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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유럽2007

2007. 0928. 출발 -0

by choco 2007. 10. 16.

지금이야 웃으면서 이렇게 회상하지만 9월 28일은 그야말로 완전 꼬인 날.   한마디로 나를 기다리던 그 파란만장 액셀런트 어드벤처를 예고해주는 조짐이었다고 보면 된다.   떠나기 전부터 뭔가 가기 싫고 예감이 찜찜했는데 나쁜 쪽은 항상 잘 들어맞는다고 이럴 때는 확실히 뭔가가 기다리고 있다. 

일단 떠나기 직전 새벽 4시까지 열나게 작업한 걸 웹하드에 올려놓지 않은 바람에 오전 내내 쇼쇼쇼.  결국 서브작가 ㅇ양이 우리집에 가서 내 컴에서 직접 뽑아가는 걸로 마무리를 했다.  덕분에 본래 열쇠고리 정도로 마무리하려 했던 ㅇ양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예상외의 출혈...  --;

이전의 경험상 여유롭게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이제 1시간 30분의 간격을 놓고 갈아타야하는 비행기를 과연 탈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된 상황.   더 늦게라도 출발하는 다른 비행기가 있는지, 혹은 빈 공항에서 숙소 문제 등을 대한항공 직원에게 문의를 했는데 나보다 더 모르는 듯.  --;

처음엔 열이 나서 죽을 것 같았지만 열 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가는 수밖에.  시작부터 진짜 험난하군.  이걸로 액땜이 다 되길 빌 뿐이다,  올해의 나쁜 운수가 이걸로 다 벌충이 되길.  그렇게 빌면서 주면 먹고, 졸리면 자면서 날아가는데 이날 전 세계의 모든 비행기들이 다 기어나오기로 작정을 했는지 빈 공항도 에어트래픽으로 늦은 가운데 그나마 더 연착. 

빈 국제 공항을 눈앞에 두고 공중에서 40분을 빙빙 돌고 또 돌았다.  -_-;  한국에서 이미 1시간 30분을 늦게 출발했으니 예정보다 한 2시간 이상 늦었다고 보면 된다.  

금요일에 러시아워가 심한  것처럼 비행기들도 그렇다고 함.  완전히 부글부글 끓다가 대한항공이 주는 돈으로 빈에서 하루 자야하나보다 하고 포기를 했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브리티시 에어도 피해갈 수없는 이 정체 덕분에 출발을 못하고 있다는 희소식이 들렸다.  ㅇㅎㅎㅎㅎ

미친듯이 달려가서 보딩패스를 달라고 하니 카운터 직원이 뜨아한 표정으로 "너 아직도 보딩을 안 한거니?"  "대한항공이 2시간 연착했거든."  이런 대화를 주고 받고 나서도 1시간이나 더 지난 다음에 런던행이 출발했다.

만약 정시 도착해서 그 좁은 구석에서 앉지도 못하고 내내 기다렸으면 나도 무지하게 열받았겠지만 나로선 즐거운 연착.  이렇게 브리티시 에어의 런던행이 2시간 가까이 딜레이되면서 아주 우아하게 탑승을 했다. 

급히 뛰어다니고 어쩌고 하느라 잘 살펴보진 못했지만 빈 공항도 지정학적인 위치나 드나드는 나라의 숫자에 비해서 공항이 아담한 것 같다.  정신이 하나도 없는 두바이 공항과 달리 왠지 모르게 조용한 느낌도 들고.  어쨌거나 공항이 작은 덕을 봤으니 불평할 수 없음.  LA 공항처럼 건물을 옮길 때 버스를 타야하는 수준이었으면 오늘 일정을 절대 장담 못하지.

영국이 오스트리아보다 1시간 느린게 정말 다행이다, 아니면 도착해서 호텔까지 어떻게 가야하나 고민을 했을듯.  잽싸게 입국절차 밟으면 전철 끊기기 전에 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내려서 별 탈없이 입국심사 마치고 전철역으로 달려갔다.  예전에 아랍 애미레이트 타고 입국했을 때는 터미널에서 전철역까지 엄청 갔던 기억이 나는데 자국항공사라고 배치를 잘 해줬는지 이번에는 아주 가까운 곳. 
룰루랄라 신나서 갔는데... 그런데... 표를 파는 인간들이 모두 퇴근하고 없다.  -_-;;   자판기는 모조리 카드 아니면 동전만 가능.   무임승차를 해서 내린 다음 내리는 곳에서 사정을 얘기하고 요금을 내야하나, 무임승차라고 벌금을 무지막지하게 때리면 어쩌나 고민하는 가운데 옆에 늘씬하게 쭉 빠진 영국 아저씨가 표를 카드로 사고 계심.

체면불구하고 다가가서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동전 좀 바꿔주세요." 라고 굽신굽신.  -_-;   다행이 동전이 있는 아저씨라서 유일하게 갖고 있던 5파운드로 동전을 바꿔서 표를 사는데 성공했다.  

여기서  다시 챙긴 교훈 하나.  다시 갈 확률이 있는 나라의 동전은 절대 홀대하지 말고 잘 챙겨서 오고 또 적은 단위의 지폐를 꼭 챙기자!  저번에 쓰고 남은 그 5파운드짜리 지폐가 아니었으면 정말 50파운드짜리만 있는 가운데 큰 곤욕을 치렀을 듯.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면서 전철을 타고 이제 호텔을 향해 가는 와중에... 시간이 늦은 만큼 타고 가던 전철이 한국으로 치면 4호선에서 안산이 아니라 사당쯤인 것이라 중간에 다 내려야하는 것이다.  왜 이 사람들이 중간에 다 내리나 멀뚱거리고 있으니 맞은 편에 앉았던 -퇴근하던- 히드로 공항 직원이 "이 전철은 여기가 종착역이니까 내려서 다음 걸 타야 한다."고 친절히 안내.  하도 많은 일을 겪다보니 이제는 헤프닝도 아니다.

내려서 다음 전철을 기다리는 가운데 이 복받을 친절한 총각에게 왜 왔냐, 어디서 왔냐, 어디 구경할 거냐 등등의 기본적인 대화를 나누고 -아마도 나 혼자였으면 절대 못 타고 보냈을- 반대방향에서 온 전철을 집어타고 -왜 반대 방향으로 올 수 있냐고???!!!- 다시 목적지로.

이 총각은 런던의 지하철은 물론 버스 노선까지 포함된 지도를 하나 하사하시고 (런던에서 내내 엄청 유용하게 썼다) 거기에 친히 전화번호까지 써주셨다.  뭔 일 있으면 연락하라고.  내가 얼마나 어리버리 불쌍해 보였는지 그걸로 완전히 파악.  -_-; 

내년에 일본으로 휴가 갈 계획이라길해 내가 적자를 보탠 한국 관광사업을 조금이라도 돕는 의미에서 한국도 좋다고 뻥튀기를 해주고 혹시 오면 연락하라고 나도 명함을 주기는 했다.  그렇게 곳곳에 있는 도움의 손길을 받아 무사히 호텔로. 

히드로 공항 역에서 동전 바꿔준 아저씨부터 시작해서 이 아저씨 포함해 이번엔 정말 낯설지만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앞으로도 쓰겠지만... 정말 그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한 친절일지 몰라도 상대에겐 아주 엄청난 도움이나 거의 구원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는 걸 실감한 고로 약효가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정말 친절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시작부터 초특급 버라이어티하고 엄청나게 긴 9월 28일을 보냈음.

먼저 도착한 동생과 ㅎ양도 나름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내가 겪은 일들로 모두 빛을 바래버렸음.  

제발 나머지 일정은 탈없이 마음 졸이지 않고 조용히 흘러가주길 기대하면서 취침.

본래 기내식 같은 건 찍는 취미가 없는데다가 위에 썼듯 이 날은 사진 찍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진들은 다음 회부터~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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