 삐끗하면 다 압사당하겠구나 공포를 느꼈었다. 사고가 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무서웠었다던 그 기억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것 같은데... 희생자, 목격자, 구조자 등 그 장소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상처와 기억에서 벗어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다들 잘 이겨내고... 가족을 보낸 남은 사람들도 모두 끝까지 잘 버텨내기를.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