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을 훤히 드러낸 옷을 입고 다니기에는 아직은 좀 쌀쌀하지만 확실히 겨울이 끝나가는 것 같다.
센타로의 일기에 나오는 그 일러스트래이터가 겨울이면 걸쳐입는 그런 커다랗고 헐렁한 실내용 자켓에 다리에 무릎담요를 덮지 않으면 차가운 벽에서 밀려드는 냉기를 견디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슬슬 덥거나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 한두번 더 동장군이 심술을 부리겠지만 이렁저렁 절기상의 봄은 오겠지. 빼앗긴 들에 진짜 봄이 올까?
1. 이 불황에 반대로 대박을 쳐보겠다고 의욕 넘치는 감독들이 주변에 있는 바람에 현재까지는 1/4분기 밥벌이 현황은 오히려 작년 이맘 때보다는 낫다. 작년은 여기저기 모가지 날리고 어쩌고 하는 통에 여름 다 될 때까지 다들 손 놓고 있는 분위기였는데 올해는 내려앉은 낙하산들이 자기 얼굴을 박아넣은 홍보물을 만들고 싶어서 몸살을 하는 관계로 덩어리는 예년보다 작지만 일감은 그럭저럭 쏠쏠.
심신이 고달파도 상대적으로 수입이 안정적인 방송 쪽에 무게 중심을 실어야하나 고민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원고료 대비 너무 힘들고 스트래스가 많아서 레귤러는 정말... -_-; 나도 정말 늙긴 늙었나 보다.
2. 요 며칠 마감에 후달리고 또 줄줄이 남은 마감을 바라보면서 살짝 꾀도 나고 짜증도 나고 있었는데 오늘 뽀삐 병원 데리고 가서 한 재산 카드로 긋고 오니 정신이 번쩍 난다.
처음 데려온 다음 다음날 한밤에 응급실로 뛰어가 입원시킨 걸 시작으로 함께 살아온 9년 동안 병원에 갖다준 돈을 모았으면 진짜 한재산 됐을 저 돈 먹는 개. 본디부터 총체적 부실덩어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문제가 있던 부분들이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데, 그걸 늦추는 일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바라보는 마음이 참...
내가 천천히 걸어가는 시간을 빠르게 달려가는 뽀삐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스친다. 하긴. 쟤보다 속도가 느리다 뿐이지 나 역시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 거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건 알기는 하는데... 인생도 따져보면 그리 길지는 않지만 견생은 정말로 짧은 것 같다.
저 개가 늙어죽을 때까지 병원비 대려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결론. 쟤 때문에 워낙 털려서 어지간한 액수의 청구서에는 나도 이젠 눈도 깜박 안 하는데 오늘 병원비... 진짜 극강이다. ㅠ.ㅠ 전표에 사인하면서 ㄷㄷㄷㄷㄷ
이런저런 투덜거림이며 쓸 얘기들이 많은 것 같았는데 쓰려니 귀찮기도 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어제 피겨도 못 보고 새벽 2시까지 마감했는데 오늘 11시에 회의하자는 극악무도한(-_-;;;) 클라이언트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가 뽀삐 병원까지 데리고 갔다왔더니 초저녁부터 졸린다. 너무 일찍 자면 한밤중에 깨서 딴짓 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버티다가 일찍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