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두 개가 밀렸을 때는 나중에 올려야지 했는데 쌓이고 밀리다보니 아예 엄두도 못내겠다. 공평하자면 일일이 올려야 마땅하지만 내가 심히 귀찮을 시기에 읽혔다는 불운(?)을 탓하라고 하면서 그냥 단상형 묶음.
끄적이는 순서는 그냥 생각나는대로. 읽은 순서나 평가 순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플라이 미 투 더 문 | 이수영 | 2008. 봄 ?
로설에 시들해져서 뭘 봐도 재미가 없던 시기에 읽은 기억이 나는데 간만에 대박이야~를 외치면서 단숨에 두꺼운 두권을 독파했다.
판타지를 많이 썼던 작가라 그런지 세계관이나 자기 작품 안에서 논리 구조가 상당히 탄탄하다. 자기도 개념을 정립하지 못해 통제 못하는 존재들에 치이는 상당사 패러노멀과 달리 자기 창조물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탁탁 끌고 가고 있다고 할까? 내 취향 자체가 감정선보다는 구조나 스토리를 따라가는 타입이라 이런 류의 패러노멀을 볼 때 세계관이 정립되어 있지 못하면 엄청 투덜거리면서 흠집을 마구 찾아내는데 이 책은 오랜만에 그런 짓을 하지 않고 편히 읽을 수 있었다.
탄탄한 구조 안에서 캐릭터가 살아 있는 주인공들. 특히 남주와 여주 캐릭터는 흔한 듯 하면서도 상당히 다면적인 모습이라 더 마음에 들었다. 남조나 단역들도 그렇고. 단선적이지 않은 전체 구조와 캐릭터 때문에 아주 몰입이 가능했던듯.
로설에서 주구장창 사랑을 부르짖는 사람들은 로맨스가 좀 약하다는 불평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내 취향에서는 아주 적절한 배합이었다.
이 작가의 신작이 나오면 바로 찾아 읽게 될듯.
늑대의 정령 | 이미강 | 2008.6
꽤 오래 노리고 있었는데 여러가지 이유로 미뤄뒀다가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서 잡아봤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역시 대박. 플라이 미 투 더 문과 비교하자면 좀 더 로맨스의 구조에 충실하고 말랑하고 친절하다.
작가가 밝힌 것처럼 울지 않는 늑대라는 책에서 많은 내용을 차용했지만 그게 전혀 겉돌지 않고 잘 녹아들어가 있다. 진짜 이런 늑대족들이 살아 돌아다니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건 이 작가가 만든 세계관이 성공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현실과 가상을 절묘하게 섞어놨다고나 할까. ^^ 어학연수를 거기서 받은 덕분에 비교적 잘 알고 있는 보스턴이라는 동네를 배경으로 얘기가 시작되서, 작가가 묘사하는 글이 바로 그림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그 친밀감이나 집중도가 올라간 건 인정하지만 패러노멀을 더 탄탄하게 하려면 정확한 현실 묘사는 필수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동네에서는 몰라도 로설 동네에서는 특이하다면 특이한 발상을 갖고 진행되는 얘기는 입체적인 성격을 갖고 살아 움직이는 두 주인공 덕분에 아주 활기를 띈다. 재미있어~와 귀여워~를 반복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갔다. 책을 먼저 읽은 사람들이 조연인 스톰이 나오는 시리즈를 자꾸 얘기할 때 왜 저러나 했었는데 나도 같은 소리를 하게 된다. 스톰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 원츄!
초기작 하나를 보다가 중도에 포기한 이후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이름이었는데 앞으로 신작이 나오면 찾아보게 될듯.
독 | 김다인 | 2008. 6 ?
김다인이라는 이름으로 내는 로설등은 상당히 세다는 얘기를 듣던 터라 나름대로 기대(? ^^)를 하면서 골라봤다.
이 작가의 전작 절애도 삐리리~한 바닥에서 상당히 명성이 높다고 듣긴 했는데 흘러오는 얘기들이 좀 내 취향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또 결정적으로 우리 동네 대여점에는 없었다. 엄청난 로설 보유고를 자랑하는 곳인데 없는 걸 보면 아마도 주인 아줌마 취향이 아니어서 반품된 것 같다.
제때 반납할 자신이 없어서 요즘은 주로 구입하는 처지라 좀 망설이긴 했지만 읽어보고 재미없으면 팔 생각을 하고 질러봤는데... 팔지는 않을 것 같다. ^^;
할리퀸에서는 너무나 자주 등장하고 또 아무 문제가 없는, 부모의 재혼으로 한 가족이 된 의붓 (이복이 아니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의붓이다) 남매의 사랑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한국에서는 아주 심각한 금단의 사랑이다. 나랑 친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저쪽 다와 절친하고 입도 조금 싸서 모든 얘기를 전해주는 지인이 중간에 있어서- 예전에 알던 지인이 이런 날벼락을 맞아 결국은 눈물을 머금고 헤어졌던 적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 지대한 관심을 갖고 독파.
일단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상당히 야하다. ㅎㅎ; 한발자국만 더 넘어가면 엄청 지저분해질 수 있는 선을 절묘하게 밟고 있다. (물론 이 기준은 극히 개인적이라는 건 인정한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야설에 등장해야 마땅한 금기의 관계지만 로설 독자들이 엄청나게 의미를 부여하는 그 '처음'이라는 것을 남주와 연결시켜 놨기 때문에 곤혹스러움을 덜어주면서 이런저런 복선으로 최대한 돌팔매질을 피할 장치를 만들어 놓았던 것이 읽을만 했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19금이라고 쏟아져 나오는 것 중에서 도저히 못 읽을 것들이 상당수지만 이 정도라면 미국처럼 시장 확대라는 측면에서 이쪽 길을 뚫는 작가들이 많아져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쇼콜라 | 침대 속의 사정 | 2008. ?
삐리리~로 명성 드높은 작품. 이 쇼콜라 작가의 눈부신 성공(?)에 힘입어 아슬아슬한 수위에 있던 로설들이 거침없는 길로 나간 것이니 일종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겠다. 삐리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개연성 없는 씬의 남발에는 또 나름 까칠한 터라 좀 시큰둥하다가 뒤늦게 읽어봤는데 왜 쇼콜라가 이북에서 히트를 치고 종이책 세계에서도 자리를 잡았는지 알 것 같다.
이북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종이책으로 오는 과정에서 수정을 했을 거라는 걸 감안해도 상당히 매끄럽다. 트집을 잡자면 물론 군데군데 어색함 (예를 들어 아무리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있어도 평균키 내지 작게 보이던 남자가 180이 넘는다는 건 내 상식에서는 좀... ^^;)이 있지만 그런 문제들이 집중을 방해할 정도로 거슬리지 않는다.
같은 단점이라도 그걸 충분히 가리고 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별로 대단치 않은 단점마저도 엄청 거슬리는 게 있는데 침대 속의 사정은 전자에 속했다.
책 뒤의 소개글만을 놓고 보면 완전 막장 협박범이지만 -사실 그래서 오랫동안 안봤음- 찬찬히 풀어놓은 책 속의 내용에서는 뭐 납득 가능... 별 볼일 없어보였던 동료 직원이 알고 보니 사장 아들이더라~라는 변함없는 로설의 코드가 여기서도 등장하지만 이 역시 혜성처럼 등장하는 빛나는 후계자가 아니라 자기 갈 길을 찾아가려는 남자라서 거슬림이 사라지게 된다.
야하지만 지저분하게 느껴지지 않고 분명 삐리리~를 위한 설정이지만 그게 또 묻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몰입이 되는 글이었다. 역시 야하게 쓰는 것도 하늘이 재주를 내려줘야 가능한듯. 적절하게 끈적이면서도 지저분하지 않고 현실적인 야함의 코드가 나와 맞았다고나 할까? 그동안의 묘한 편견을 씻어내고 팬이 되기로 했다. ㅎㅎ;
쇼콜라 | 포스터 속의 남자 | 2008. ?
전체적인 스토리가 삐리리~를 위한 장치로 흘러갔던 침대 속의 사정에 비해 상당히 로설적인 접근을 하고 있는 작품이다.
남친에게 차인 30세 치과의사와 23살짜리 탱탱한 신진 모델의 만남과 사랑인데 싱싱한 연하 영계에 대한 누나들의 로망을 완벽하게 실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음. 에필로그 부분을 보건대 차승원 부부에서 모티브를 얻었지 싶다.
제목 때문에 밖에서 읽기엔 좀 거시기한 침대~에 비해 제목도 그렇고 내용도 드러내놓고 봐도 과히 찔리지 않는 거라 더 좋았음. ^^ 그리고 전작(내가 읽은 것 기준으로)에 비해 강도가 살짝이나마 약화되고 스토리 라인의 보강은 있지만 쇼콜라 작가 특유의 그 지저분하지 않으면서도 끈끈하고 화끈한 삐리리~는 여전히 건재하다.
19금에 매진하려는 작가들이 이 정도만 써준다면 지갑을 열 용의가 충분히 있는데... 다들 쉽게 접근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 절묘한 선을 지키면서 맛을 내는 건 힘든 모양이다.
지금 쌓아놓고 안 읽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가까운 시일 안에 구입은 힘들겠지만 여유가 생기면 나머지 책들도 보고 싶다는 욕구가 무럭무럭. ㅎㅎ;
몇 자 끄적이는 것도 쌓이니 역시 너무 많네. 날도 덥고 지치니 나머지는 다음에 또. 옆에서 겁없이 설치는 파리부터 좀 잡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