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미장원에서 시작해 방금 다 읽었다.
제대로 된 순서라면 고구려의 발견부터 시작을 했어야 했지만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했음.
정치보다는 먹고, 자고, 입고, 노는 쪽에 관심이 집중되는 관계로 숲보다는 나무를 먼저 보기로 결심했는데 재미있었다. 생김새, 생활, 내세관까지 머릿속에 기본 그림을 그리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인듯.
역사 개설서를 쓸 때 역사학자들이 균형잡기 가장 힘든 부분이 재미와 내용의 조화라고 하는데 아주 수준높은 독자라면 또 다른 견해가 나오겠지만 내 선에서는 적절한 무게감과 가벼움이 공존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자랑할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갖고 있던 역사 인식과 지식들이 현재 상태에서는 크게 벗어난 오류가 없다는 데도 이건 스스로에게 만족. ㅎㅎ 아마도 환단고기에 대해 엄청나게 비판적인 교수에게 한학기 동안 한국사를 배웠던 것이 주효한 듯 싶다. 화랑세기로만 기억되던 박창화란 이름이 새롭게 와닿는 것도 내 개인적으로 수확이라면 수확.
고구려에 대해 막연히 갖고 있던 이미지들이 정돈되는 느낌... 그리고 단순한 지식을 넘어서서 읽는 내내 내게 질문을 하게 했다.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괜찮은 책의 나쁜 점 좋은 점은 그 책을 읽은 뒤 읽고 싶은 책들의 리스트가 늘어난다는건데 이것 역시 그렇다. 엘리아데의 책들이 갑자기 땡기고 있다는... 얘네들은 무~지하게 비싼데.... ㅠ.ㅠ
여하튼 여기서 생긴 의문점이나 더 알고 싶은 얘기 등등을 정리하려면 일단 고구려의 발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 삼국왕조야록은 필수겠음. 걔네들을 읽다보면 또 더 읽어야할 책들이 기어나오겠지.
김용만씨의 바램처럼 어느날 기적처럼 고구려 역사책에 세상에 등장해서 여기 쓰인 내용들 대부분을 뒤집어 엎는 책이 또 새로 나오면 좋겠다. 그래야 저 표절콤비 송지나, 김종학이 태왕복사기 같은 뻘짓을 못하지. 이런 류의 바람은 역사학자들 모두 갖는 모양이다. 2002년에 나온 히타이트란 책을 읽었을 때 그걸 쓴 학자도 같은 소리를 했음. 몇년 안에 획기적인 유적이나 유물이 발굴되어서 여기 쓴 걸 다 뒤엎고 새로운 사실을 전달하는 책을 쓰고 싶다고...
남 욕하지 말고 확실치 않은 역사라는 널널한 굴레 안에서 마음껏 상상할 수 있을 때 빨리 뭔가 써야겠지.
그러나... 다음 주제가 고구려가 될지는 여전히 미정. 일본도 같은 강도로 당긴다. 만약에 그 주제로 다큐멘터리가 들어간다면 세이브를 해두는 것이 나을 텐데... 어찌 될지 아직 모르겠음. 내키는대로 10월까지 이것저것 읽고 정리하면서 그때 가장 잘 익은 것을 끄집어 내야겠다.
책/인문(국내)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김용만/ 바다출판사/ 2005. 8.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