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가려고 했는데 예약이 다 차서 6월로. 다행히(?) 가이드님 말로는 바람도 불고 전 주보다는 훨씬 낫다고 함. (그러나 상대적인 거지 힘들었음)
정문에서 광해군의 몰락부터 얘기가 시작. 왜 그렇게 됐을까?
웅장한 지붕과 단청들~
금천교인가? 정전으로 들어가는 문 앞의 다리. 본래는 다리 아래 물이 흐르지만 이제는 마른 천.
정전인 인정전. 대한제국 시절에 전기가 왕궁에 개설되면서 전구가 설치된 근대의 풍경. 기획했다가 엎어진 전기 관련 다큐가 새삼 아쉬워지네. 그거 했으면 여기 다 찍어보고 했을 텐데. 가이드 선생도 얘기했지만, 전기도 전차도 한중일 중에서 대한제국, 혹은 조선이 가장 먼저 설치했다. 광해군처럼 고종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긴 했다고 생각함. 외부 환경도 너무 안 좋았고 또 그걸 다 떨쳐낼 정도로 강력했거나 기득권을 일정 부분 버릴 정도로 개혁적이지 않았다는 게 그의 한계.
희정당이던가? 왕의 편전과 침전. 바로 앞에 자동차를 대는 곳을 보면서...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과 덕수궁은 근대가 함께 했구나 새삼 느낌. 주차장은 지금 매점과 카페가 되었는데 근사~
세자를 위한 동궁. 왕을 위한 의약국 비슷한 역할을 한 게 마지막.
유명한 낙선재의 장락문. 저 글자는 대원군의 글씨라고 함. 이름을 듣기 전에도 글씨가 완전 힘이 넘친다 했더니 역시나. 이 양반도 너무도 한계가 뚜렷한... 그래도 민비 보다는 덜 나쁘다고 개인적으로 평가.
헌종이 사랑하는 경빈을 위해 만든 곳이고 (가이드는 편안하게 학문을 논하고~ 하면서 경빈 얘긴 살짝 지나갔는데 그건 왕의 체면을 위한 거고) 내게는 이방자 여사를 비롯한 대한제국 마지막 황손들이 머물다 떠난 장소. 어릴 때 소풍을 궁으로 많이 왔는데 이 영역은 못 들어가는 곳이었다. 89년인가 이방자 여사가 돌아가신 뒤 현대의 흔적을 싹 다 치우고 복원한 걸로 알고 있음.
딱 맞는 건 아니나 산천은 유구한데 인걸은 간곳없네 라는 시조가 잠깐 떠올랐다.
1시간 반의 투어를 마치고 창덕궁 건너편 국악원의 카페. 시원하고 조용하고 음료도 맛있었다.
나 확실히 강북 체질인듯. 이렇게 뭔가 오래되고 작고 구불구불하고 아늑한 게 좋음.
그냥 돌아보는 것보다 가이드 투어가 확실히 세심하게 살피게 되는듯. 궁궐 투어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