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피하던 한국문학 읽기가 또 시작됐다.
픽션만큼은 가볍고 말랑말랑하니 순간을 즐기지 내 감정이나 생각을 건드리지 않도록 피하면서 살고 있지만 생업님을 무시할 수는 없는 관계로 오랜만에 동시대의 순수문학 읽어주기.
80년대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을 하던 오현우라는 남자가 18년만에 출소한다. 그에겐 도피 막바지에 그를 숨겨줬던 한윤희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그를 기다리는 건 3년 전에 죽은 그녀가 죽기 전에 보낸 편지. 그녀와 함게 도피해 살았던 갈뫼라는 곳으로 간 그는 둘이 함께 살았던 집에서 한윤희가 남긴 그림과 공책을 발견한다.
그 공책에 적힌 건 둘이 함께 살았던 시절의 불안하면서도 행복했던 기억과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녀가 살았던 시간의 기록. 그녀의 흔적을 둘이 함께 했던 갈뫼에서 6일 정도에 걸쳐 훑으면서 오현우는 그녀가 낳은 자신의 딸 은결을 만나러 서울로 돌아온다.
전체적인 느낌은... 먹먹하다.
한국의 순수문학 작가들은 비극을 순수문학의 정석으로 보는 것인지 이렇게 읽고 난 뒤에 항상 후유증을 남긴다. 더구나 아주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이 안에서는 어렸다는 이유로 내가 운좋게 비껴나간 유신, 5.18, 6.29와 같은 사건들이 우리 역사 안의 개인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줬는지에 대해 어떤 웅변보다 더 크게 외치고 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 학생회관 건물과 그 주변 바닥을 채우던 그 비장하고 전투적인 걸게 그림들은 절대 주지 못하던 동요과 공감을 끌어낸다고 할까?
이 소설은 서간문이라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글쓰기 형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리고 남성적인 황석영의 소설로선 드물게 촉촉하니 감성을 자극하는 여성의 시각이 강하게 들어가 있고. 황석영 작가의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내가 기존에 읽었던 것과는 아주 다른...
황석영이란 작가의 사생활이나 인간성에 대해서, 또 그가 가진 은근슬쩍 빨간 -시퍼런 쪽에선 빨갛다고 믿고 있으니 그걸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사상에 대해선 왈가왈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변화, 시대를 관통하며 곰삭여낸 글에 대해서는 욕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다.
독일, 프랑스, 영어, 일어로 번역이 다 되었다고 하는데 그가 사용한 우리말의 표현과 전라도 사투리가 과연 어떤 식으로 전달이 되었는지 무척이나 궁금함. 이 비교는 소위 바이링궐만이 가능한 거겠지.
나의 과제는 그걸 영상으로 시각화하는 것인데...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ㅠ.ㅠ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몇개의 그림들은 있지만 그걸 관통하는 전체적인 맥락이 아직도 잡히지 않음. 덕분에 편두통이 달려있고 또 스트래스 받으면 다가오는 기면발작에 가까운 잠만이 쏟아지고 있다.
초기작 삼포가는 길에서 존재하지 않는 그 삼포를 너무 실감나게 그려놓은 경력이 있어서 혹시나 하고 물어봤더니 갈뫼 역시 작가의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 땅에 갈뫼라는 지명을 가진 장소는 많다고 함.
이외에도 작품에 얽힌 재미있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이건 나중에 시간 있을 때 한번 천천히 정리. 대가가 너무 크긴 하지만 평소 내 삶의 반경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의 조우는 확실히 즐겁긴 하다.
책/픽션
오래된 정원
황석영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