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다니면서 역기 운동을 할 생각이 아닌 한 괴벨스를 외출용으로 들고 나간다는 건 한마디로 미친 짓이라 중간에 외도(?)한 책이다. 작고 적당한 두께에 술술 넘어갈 스타일의 책이라서 선택.
이 출판사에서 표정있는 역사라고 하는 시리즈물로 내놓는 모양인데 고려로 시집 온 몽고공주들의 얘기도 그렇고 이 책도 꽤 읽을만하다. 첩자라는 테마로 우리나라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중국의 첩자까지 묶어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왜 조선과 고려는 없냐는 질문을 할 것 같은데 -나도 했다- 역사에 남은 기록도 없고 또 조선은 알다시피 지극히 내부집중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다보니 해외를 상대로 한 조직적인 첩자 활동을 했을 가능성이... 내부에서는 정적 견제용으로 은근슬쩍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적이고 또 유교적 기준에선 추잡스런 행위를 역사에 남겼을 리가 없겠지.
기록에 남은 흔적만으로 볼 때 고구려와 신라는 그야말로 총력전에 가까운 첩보전을 펼친 것 같다. 설화로 어릴 때 이야기 한국사에서 읽고 잊어버렸던 김유신과 백석의 사건이며 김춘추의 고구려 방문. 그리고 잘 몰랐던 을지문덕, 연개소문의 첩보부대 등등.
막판에 중국의 첩자관련 기록들이 등장했을 때 잠시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역사를 훔친 한국의 첩자가 아니라 그냥 첩자이니 틀린 소리는 아니지. 그리고 중국 기록으로 인해 내용이 더 풍부해지긴 했다. 한국 역사의 기록이 더 많아 좀 더 많은 우리역사 속 첩자 얘기를 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빈약한 기록 속에서 읽을만한 한권을 채워넣기 위한 작가의 눈물 겨운 노력이 보였다. ^^
내용도 쉽고 특히 마지막에 부록으로 정리해놓은 역대 첩자 관련 용어들은 이 내용을 테마 내지 양념으로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현재까지 2권 본걸로 단정짓기는 조심스럽지만 참 좋은 기획이고 괜찮은 결실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0쪽 내외의 책이 9900원이라니 좀 비쌈. -_-; 뻣뻣한 고급용지에 컬러인쇄라는 화려한 치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비용이라고 짐작은 되지만 솔직히 평범한 종이와 흑백인쇄로 가격을 낮춰주는 게 독자입장에서는 더 감사할 것 같다.
책/인문(국내)
역사를 훔친 첩자
김영수 | 김영사 | 2008.1.2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