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와 모레, 목요일에 연짱으로 회의가 잡혀 있으니 다음주도 만만찮을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금요일 오후부터는 모든 전화도 씹고 칩거와 휴식 모드다.
본래 해야할 일을 하면서 바쁘면 짜증이 나지 않는데 지난 주의 마감 행진은 대행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삽질이라 몸이 힘든 것과 별개로 짜증이 나서 더 힘들었다.
사건(?)을 요약하자면.
원 발주처인 미국회사가 있고 중간에 대행사가 끼어 있다.
이 대행사 사장이 미는 업체가 있는데 퀄리티가 너무 떨어지는 터라 사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다른 회사를 밀고 있었다.
일정을 말도 안 되게 타이트하게 잡아서 기획안을 내놓으라 닥달.
그래서 지난 주말에 열나게 일해서 넘겨줬음. 그것도 성의를 보이기 위해 2개씩이나. -_-;
화요일에 1차 PT. 다들 괜찮다고 하는데 사장이 자기가 미는 업체 스타일과 다르다고 딴지. <-- 원 발주처에서 요구한 것과 포인트가 완전히 다른 것.
수요일까지 새 안을 가져오라고 해서 열나게 오전에 마감. 사장의 입맛에 맞춰서, 그것도 한개는 성의 없어 보인다고 장장 3개의 수정안을 제시.
저 해달라는대로 해줬으니 더 이상 핑계될 게 없어 결국 사장도 GG 선언.
대행사 사장이 OK한 안을 원 발주처에 제시하자 자신들이 원하던 게 아니라고 당연히 태클 들어왔음.
목요일에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서 결국 지난 주에 처음 제시했던 안을 수정해서 원 발주처 PT. 통과.
결국 한번에 끝낼 수 있었던 걸 들러리로 자그마치 4개의 안을 더 만든 거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이렇게 구색 갖추기 위한 상납성 아이디어 제공인데 정말 오랜만에 피 터지게 해봤음. 본래 거래하던 업체였으면 내 성질을 알고 아예 요구도 안 했을 거고 또 나도 두개 이상은 절대 안 해줬을 텐데. 처음 보는 곳이고 이 일을 따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하도 징징거려 해주기는 했지만.... 나쁜 버릇을 들인 것 같아 영 찜찜.
처음 느낌도 좀 그랬지만 여기는 이 건 끝내고 길게 어울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하긴.... 내 일정은 생각도 않고 무조건 밀려서 일정 잡아 구성안 내놓으라고 할 때마다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줬으니 여기도 이 일 끝내면 나랑 안 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을지도. ㅎㅎ
금요일에는 청기와집 사이코패스(<-- 앞으로 걔를 부를 때는 이 단어로 통일하기로 했음. 두번째 사과 후 하는 행동으로 진단해 보건대 저 인간의 병증은 사이코패스다) 때문에 부친과 또 한판 붙었다.
피차 안 건드리면 되는데 뺑소니치고 달아나다 잡힌 걸, 시위대에게 이유없이 맞은 걸로 소설 쓴 동아일보 기사를 갖고 사람을 살짝 건드리는 바람에. 솔직히 사이코패스가 워낙에 치는 사고가 많다보니 내가 자제를 해도 부친이 밀릴 수밖에 없다. 콘크리트긴 해도 우리 부친은 사실 인식과 논리 체계는 비교적 정확하게 돌아가는 양반이라.... (이나마도 고맙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렇게 밀리니 "어차피 망해도 없는 사람만 고생한다. 나라가 쫄딱 망해서 고생을 지지리 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로 결론을 종결지으시는데 거기서 참지 못해고 한마디. "이명박이 말아 먹는 나라에서는 최소한 현금 100억은 있어야 살아남는다. 우리가 그 돈이 있냐? 그 정도로 부자면 나도 걱정 안한다."로 맞받아 버렸음.
당근 분위기 급랭. -_-;
저 사이코패스가 나라를 아무리 말아 먹어도 내가 깔고 앉은 기반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다면 아마 나도 싫어는 해도 이렇게 열내고 행동까지 하진 않겠지. 하지만... 저 사이코패스가 민영화에서 이름만 바꾼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나라 재산을 다 팔아 넘기면 우리 부친이 평생 열심히 일해서 끄트머리에 겨우겨우 턱걸이한 중산층이라는 위치에서 나는 틀림없이 밀려난다. 우리 부친이야 당신 재산 다 쓰고 가면 그럭저럭 풍요로운 노후가 되겠지만 부친이 쓰다 남긴 것에 기초해 설계할 내 안락한 노후는 어디로?
아마 나와 비슷한 수준의 부류들은 대놓고 떠들지는 못해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듯. 인간은 이렇게 자기 이익에 충실한 이기적인 동물이다. 지금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자기 이익과 미래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고 무관심한 사람들은 여전히 무식해서 행복하거나 사이코패스의 성공이 곧 자신의 이득인 -혹은 이익이라고 착각하는- 쪽이겠지.
은퇴한 미국 중산층 부모들이 차에 '나는 내 자식에게 물려줄 유산을 지금 쓰고 있습니다'라고 붙이고 다닌다는 기사를 보고 웃었는데 안 좋은 건 모조리 수입해 오는 듯.
내일 6시에 시청 광장에서 정의구현 사제단 주최로 미사가 있다는데 회의 끝나고 가봐야겠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지만 어청수도 천주교 신자라니 하수도 물대포는 쏘지 않겠군. 근데 얼마 만에 가는 미사더라.... -_-;;; 완전 냉담에 불신이지만 그래도 내가 돈과 시간과 믿음을 투자했던 종교가 최소한 쪽팔리지 않는다는 것에 감사한다.
요즘 화장실에 '악의 역사'를 비치해놓고 1권 데블 편을 읽고 있는데 아무래도 저들이 믿는 건 야훼, 혹은 여호와가 아니라 신이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풀어놓은 말락 야훼(=데블, 사탄)인 것 같다. 아니고서는 저렇게 도덕의 기준이 달라질 수는 없지.
어차피 장기전이다. 지치지 말자. 스완슨 주말 한정 세일에 발 맞춰서 체력 증진에 좋다는 영양제도 주문해놨다. 열심히 챙겨먹고 싸워야지. 포기하면 바로 지는 거다. 포기하길 기다리는 저 사이코패스에게 승리를 줄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