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상/춤

매튜 본 로미오와 줄리엣 (2024.5.11. 2:30)

by choco 2024. 5. 14.

올초에 조기 예매한 매튜 본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 

세계적인 안무가부터 소수 외에는 존재도 잘 모르는 안무가까지, 안무 좀 한다는 사람 치고 한번은 안 건드려본 적이 없는 작품이라 솔직히 기대 반 실망할 준비 반. 

영상물 포함해서 내가 본 로미오와 줄리엣에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버전이 수십 개고 워낙 쟁쟁한 천재들이 각기 자신의 해석을 쏟아내다 보니 이제는 충격 받거나 놀랄 일은 솔직히 없다. 이제는 안무보다는 무용수의 능력이나 스토리나 배경 변형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그 참신함이나 집중력이 올라가는데 매튜 본의 로&줄은 오랜만에 🤓!! 

이제 lg 아트센터도 프로그램북 판매를 하기로 했는지, 내용은 별 거 없고 크기만 키운 프로그램을 7천원이라는 나름 거금을 주고 사서 펼쳤을 때는 시놉시스도 안 써놓고 이게 뭐냐!!!! 분노의 불을 뿜었으나 공연을 보니 이건 시놉시스를 적으면 스포일러를 하는 거로구나로 납득. 

공연장에 앉아서 불이 꺼질 때는 이 작품을 볼 사람들을 위해서 시놉을 자세하게 적어놔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만약 내용을 자세하게 적으면 극장 앞에서 "범인은 절름발이다!"를 외친 천하에 싸가지 없는 나쁜 X이 될 것 같아서 내용 설명을 통과.

매튜 본은 자신의 작품이 '댄스 시어터'라고 했다던데 이 표현에 공감한다.  바그너가 자신의 작품은 오페라가 아니라 악극이라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매튜 본의 작품, 특히 이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있다. 

풀어놔도 되는 얘기만 언급하자면 여기서는 원작에서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했던 캐플릿 집안은 통째로 삭제되어 있다. 원수인 두 집안의 대결이 아니라 디스토피아적인 세계의 통제장인 교육장(? 수용소? 기숙학교?) 안에서 만난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과 사랑. 그걸 용납하지 않으려는 경비원 티볼트가 대표하는 기성 세대의 대결과 비극이랄까.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서 스토리가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진진했던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무용수들이 다 풋풋하니 젊다고 느꼈는데 역시나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선발한 젊다 못해 어린 무용수들.  노련함이 주는 아우라와 아름다움도 있지만 또 이 시절, 이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반짝임이 있는데 그 쌩쌩함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사실 원작에서 줄리엣은 12~3세. 로미오도 잘 해봐야지 16~18세 정도니까 이게 맞지 싶긴 하다. ㅎㅎ 

주인공들의 솔로나 듀엣보다는 전체 속에서 어우러지는 스토리를 보여주는데 더 안무에 심혈을 기울였나 싶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나 잠공주에서와 달리 주인공 커플이 뚜렷하게 뇌리에 남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조화롭다는 면, 스토리를 박진감있고 집중감있게 끌어갔다는 점에서는 말 그대로 '댄스 시어터'에 적절한 안무였다. 

이렇게 또 괜찮았던, 그리고 오랜만에 참신하고 흥미로웠던 로미오와 줄리엤을 만났다.  코로나 때 무산됐던 레드 슈즈도 조만간 갖고 찾아오길. 

(미적거리다 아직도 감상문 못 올린) 작년 프렐조카주의 백조의 호수 때 마곡 엘지 아트센터에 처음 갔을 때부터 한 생각인데, 이 공연장 설계한 인간과 이 설계 승인한 인간은 앞으로 절대 공공 건물 설계 같은 건 해서는 안 됨. 

20세기에 지은 역삼동의 엘지 아트센터보다 더 형편없는 장애인 및 노약자 접근성이 기가 막히는 수준.  배리어 프리에 대한 고려나 고심은 0.00001 나노그램도 하지 않은 건물이다.   휠체어는 당연하고, 다리 아프거나 기운 없는 사람은 여기서 공연 볼 꿈도 꾸지 못함.  80 넘어 머리 하야져서도 공연장 다니려는 꿈은 여기 엘지에선 포기해야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