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모 방송국에서 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제안이 들어왔다. 그것도 또 외국과 합작. 해외합작 다큐멘터리 귀신이 나한테 철썩 들어붙었는지... -_-;;;
결론을 얘기하자면 거절을 했고 그 여파로 저녁 내내 뭔가 걸린듯 뭉근하니 구리구리 찝찝한 기분.
처음에는 기껏 생각해서 연락해준 선배 언니에 대한 미안함에. 은근히 삐진 게 눈에 확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나쁜 기분의 원인이 아주 다층적인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거절한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원고료를 포한함 제반 여건이 너무나 안 좋다.
재정이 열악하고 제작비 박하기로 소문난 그 방송사의 특징이려니 하지만 서브나 자료조사도 붙여주지 않고 메인에게 혼자 자료조사와 섭외 등등 모든 걸 다 맡아서 하랄 생각을 하는지. 1시간 다큐 하한선 원고료를 책정해놓고 서브를 원하면 자기 돈으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이건 완전히 도둑놈 심보가 아닌가. -_-;;;
프로젝트 자체는 내가 장기로 하는 분야고, 상당히 흥미가 있다.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들고 또 -이제 나를 이력서로 평가해 일하자는 인간은 없지만- 내 이력에도 충분히 한줄을 더 할만한 내용이다.
2004년부터 만 3년간 다큐에 올인한 시간. 이력서 관리와 뭔가 남았다는 보람은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손해였고 체력적인 손실도 상당했다. 사실 그것도 거절에 큰 작용을 했다. 지금부터 들어가서 3-4달 안에 끝을 내는 거라면 몰라도 12월 방송이면 내 최대 대목을 놓친다는 부담감도 컸고.
그러나. 아마도... 작년이나 재작년이었다면, 아니... 서브만 붙여줬어도 수입 손실을 감수하고 미친 척 붙었겠지만 좀 심하다.
이런 결론을 얻어내면서 아까운 프로젝트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그럼 찜찜함은 사라졌는데 이제는 또 다른 부분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다른 이유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
거절하는 나는 나름대로 최대한 예의를 지켰는데... 제안부터 거절을 받아들이는 언니의 태도가 은근슬쩍 기분나빠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센스나 능력이 전반적으로 나보다 위인 건 나 스스로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서브로 커온 것도 아니고 대형 다큐멘터리를 수행한 숫자나 객관적인 평가는 피차 엇비슷하다.
우리 둘의 관계는 수평 관계인데 오늘 말을 꺼낼 때부터 그녀의 태도는 뭐랄까... 별로 미덥지 않지만 달리 연락할 곳도 없고, 크게 잘 봐줘서 연결해준다라는 그런 느낌? 원고료를 얘기할 때도 자기보다 나한테 더 줄 리는 없잖냐는 등... 결정을 채근할 때, 내가 고민하다가 결국 못하겠다고 했을 때 말투 등등.
나도 일을 연결해주고 토스해줬건만 꼭 자기만 나한테 뭔가를 베푼다는 뉘앙스. 씹을수록 기분이 나쁘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