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 길 컨테이너 용접 - 이명박 시가전준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전두환 정권의 말기로 진짜 살벌했었다.
참여는 안 했지만 시위가 일상이다보니 바로 앞에서 느꼈던 그 살벌함의 정도로 따지면 솔직히 지금과 비교할 수도 없다. 대형 시위가 예고되자 사대문을 통째로 막아 아예 통행을 못하게 한 -말 그대로 경찰과 관계자 말고는 쥐새끼도 얼씬 못한다- 전두환에 비하면 그건 봉쇄라고 할 수도 없지.
집에서 평창동에 있는 학교까지 가려면 중심부인 서울역이며 시청, 광화문을 필연적으로 통과해야 하는데 전두환은 항상 정확히 그 코스를 봉쇄했다. 그러는 날에는 무거운 악기와 책가방을 지고 미아리 고개 쪽으로 넘어가서 거기서 전철을 하염없이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 라인을 다 막지 않더라도 시위로 길 막히고 최루탄 냄새 맡는 건 그야말로 일상이었고 버스 갈아타던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경들에게 악기 가방을 무수히 검색당했다. 바이올린처럼 한눈에 표가 나는 악기는 그나마 괜찮지. 분해해 가방에 넣으면 파이프들이 줄지어 선 것 같은 내 악기나 호른 같이 잘 알려지지 않는 금관악기는 온갖 질문을 다 받고 설명까지 해줘야 했다.
하도 여러번 검색을 당해서 짜증나서 반 농담으로 "폭탄이에요"라고 대답했는데 진짜 살벌하게 검사하더라. 지금 생각하면 그 전경이 그나마 착했고 나도 어린 게 간이 배밖으로 나왔었지. -_-;
수시로 길 막히고 버스 잘 안 오고 또 길 빙빙 돌아서 집에 가도 늘 전두환 욕을 했지 시위하는 사람들 욕은 안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29만원 일당들의 자손들이 엄청 많이 모여있던 그 학교에서 진짜 간 크게 살았던 것 같음. 지금 같으면 그렇게 못하지. ㅎㅎ;
그렇지만 대학에 가서 20대 때는 시위대의 끄트머리에도 서본 적이 없다.
운좋게 가장 치열한 시기를 비껴 일단 큰 게임은 끝난 상태에서 대학에 들어가다보니 솔직히 내가 나서야 할 절실함을 느끼지 못했다. 또 내가 가장 싫어하던 그 29만원과 그 친구들이 하는 딱 그런 권위주의적인 행각을 학생회장과 그 일당들이 하는 걸 보면서 같은 구멍의 오소리라는 실망을 크게 했던 탓도 클 것이다. 기본적으로 난 "나를 따르라~"하면서 진짜로 앞장서면 쫓아가지만 뒤에 앉아 폼 재는 놈을 위해 총알받이가 되기엔 좀 이기적이고 머리가 돌아가거든.
그때 운동권에서 한자리 했던 사람들이 한나라와 이메가 일당들과 달라붙어 똑같이 노는 걸 보면 어린(?) 내가 제대로 봤었구나라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그리고 그 정도 레벨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경력을 팔아 고결한 척 하고 뒷구멍으로는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눈이 벌건, 표리부동한 운동권 출신 PD들을 보면서 그 혐오감은 더 짙어졌고.
그래서 촛불을 들고 나가게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었다. 내내 고민하다 나간 이유는... 이게 성공하면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꽂아놓는 기분은 안 느끼고 싶어서. 반대로 실패하면 기운 딸리고 존재감 없는 나 같은 사람 하나의 핑계와 외면이 보태져서 결국은 실패한 게 아닌가 하는 가책을 안고 싶지 않아서다.
고백하건데 난 나가서도 초 하나 켜고 머릿수 하나, 그나마 몇시간 동안 보태주는 거 말고는 한 거 없다. 시청서 명동 돌아 광화문까지 조금 걷는 것도 운동이라고 하루 나가면 몸살이 나서 체력 회복에 사흘은 걸리기 때문에 시위 경력을 갖고 거들먹거리거나 무용담처럼 떠들 자격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살인 마감을 겨우 끝낸 뒤끝이라 컨디션도 별로고 또 새벽부터 토하면서 사람 혼을 쏙 빼놓은 뽀삐를 두고 나가는 것이 내키지 않아 망설였는데 저 장성을 보니 갈등 해소. 아무리 힘들어도 나가서 머리 하나라도 더 보태주고 와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거 밖에 없으니까.
이걸 굳이 써놓는 이유는 나중에 저 명박장성을 무너뜨렸을 때 내가 한 건 거의 없으니, 어디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다고 과장된 무용담을 지껄이는, 내가 혐오하는 일부 386처럼 내 주변을 괴롭히지 않도록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10대 때, 20대 때 시위로 길 막혀도 짜증내지 않고 응원했던 것처럼 나이를 더 먹어도 '저들이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불편을 감수할 수 있는 노인이 되면 좋겠다.
그나저나 뽀삐가 좀 괜찮아져야 가벼운 마음으로 나갈 텐데. 하여간 애물단지다. 그래도 저 뇬이나 나나 이제 늙어서 이것저것 고장나는 일만 남았으니 서로 아끼면서 가능한 잘 돌아가도록 노력해야겠지.
잡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