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해 책장에 꽂아놓은지는 몇달 됐는데 500쪽이 넘는 무시무시한 두께에 질려서 내내 눈팅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 쓰는 글에 필요한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에 잡았는데 빙고~ ^^
질려서 시작할 엄두도 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친절한 안내를 해주자면 이 무시무시한 두께 중 거의 100쪽은 후주와 참고문헌이다. 책의 사이즈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니 내용 자체로 놓고 보면 그렇게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길이는 절대 아니다. 더불어 읽기 편한 문체에 재미있는 내용이라 술술 읽어지 듯.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라마찬드란 박사는 인도인이다. 인도라는 정신과 신비체계를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성장한 덕분인지 서구문명 특유의 논리적인 사실에 철저히 입각해 살고 있지만 과학으로 풀어낼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수용이 상당히 유연하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거짓이나 무시해야할 것으로 치부하는 상당수 서구 과학자들과 다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
과학적인 동시에 철학적인 서술에 대해 놀라면서 저자 소개를 봤더니 의학박사인 동시에 철학박사. -_-;; 남은 하나도 없는 박사학위를 그것도 가장 골때리는 분야에서 두개나 갖고 있다니... 좌절감을 느끼게하는 프로필임.
내용은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다. 심리분석이나 정신과에서는 다르게 해석되는 증상을 신경학적인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올리버 섹스 박사의 책들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사실 이 책안에서 올리버 색스 박사의 임상 사례가 수없이 언급되고 추천사도 섹스 박사사 써줬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환상사지. 심리학적인 문제로 이해하고 있었던 절단 후 환상통증에 대한 신경뇌과적인 고찰과 접근법은 정말 흥미로웠다. 동시에 아주 감동하면서 봤던 닥터 쿄토 진료소에서 이 부분에 관한 에피소드에 의학적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부가. ㅎㅎ;
나르 괴롭혀왔던 해결책으로 써먹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냈다는 것도 이 책에 투자한 시간과 돈에 대한 완벽한 보상이다. 측두엽의 역할과 서번트 증후군을 적절히 이용하면 내가 납득할 수 없었던 내 글의 논리가 해결이 될 것 같다. 이걸 시작으로 이 두가지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연구와 조사는 물론 필수겠지만...
내 뇌가 그럭저럭 정상적으로 돌아가주고 있다는데 아주 감사하게 되고 너무나 평범하다는 이유로 나를 구박하지 말아야겠다는 깨달음이 생긴다. 반대로 원인을 서서히 찾아내지만 그 해결방법은 아직도 미궁 속에서 헤매는 뇌신경 관련 질병에 대한 현실에 갑갑함과 두려움을 느낀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지적자극과 재미 양쪽을 충족시키기 아주 좋은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