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는 번역 그대로 The German Empire로 2003년에 나온 비교적 싱싱한 책이다. 두께도 얇고 또 나의 로망이 소위 -절대적으로 서양인의 관점에서- 라 벨 에포크 시대라 쉽게 생각하고 덤볐는데 소프트한 내용은 절대 아니다.
비스마르크라던가 프로이센 등 독일 제국의 전신이 됐던 그런 인물과 사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갖고 시작을 해야지 이걸 통해서 기초를 쌓겠다는 생각이라면 조금은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을 줄 것 같다.
얇은 총서지만 저자인 미하엘 슈튀르머는 말랑말랑 씹기 좋은 글쓰기보다는 아주 타이트하고 단단한 내용을 최대한 압축해서 전달하려고 하고 있다. 덕분에 낯선 이름과 지명, 또 세계사의 큰 흐름에서 생략됐던 사건들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보는 불상사가 있긴 했지만, 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진행에 대한 서술이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역사관이라 특히 더 흥미로웠음. 다 읽고 난 소감은 읽을만 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바로 얼마 전에 읽은 위대한 패배자에 등장했던 그 빌헬름 2세. 내가 20대까지 읽었던 수많은 대전사와 세계사에서 1차 대전의 원흉으로 등장했던 그가 대전 중반 이후에는 얼굴 마담이었고 지극히 무능했다는 평가를 연달아 발견하고 있는데... 해석의 주류가 바뀌는 것인지 아니면 그에 대한 실체가 벗겨지고 있는 것인지는 좀 더 많은 책을 읽으면서 파악을 해봐야겠다.
앞으로 어떤 증언이나 사실이 발견되어 내 인상을 변화시킬지 모르겠지만 빌헬름과 관련된 이 두번째 책까지에서 정립된 그의 이미지는... 단 몇십년만에 물려받은 세계 최강의 제국을 말아먹은 남자. 아버지가 피땀 흘려 이뤄놓은 수백억 재산을 돌아가시고 몇년 안 되어 경마로 다 털어먹은 아들을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 있다. -_-;;;;)
미시사나 생활사만 읽다가 오랜만에 시대를 제대로 훑어내는 역사책을 읽었더니 약간은 버거웠는데... 묵직한 책을 읽어내는 체력을 좀 길러야겠다.
책/인문(국외)
독일제국 1871~1919
미하엘 슈튀르머 | 을유문화사 | 2007.2.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