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주였다. 오늘 밤샘 파~뤼를 하자고 설친 게 후회될 정도로. 있을뻔 했던 오늘 마감이 하나 더 살아있었다면 손님들 불러서 상 차려주고 나는 방에 엎어져서 잤을 것 같다.
알고 있었지만 새삼 확인한 사실.
난 8시간의 수면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두뇌활동도 둔해지고 성질도 아주 더러워진다. 주말 내내 촬영으로 뺑이치고 월요일 아침 10시에 회의라는 그런 무식한 스케줄. 내 진상 리스트 10위권에는 오를 게 확실한 번역자 덕분에 대본을 이번 주에 도대체 몇번을 뒤집었는지.
거기다 이미 잘랐으니 욕하면 안 되겠지만 금요일 촬영허가 공문을 보내지 않는 대형 사고를 마지막까지 치고 떠난 서브작가 덕분에 수요일에는 대본 수정하다 말고 열나게 장소 섭외를 내가 직접 (내가 이런 걸 한 군번이냐고!!!!) 미친듯이 했다.
어제 새벽에 일어나서 대본 쓰고 아침 10시까지 다시 헌팅. 왜 내가 가야하는지 솔직히 회의가 들긴 했지만 한참 바쁠 때 2주나 빠져나갔다 온 죄(?)가 있어서 순순히 나가줬음.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줄줄이 만난 덕분에 예정에 없던 -사실 전혀 쓸모도 없는- 헌팅이 오후까지 이어지고 돌아와서 또 회의. 그리고 야밤에 수정. 피로도로 따지면 어제가 바로 그 한계점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어제 구경 다녔던 북촌 구경이 꽤 괜찮았고 조만간 일과 상관없이 편한 복장으로 찬찬히 구경가면 좋겠다는 결론으로 바뀐다.
본래 어제 다녀온 북촌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엉뚱한 불평만 잔뜩. ^^;
옛날에 가회동에 있는 공부방에 애들을 가르치러 다녔기 때문에 그 동네는 꽤 익숙하다. 처음 갔을 때는 서울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 문화적인 충격을 받을 정도로 지금보다 더 옛스럽달까... 내가 움직이는 반경보다 한 10-20년 정도 더 옛날 같았다.
지금은 그때 그런 느낌은 많이 사라지고 낡았던 한옥들은 이제 없어서 못 파는 비싼 매물이 되어있다. 차가 못 올라가던 길은 포장이 잘 되고 또 예쁜 보도도 깔려 있고. 비싸진 집값 덕분에 아마 그 아이들은 여기에 살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이제 모두 청소년이나 풋내 나는 어른이 되어 있겠지.
한옥을 본래 구조대로 복원을 시키면 정부에서 5천만원의 지원금을 주는 것 + 한옥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 덕분에 옛 한옥을 새로 복원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매물로 나와 있다는 집 하나를 보면서 나도 돈이 있으면 수리해서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마당이 생긴 뽀삐가 제일 좋아하겠지. ^^
처음 간 곳은 봉산재.
서울산업대 교수님이 작업실 겸 전시실로 쓰려고 복원한 곳으로 정말 예쁘다. 내가 한옥을 사서 내 집으로 수리를 한다면 벤치마킹을 하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전통 옻칠 기법을 활용한 작은 나무 가구며 그릇, 방석 등은 가격도 괜찮고 정말 마음에 들었다. 교수님과 얼굴도 익혔으니까 조만간 쇼핑 겸 찬찬한 구경 겸 다시 놀러갈 예정~
작업실용 한옥은 현대적인 느낌을 가미해서 완전히 새로 지었고 거주하는 살림집 한옥도 따로 구입해서 올해 이사들어오셨다는데 역시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 센스있게 수리를 했음. 본래 방이 11개나 있는 완전히 굴집같은 그런 구조였는데 3칸은 헐어서 마당으로 만들었고 따로 딸린 3칸은 분리해서 렌트를 주고 중심 구조만 살려서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는데... 아주 추운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는 어떨지 몰라도 가을에 찾아간 입장에서는 정말 살아보고 싶었다.
북촌문화센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한옥센터로 가회동 민대감댁 한옥이다, 매동 마님집이다 등등의 얘기만 무성하지만 실제 건축주가 누구였는지는 확실치 않다고 함. 해설사분 설명으로는 기단이나 처마의 구조로 볼 때 양반의 집이라기 보다는 돈 많은 상인의 집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해설사는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다른 모처에서 들은 전문가 얘기론 이 집은 정부에서 발주해서 지은 한옥의 가장 나쁜점의 집대성과 같다고 한다. 원래 자재는 정말 나뭇결이 예쁜 좋은 나무였는데 다시 지으면서 그 좋은 나무들은 싹 사라지고 (어디로??? 빼돌린 건가???) 나쁜 나무를 이용해서 지었는데 나무가 나쁜 걸 감추기 위해 칠을 진하게 했다고 한다.
좋은 나무는 결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 결을 즐기기 위해서 절대 칠을 진하게 하지 않고 천천히 세월의 흔적이 묻도록 한다고 함. 나무가 좋지 않을 경우 칠을 많이 한다는데... 덕분에 하나 배웠다.
그러고보니... 남산한옥마을의 한옥도 중간에 공무원들이 하도 많이 떼가는 바람에 자재를 수입미송 같은 걸 써서 여기저기 뒤틀리고 난리라는 얘기를 오래 전 다른 대목한테 들은 기억이 나는군. 자기 집 짓는 것도 아닌데 내집처럼 신경쓰라고 하는 건 무리겠지만 그래도 정도껏 해먹을 것이지. 지금도 이 정도인데 부패의 대명사가 꼭대기에 오르면 그 뒤를 따르는 무리들이 어떤 잔치를 벌릴지 기대(?)되는군.
구한말이나 일제시대를 다루는 소설이나 각종 인문서적에서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동네인데... 1930년대에 서민주택으로 개량되어 대량 분양된 이 동네의 이전 모습이 어땠을지 불현듯 궁금. 그야말로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있었을 텐데. 세월이 조금은 정지된 그런 고즈넉한 느낌이 살아 있어서 좋다.
얘기가 샜는데 그 다음에는 창덕궁 바로 옆에 있는 ?덕재인가 방문. 예전에 국무총리하셨던 분의 어머니가 살던 집으로 기증을 하셨다고 한다. 궁궐 바로 옆에 있는 떡 벌어진 기와집이라고 할까. 확실히 집의 규모나 꾸밈이 앞서 봤던 서민 가옥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한쪽에 일제시대 적산가옥풍의 건물이 있는 것도 이채라면 이채. 일제 강점기에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적산가옥풍으로 많이 집을 지었으니... 이 집안이 정말 대대로 내려오는 고관대작의 집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궁전 바로 옆집에 일본풍 건물이 있다는 게 기분이 쬐끔 묘하긴 하지만 역사의 한 부분으로 봐야겠지. 그렇게 따지면 덕수궁 안에 있는 그 서양풍 건물도 문제가 있는 거니까.
이쯤에서 회사로 돌아서 빨리 회의를 마치고 잠을 보충하고 싶었지만 북촌문화센터에서 만난, 전직 KBS 기자라는 너무나 오지랍 넓으신 분 덕분에 또 끌려서 삼청동의 다른 한옥으로. -_-;
내 본래 이돌뎅을 싫어하지만 얄미운 강아지 우쭐거리면서 X 싼다고 한번 미우니 미운 인연이 계속이 되는 것 같다. 본래 차로 갈 수 있는 곳인데 그곳에 사시는 이돌뎅 집앞 골목에 새로 포장을 해드리느라 좁은 골목길을 통제하는 바람에 근처 골목에 교통대란이 났다. (알아서 기는 종로구청? 아님 서울시청?) 시장하면서 벌어놓은 돈도 많을텐데 직접 좀 깔던가 하지.
덕분에 내려서 그 비탈진 길을 걸어걸어 (이런 재난을 예측하지 못하고 하이힐 신고 있었음. ㅠ.ㅠ) 발목 부러뜨릴 뻔 하면서 겨우겨우 내려가 북촌문화박물관으로. 예상대로 우리 촬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건물이지만 관장님은 좋으셔서 도움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산책코스로도 좋으니까 여기도 날 잡아서 한번 구경을 가봐야겠음.
근처에 새로 싹 수리해서 아직 비어있는 한옥도 구경을 했는데 보증금 5천에 월세 250만원. -_-; 이 좋은 집이 왜 안 나가나 했는데 가격을 듣고 나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차도 안 되는 그 골목길에 그 돈을 매달 주고 누가 들어올까? 전세라면 몰라도...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어제는 그다지 좋은 걸 몰랐지만 오늘 떠올려보면 산책코스로도 기가 막히게 좋았던 곳이었다. PD랑 같이 "역시 사람은 사대문 안에 살아야 돼~"를 외쳤음. ^^ 나중에 돈 벌면 정말 사대문 안에 작은 한옥을 사서 예쁘게 꾸며놓고 살고 싶음. 과연 그날이 올까???
일본 사람들이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사진찍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피사체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외국은 정말 본전이라도 뽑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를 쓰고 사진을 찍지... 본래 사진찍기에 취미도 없는 데다가 언제든 갈 수 있는 지척에 사는 사람으로선. ^^
내 머릿속에 남은 그 그림과 느낌이 소중하다고 주장. 더 추워지기 전에 산보 삼아 슬슬 구경 다녀야겠다. 맛있는 곳도 많고... 역시 강북이 좋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