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공간에서 종종 만나는 늙은 사람들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혐오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 내가 얼마나 곱게 살아왔는지 반성하는 의미에서 + 적으면서 살풀이를 하지 않으면 분이 안 풀릴 것 같아서 기록.
17일에 느닷없이 이사를 온 임차인의 일을 우리쪽 부동산에 통보했음. 거기서 임차인 중개한 부동산에 연락해서 조율을 해 그날 날짜로 임대료 들어오고 관리비 등등도 알아서 원 임차인과 정리하기로 함. 그리고 다음날인 어제 날짜 수정한 계약서를 다시 쓰기로 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오전에 약속한 시간 맞춰서 부동산에 도착. 그런데 중개인도 임차인도 늦다가 먼저 저쪽 중개인 도착함. 저쪽 중개인이 죄송하네 어쩌네 웅얼웅얼하는데, 물증이 없을 뿐이지 통보 없는 갑작스러운 이사에 중개인과 교감이 있었을 거라는 확실한 심증이 있는 고로 당연히 내 얼굴과 온몸에서는 시커먼 아우라를 뿜뿜 뿜고 있었음.
약속 시간을 10분 정도 넘기고 임차인 도착했는데, 사실 난 저 노인네가 미안하다고 하면 표정 관리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해야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하등 쓸데 하나도 없는 걱정이었다. 이 할망구(할머니 혹은 노인이라는 표현을 써주기 싫음)는 나랑 눈도 안 마주치고 싹 무시하면서 탁자에 앉더니 자기 측 중개인과 이 사안과 아무 상관없는 수다만 떨기 시작.
우리쪽 중개인은 열심히 계약서에 날짜 지우고 도장 다시 찍고 하면서 수정하는데 자기 쪽 중개인에게 '새로 집을 샀더니 취득세가 0억 나왔다.' '00(울 동네 재개발 앞둔 아파트) 아파트 팔까 하는데 요즘 거래가 되냐.' '딸은 000 (역시 재개발 앞둔 좀 더 핫한 다른 아파트) 아파트에 가고 싶다고 한다.' 등등 떠드는데 요점은 "나 돈 많아!"를 자랑하고 싶은 잔머리. 뽀삐가 눈알 데굴데굴 굴리면서 잔머리 굴리는 건 귀엽기나 하지, 저렇게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짓꺼리를 지켜보자니 기가 참. 할머니... 우리 아버지도 돈 많아요. ㅎㅎ
그렇게 마지막까지 나를 그림자 취급하면서 (뭐.. 나도 피차일반. 나도 딱히 착한 인간은 아닌 고로. 아마 그 할망구도 새파란 게 싸가지 없다고 나 욕했을 거라는 데 만원 걸겠음.) 자기 얘기만 떠들다가 서류 수정 다 마치고 가는데 마지막에도 한방 날리고 갔음. 일어나면서 저쪽 중개인이 나한테 죄송하다고 했더니, 일찍 들어온 게 뭐가 죄송하냐고 (나 말고 자기 중개인에게) 얘기함.
이 할망구는 계약할 때도 비싼 돈 들여서 청소해둔 집 청소를 다시 해달라고 헛소리를 하더니 '집이 엉망이라 어디부터 손대야할 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굳이 또 하고 못 박겠다, 벽걸이 tv 설치하겠다 등등... 상식 이하 퍼레이드. 정말... 공중에 붕 떠서 양쪽에 돈 내고 있는 원 임차인만 아니었으면 바로 엎었겠구만... 아니, 여유로운 상황에서 집을 보러 왔으면 그 선에서 이미 잘랐을 거다. 집보러 오는 사람 중에 우리 집을 참 좋아하면서 당장이라도 계약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고 (전세 대출 받겠다고 해서.. ㅠㅠ) 이것저것 트집 잡는 사람도 있는데 트집 잡는 사람은 계약하겠다고 연락와도 잘랐었다.
본래 계약한 임차인은 좀 무뚝뚝하긴 하지만 사람도 점잖고 무엇보다 우리 집 참 좋아하고 아끼며 잘 살아줄 사람 같아서 원래 받으려던 것보다 조금 낮게 조정해서 계약했는데 원님 온다고 청소해놨더니 각설이가 차지하고 앉은 꼴이 되어 버렸음.
어쨌든 내가 사람은 제대로 잘 보긴 봤던거네. 점잖은 그 사람은 진상 집주인 때문에 이사 못 하고 살던 집에 남은 거니.
가장 속상한 건 어제 그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저쪽 부동산 여자에게 '만약 내가 몰랐으면 어쩌려고 했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 저 진상 할망구는 원 임차인이 내는 임대료로 자기 입주날까지 공짜로 살 생각이었나?
곱게 키운 내 자식을 불한당에게 어쩔 수 없이 시집보낸 부모 심정을 알겠음. 2년만 살고 나가면 좋겠다.
진상을 피하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진상이 떡 들어앉은 걸 보면서 그리스 비극이 떠오름. ㅎㅎ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