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기운이 남는지 그냥 몇줄 끄적이고 싶어 앉았다.
지금 황석영 편의 더빙 대본을 쓰고 있고 5.18 에 관한 부분을 아주 일사천리로 끝을 냈다.
작가가 갖고 있는 역사관과 내 생각이 비슷하기 때문에 아무런 갈등없이 황석영 작가의 시점에서 모처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좔좔좔 풀어놨다. 내일 맑은 정신으로 보면서 지나치게 과도한 감상은 걷어내야겠지만 방송에 부적합한 단어들은 없다.
그런데 문득. 이게 과연 검열에 걸리지 않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전이라면 이런 생각조차도 않았을 거다. 그런데, 중도 우파도 아니고 그야말로 오른쪽 끝으로 달려간 이 나라에서, 민주화며 독립운동도 다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인간들이 윗자리를 차지한 상황. 저 인간들의 비위를 거스를까봐 이 조직의 위에서 조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불쑥...
15년 전에는 나랏님놈을 씹는 말을 마구 할 때 -그때는 글을 쓰지 않았으니까- 이런 소리 했다고 잡혀가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종종 했었다. 피래미의 피래미 새끼도 아닌 우리 같은 인간들에게 신경 쓸 푸락치며 등등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농담의 20% 정도엔 분명 공포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난 15년간. 하고 싶은 말은 그야말로 겁없이 했고 글을 쓸 때 이런 씁쓸한 두려움이나 고민은 안 했던 것 같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지난 2002년 대선 때, 전당대회며 이회창 후보의 홍보 관련 일을 했었다. 민주당 라인과 줄을 댄 감독이 딴나라당쪽 감독보다 1주일 늦게 오퍼를 한 바람에 업자로서 최소한의 상도덕상 도저히 그런 겹치기를 할 수 없어 ㅠ,.ㅠ 포기했던 노무현 후보측이 결국 당선되고 대통령이 됐을 때 같이 일했던 스텝들과 '우리는 이제 5년간 망했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대화는 웃으면서 오갔고 아무도 진심이 아니었다.
내 경우, 혹시 몰라서 한 1년 정도는 정부 관련 일을 할 때는 한나라당 관련 기록은 프로필에서 빼는 소심한 행동을 했다는 고백을 하긴 해야겠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다 넣고 가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아예 딴나라당에 상주하던 감독 역시 지난 5년 동안 정부조직 중에 가장 보수적인 국방부며 육해공군을 오가면서 아무 문제없이 일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정권에서는 과연?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고 금강산에 가서도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는 그 자유가 저 돌뎅이의 이름을 넣어서도 가능할까? 지금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면 과연?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이 통제되는 15년 전으로의 회귀와, 5년 전에도 소름 끼치게 하던, 10년 굶은 저 거지떼들의 아귀 다툼을 맨정신으로 볼 수 있으련지. 나 자신의 안위를 일순위로 생각하는 인간이 되다보니 눈과 귀를 다 막고 벙어리가 되서 5년을 살리라 작정하고 있지만 문득문득 치솟는 게 벌써부터 체한 것처럼 갑갑하다.
가능성없는 소망이지만 제발 5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조용히 있는 것만 다 챙겨서 알뜰살뜰 뜯어먹고 사라져주면 좋겠다. 그래야 수선이라도 가능하지. -_-;
죽은 자식 나이 세는 짓은 하면 할수록 열받으니 그만 하고... 저놈의 운하인지 삽질인지를 반대하는 홍보물이건 광고건, 프로그램을 누가 만든다면 내가 열 일 젖혀놓고 평생 들일 공을 다 들여서 공짜로라도 기획하고 대본 써주겠구만.... 누가 안 만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