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기는 꽤 오래 전에 사놓은 책인데 동생이 먼저 읽겠다고 해서 줬다가 어영부영 또 잊어버리고 있었다. 입춘맞이 책장 대정리에서 발견하고 미술책에 필 받은 김에 읽기 시작~
제목 그대로의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고대 그리스, 그리고 르네상스와 고전, 낭만주의 시대를 거쳐 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까지. 서양 미술 안에 드러나 섹슈얼리티의 요소와 그 의미. 그림이 갖고 있는 상징성이며 의미있는 그림과 화가들, 그리고 배경이 되는 신화와 성서에 대한 설명들이 한 흐름으로 잘 이어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호흡이 긴 글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지루해질 때도 있지만 원래 목적에서 벗어나거나 쓸데없는 중언부언없이 주제를 끌어 이어내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화가와 모델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똑같은 그림도 화자에 따라서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도, 또 의미있는 부분으로 맞춰지는 포커스가 달라지는 것은 같은 주제 안에서 다양한 책읽기를 하는 즐거움인 것 같다.
바로 직전에 읽었던 책에 언급됐던 주인공들이, 이제 인물이 아니라, 그 내용과 그림 자체에 집중되어 설명을 듣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 모델의 이름과 성격, 화가와의 관계를 아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그림의 의미는 에드워드 루시-스미스의 설명에 나만의 양념을 뿌려 먹는 기분이다.
원제도 번역된 제목과 그대로인데 조금 알딸딸했다면 아주 약간이지만 일본과 인도 미술도 간간히 언급이 되면서 지나갔다는 것. 다른 미술사가였다면 그 정도 집어넣어놓고 세계 미술의 섹슈얼리티라는 제목으로 냈을 확률이 무지~하게 높은데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솔직히 호감이다. 그러나 동시에 별 영양가나 의미도 없이 건드리지 말고 그냥 서양 미술에만 완벽하게 집중을 해주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은...
또 하나의 아쉬움은 수록된 그림들의 상당수가 흑백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책도 그랬는지 아니면 한국에서 번역되는 과정에서 가격대를 낮추기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흑백과 컬러의 느낌이나 뉘앙스는 정말 엄청나게 다르다. 가격을 좀 더 올리더라도 미술책은 그 기능에 충실한 기본을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좀 삐딱하지만 역시 누구 아들이 하는 회사에 딱 맞는 짓꺼리 답다는 삐딱한 생각도 잠시. ^^;;;)
그리고 책에 수록된 그림이 소장된 장소라던가 하는 그런 도판 목록을 뒤에 따로 모아놨는데 그림 자체에 집중도를 높이려는 나름의 안배인지 몰라도 그건 좀 아닌 선택이라는 생각이다. 아트북을 보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언젠가 그 그림을 실제로 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되는데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앞뒤로 몇번을 뒤적이며 도판 목록을 찾아보게 될까? 지나치게 자기 편리적인 편집이라는 생각을 했다.
쓰다보니 이런저런 투덜거림이 많아졌는데 전체적으로 마음에 드는 책. 이 출판사 책은 가능한 구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게 할 정도로 내용이나 제목이 매력적이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별 아쉬움없이 충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