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날 친하게 지내는 작가들과 함께 점심 송년회. 그날 고딩 친구들도 송년회가 점심 때 있었는데 이쪽이 선약이라 거기는 포기하고 여기로 갔다.
강북 삼성병원 옆 골목에 있는 이태리 레스토랑인데 갈 때는 엄청 헤맸지만 ㅅ이의 도움을 받아 가보니 예전에 내가 하던 프로그램 공개 녹화를 거기서 할 때 굿데이라고 지금은 사라진 스포츠 신문 기자로 있던 친구한테 점심 삥 뜯어 먹은 곳이었다.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괜히 반가웠다. 몇년만에 가보니 감회도 새로웠고, 또 이렇게 한적한 강북 한구석에서나 가능하지. 2-3년 주기로 유행이 바뀌는 강남이나 강남처럼 변해가고 있는 삼청동 쪽에서는 불가능한 일.
사진기를 챙겨가지 않아서 그냥 글로만 썰을 풀어 보자면, 약간 비싸긴 하지만 괜찮은 소박하고 푸짐한 가정 스타일의 이태리 요리.
메뉴판에 자연산 좋은 재료만의 사용한다고 강조를 해놨던데 정말 그런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먹으면서 식재료에서 딴지가 걸리지는 않았다.
나, ㅈ언니, ㅅ이에다 ㅈ언니의 초딩 아들까지 네명이 토마토 모짜렐라 샐러드, 해산물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자연산 버섯과 두종류 빛깔의 크림 소스 파스타, 베이컨 피자를 시켰다.
빵은 평범한 마늘 바게뜨. 좀 더 구워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구워놓은 걸 덥힌 게 아니라 바로 구워 나왔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음.
먼저 나온 샐러드에서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푸짐했다는 것. 보통 토마토 모짜렐라 샐러드를 시키면 슬라이스한 토마토와 모짜렐라에 발사믹 식초를 뿌려서 나오는데 여기는 그 아래 아주 싱싱한 양상추를 듬뿍 깔았고, 마늘과 발사믹, 깨가 들어간 걸로 추정되는 상큼한 드레싱을 뿌려서 먹을 게 많았다. 요즘 양상추 가격이 장난이 아닌데 이렇게 아낌없이 넣어주니 일단 점수가 후~하게 갈 수밖에.
그 다음에는 해산물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이날도 아직 속이 완전치 않은 상태라서 나는 얌전히 스파게티와 슬라이스한 마늘만 계속 주워 먹었다. 라구 소스 느낌의 아주 묵직하고 되직한 그런 토마토 소스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는 좀 가볍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내 속이 부대끼는 때라 별다른 재주를 부리지 않고 토마토로만 승부한 이 소스가 마음에 들긴 했다. 하지만 나도 대체로 좀 묵직한 쪽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음에 먹으면 어떨지 모르겠다. 해산묻은 쭈꾸미로 추정되는 오징어류와 새우, 조개 정도가 들어간 것 같은데 안 먹어서 모르겠다.
베이컨 피자는 얇은 피자 도우에 베이컨을 중심으로 치즈가 듬뿍 얹어진 피자. 피자 도우가 맛있었고 피자소스도 괜찮았다. 크리스피한 느낌의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점수를 받을 듯.
마지막으로 나온 게 자연산 버섯과 두종류 빛깔의 크림 소스 파스타인데, 뭐가 두 종류 빛깔인가 했더니 파스타 면의 색깔이 두가지였다. 두툼 넙적한 페튜치니 면. 버섯은 새송이, 어린 느타리, 양송이를 이용했다. 뭔가 느~끼한 게 먹고 싶은 시점이기도 했지만 버섯과 적당히 잘 삶아진 페튜치니와 크림 소스가 아주 조화로워서 즐겁게 먹었다.
무우와 오이 피클은 요즘 어지간한 파스타집에서는 다 자가 제조품을 내놓으니까 그게 나왔을 때도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크림 파스타 먹을 때 할라피뇨를 달라고 했더니 자가 제조 청양고추 피클이 나왔다. ^^; 달착매콤얼얼한 할라피뇨를 원하는 사람들은 좀 뜨~아할지 모르겠지만 피클링 스파이스에 절인 청양고추도 나쁘지는 않았음. 괜찮은 발상인 것 같고 나도 집에서 조금만 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달착지근한 맛은 덜하지만 얼얼하고 상콤하니 싸~한 게 마음에 들었다.
식후에 ㅈ언니는 커피, ㅅ은 핫초콜릿을 시켰는데 핫초콜릿은 완전 에러. 우유에 코코아 가루가 헤엄을 치고 간 것도 모자라서 미지근... 다시 해달라고 했더니 그래도 군소리없이 가져가서 뜨겁고 조금은 더 진한 맛으로 갖고 왔다. 두번째도 그럭저럭 먹을만한 정도이지 빈말로도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음.
날이 추운데 처음에 더운 물을 주기에 센스가 있군 했는데 이후에 보충되는 물은 계속 찬물. 나야 찬물 선호파니까 상관없지만 배려가 좀 모자란듯 싶기도 했다.
군소리가 많이 섞이긴 했지만 서비스도 나름 괜찮았고 요즘 서울의 미친 물가로 볼 때 만원 초중반대에서 이 정도 만족감을 주고 또 약간 낡은 듯 분위기 있는 파스타를 즐기기도 쉽지 않은 고로 추천. 이걸 먹겠다고 굳이 찾아가진 않겠지만 근처에 있는 시립 미술관이나 정동 극장 갈 때는 좀 걸어서 여기서 한끼를 해결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