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몰랐는데 수명의 반환점을 돌고 나니 일희일비하지 말아야한다는 걸 종종 느끼는데 어제 그 경험 하나 추가.
2020년 코로나가 슬슬 언론에 시끄러워지기 시작할 즈음에 주방과 욕실 공사를 했다.
숨이 헐떡헐떡 넘어가기 직전인, 20년 가까이 쓴 매직쉐프 가스오븐을 보내주고 쿡탑을 구입했다. 인덕션이 대세로 넘어가던 때라 국산은 전멸이고 수입만 조금 남아 있던 시점이라 원하던 걸 못 하고 2순위인 이태리 포스터 5구 쿡탑을 샀는데 뽑기를 잘못했는지 얘가 쫌 시원찮았음.
참을 忍 자를 그리면서 판매처에 전화했더니 수리 기사를 보내주셨다. 설치한 거 떼고 새로 설치하는 것도 너무 일이고 아주 사소한 문제라 문제 되는 부분만 교체하고 해결. 혹시 몰라서 그 기사님 연락처는 저장을 해놨다.
그리고 4년 뒤인 어제. 새집에 설치할 직구 쿡탑 -한국엔 이제 쿡탑 수입 안 함- 을 연결하려고 보니까 가스공사에서 갖고 다니는 밸브와 직접 호환이 안 된다고 함. 호환이 되는 연결부품을 달아야 하고 어쩌고 하는데 머리가 띵. 지금 집의 쿡탑을 떼어가야 하나, 그러면 쿡탑 자리 따놓은 걸 다시 해야 하는데 어쩌나 복잡한데 갑자기 그 기사님이 떠오름.
바로 전화드렸더니 당연히 해결 가능하다셔서 오늘 출장 약속 잡음. 이렇게 또 하나 해결인가. (제발)
그때 뽑기 제대로 해서 포스터 쿡탑에 아무 문제가 없었으면 기사님 연락처 몰랐을 거고 수소문하느라 머리 터졌었겠지. 오늘의 불운이 내일의 행운으로 연결되는 게 인생이지 싶으니... 앞으로도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자.
이 얘기를 쓰는 건... 거금을 들인 장식장 문이 잘못 발주되어 문 새로 달게 생겼고, 슬라이딩 책장 들어가야 하는 자리 딱 맞게 비워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몇번이나 했는데 1.5CM 모자라서 그쪽 공사도 다시 해야 하는 바람에 이번 주에 설치할 커튼이며 가구 배송 일정을 다 다음주로 미뤄야 한다.
어차피 이리 된 거 열내지 말고 잘 챙기는 걸로. 이게 또 먼 훗날에 그때 잘 참았지, 그래도 덕분에 하나 건졌다가 될 수 있다고 믿자.
이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사 일정을 아주 넉넉하게 잡았기 망정이지 일반적으로 잡았으면 진짜 난리날 뻔 했다. 옆동 사는 지인은 주방 상판도 안 올라간 상태에서 이사 갔었는데 우리가 그럴 뻔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