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그레이 | 홍한별 옮김 | 클 | 2023.5.22~6.7
원제는 The Greedy Queen: Eating with Victoria 로 2017년에 나온 책.
책을 읽을 때 한 곳에 꽂히면 그 동네만 주야장천 파는 경향이 있는데, 요즘 내 독서 경향을 보면 내내 한국에 머물다가 간만에 또 외국으로 튀긴 했는데 역시나 익숙한 곳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19세기 영국으로 간듯. 19세기 영국이나 유럽의 역사는 전 지구적으로 볼 때는 아니지만 어쨌든 승자(-_-;;;)의 역사다 보니 감정 이입 등으로 힘들지 않고 건조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게 감정 소모없이 건조한 독서를 선호하는 내 성향에 맞는 것 같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고 한국에 번역도 2019년에 됐는데 어쩐 일인지 절판도 금방 되어버려서 도서관이나 찾아야겠다 하다가 운좋게 저렴하고 상태 좋은 중고책을 구입했다.
저자는 다르지만 같은 인물을 다루다보니 직전에 읽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과 귀족문화와 연결된 심화편이라고 할 수 있겠음. 그쪽은 좀 더 보편적이고 얕게 삶의 전반을 그렸다면 이 책은 그녀가 먹은 음식을 주제로 해서 당시 역사 상황, 왕실과 빅토리아 개인적인 삶과 취향을 다루고 부수적으로 영국 중상류층의 식생활까지 만나게 해준다.
이것저것 뒤섞여서 대충만 알고 있어 헷갈리던, 알 라 프랑세즈와 알 라 뤼스가 정확하게 어떤 형식이고 어떻게 바뀌어 나갔고 영국에서는 언제 정착되었는지도 이제는 명확하게 머리에 정리한 게 개인적으로 가장 큰 지식적인 수확.
식재료에 요상한 것들 섞어서 원가 낮추는 건 인류의 역사에 유구하게 내려오는 악습이고 그걸 없애기 위한 노력 역시 끝없이 이어지고 있구나란 깨달음도 오고. 역사책을 읽으면 인간은 참 변하지 않는 존재고 역사나 과거에서 큰 교훈을 얻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마어마한 인구가 굶주리고 영양 실조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상류층의 고민은 다이어트였다고 현대의 우리처럼 계속 실패했다는 것도 이채라면 이채. 1864년에 밴팅이라는 사람이 창안했다는 식이요법은 딱 요즘의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지방, 설탕, 녹말을 뺀 식사로 살을 빼는 식이요법인데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프로이센 왕녀인 메리 공주가 이 다이어트를 한다면서 빵도 먹고 비스켓도 먹고. ^^;
책 마지막 장에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표적인 음식 레시피를 현대에 변형해 할 수 있도록 소개된 것도 몇 개 있는데 우리의 돼지머리 누른 편육이나 순대 같은 게 보여서 서양 버전은 어떨까 궁금했다.
재밌게 읽었지만 아쉬움이 있다면 도판이 너무 없어서 나처럼 그 시대를 좀 파서 대충은 아는 독자가 아니라면 이게 뭔가 그림이 안 떠오르고 몽롱할 것 같다. 국내 출판사에게는 각주를 좀 더 달아줬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게 좀 많았다.
그나저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기록을 보면 (이걸 믿는다는 전제 아래) 당시 영국 음식에 대한 평가는 꽤 높았던 것 같은데 왜 지금 영국 음식은 식도락의 지옥으로 평가 받는지 궁금함. 우리처럼 가혹한 식민지 수탈과 전쟁을 겪어서 고품격 음식 문화가 박살이 난 것도 아닌데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