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아주 오랜만에 대하 소설을 읽게 했고 또 이상하게 인연이 깊었던 조정래 선생이다.
운대가 맞았으면 작년 설날 특집 다큐 때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문학관 준비하시느라 극구 사양을 하셔서 못 했다는 아쉬움이... ㅡ.ㅜ
98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느꼈지만 정말로 달변.
속도도 빠른데다 버벅이거나 빼버릴 말이 없어서 덕분에 스크립하는 사람들이 죽어난다.
미리 경고를 해서 마음의 준비를 갖췄는데도 다들 곡소리가 났다는 후문이... ^^;;;
내가 대학시절 읽은 몇 안 되는 한국소설인 태백산맥.
이분을 빼고 80년대를 얘기할 수 없겠지.
0038 그러니까... 1945년부터 419가 일어날 때까지의 시대를 정치혼란의 시대와 전쟁의 시대라고 압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61년부터 87년까지는 경제발전의 시대와 유신독재의 시대, 그리고 87년 이후 현재까지는 민주화의 시대, 그리고 통일 대중화의 시대라고 저는 할 수 있을 겁니다.
2009. 지금 이 시간은 나중에 어떤 시대라고 말해주실까? 그게 궁금하다.
0109 질문 / 통일 대중화의 의미는?
0112 그러니까 통일운동이라는 것이 군부독재하는 동안은 통일이라는 말만해도 바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는 그런 시대였는데 80년대의 운동을 지나오면서 누구든지 다 통일을 말할 수 있게 되었고 615 공동선언이 나와서 지금 남북 화해 협력이 열린 그런 중대한 시대죠.
0138 질문 / 집필 계기가 된 사건
0206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평론가들이 정의 내려놓은 것이 한국문학의 원류와 본류는 분단문학이라고 했습니다.
0217 거기서 끝나지 않고 분단 극복 문학이라고 했습니다. 그거에 대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작가들은 동의합니다. 그런데 분단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분단 극복 문학과 어떻게 차이가 나는 것인가. 분단 문학은 반공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분단에 대해 쓰는 것을 분단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0245 그런데 분단 극복 문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 반공주의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쓰는 것을 분단 극복 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인데, 그것을 하지 않고서는 통일 지향을, 문학으로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0306 그래서 군부독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일망정 분단극복 쪽으로 작품을 쓰지 않는다면, 끝없이 반공주의, 그리고 분단을 획책하고 동조하는 역할 밖에 못하지 않겠느냐,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는 작가의 실존적인 자각과 책무감, 그런 것 때문에 태백산맥을 쓰게 된겁니다.
--> 분단극복 문학이라... 김윤식 선생의 사람은 벌레가 아니다와 함께 중요한 화두가 될듯. 90년대도 아니고 그 서슬퍼렇던 전통 말기에 어떻게 태백산맥을 쓸 생각을 했는지... 대단하시다.
2009. 지금 이런 류의 글을 쓴다면.... 뭐라는 소리를 들을까? 빨갱이?
0335 질문
0343 소설은 소재가 있고, 그 소재를 형상화하는 작가의 메시지인 주제가 있지요.
0350 그런데 분단 극복 문학을 하는데 있어서의 주제라는 것은 반공주의 시대에 국민전체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남쪽에서 공산주의자나 빨치산들은 뿔이 돋친 도깨비다, 그리고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요 드라큐라다, 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극복하려면, 그 분단의 의식을 극복하려고 한다면,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 또는 빨치산 투쟁을 했던 사람도 우리와 전혀 다를 게 없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복권, 인간으로서의 선언을 해줌으로써 비로소 서로의 잘잘못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것 아닙니까. 그것을 주제로 해서, 목표로 해서 쓴 것이 태백산맥입니다.
--> 사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지속적으로 받은 반공 교육의 굴레를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내 주변이 워낙 이런 류의 투쟁과 거리가 먼 종족들의 집합이라 경험 공유는 한 적 없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많을듯. 문학이 세상을 이끌고 세상을 바꾸는 그런 역할에 충실했던 작품인 것 같음.
0449 / 질문
0506 그때 인제 해방공간이라고 하는 1945년부터 전쟁이 일어났던 50년까지를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학자들은 연구하기를 기피했습니다. 그 부분을 연구하게 되면 또 정치적으로 핍박을 받고 수사 기관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처벌을 받고 하기 때문에 기피를 한 것인데, 그런 것,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 활동을 했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존재를 계속 감추고 도망다니고 피해다녔던 상황이었지요. 그래서, 그 당시에 상황을 객관적으로 쓰는데 그 사람들을 찾아다녀야하는게 제일 어려운 것이고, 찾아내도, 그 사람들이 절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0553 그래서 소설 무대가 되는 전라남도 지방을 가서 그 사람들을 찾아내고 나면, 그 사람들이 전부 노인네들인데 인제 끌려다니면서 형별 받고 핍박 받고 했기 때문에 거의 기죽어서 사람으로서 형태가 없을 정도로 인성이 파괴되어 버린 그런 노인네들이었어요.
0616 그래서 이야기를 하면 자기를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데 두려워하기 시작해요. 그래서 말을 안 하지요. 말을 안하면 다시 두 번, 세 번 찾아가면 그동안에 세상을 떠나고 없고, 그래 허망하고, 또 한번은 지리산에서 활동했던 문화 공작대라는게 있습니다. 빨치산들을 투쟁하는데 정신적으로 고무하기 위해서 연극도 하고, 노래도 하고 했던 문화공작대의 총책을 맡았던 여자가 지리산에 와가지고 매해 제사를 지낸다는 정보를 가지고, 노고단에 있는 산지가가 산장지기가 그 여자의 주소를 안다고 그래요. 그래서 인제 노고단까지 올라갔지요. 그런데 전혀 가르쳐 주지를 않고, 오히려 그 산장지기하고 그 말을 했는데 두 사람이 따라나오더니 당신 좀 봅시다, 그 사람들이 구례 경찰서에 있던 형사들이 등산을 왔다가 묘한 젊은이가 와가지고, 나 그때 젊었지요, 나이가 마흔 세 살 네 살 됐을 때니까. 그 빨치산의 뒤를 캐고 다니니까 이상하다, 그래서 주민등록증 보자, 경찰서 가자, 뭐 그런 일이 있었고.
--> 이런 류의 경험은 들은 기억이 많다. 굳이 빨치산 소재가 아니더라도... 70-80년대 작가들 중에 자료 조사차 지방 다니다가 간첩 혐의로 파출소 한번 끌려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는듯. 지금이야 코메디이고... 그 사회 안에서 살 때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지만 엄청난 통제사회였다. 하긴...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많은 애들이 간첩 신고해서 한탕 하는 꿈을 꿨었다. ㅎㅎ 삐라만 주워 경찰서 가져가도 공책이랑 연필 주는 세상이었는데. 딱 한번 주워봤음. 근데 그때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도 수천장의 삐라가 잠실 주변에 뿌려진 고로 상품 못받았다. -_-;;;
0727 그 많은 자료들을 얻은 것은 백사장, 넓은 백사장에 떨어져있는 쌀알을 주워가지고, 그것을 모아가지고 한 솥을 만들어서 밥을 짓는 것과 같은 고통에 찬 취재의 나날들을 보낸 겁니다.
--> 선생님... (덥석, 부비부비) 나레이션으로 잘 쓰겠습니다. ㅋㅋ
2009. 이렇게 거창한 걸작까지는 아니겠지만... 창작이란 건 결국 쌀알을 주워모아 밥을 짓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있는 쌀로 잘 먹었지만 갖고 있던 쌀을 다 털어먹고 나니 낟알 줍느라 죽어나고 있음. 이런 대하소설을 몇편씩이나 만들어냈다는 게 새삼스럽게 존경스럽다,
0804 제가 밤 중, 새벽 두 세시에 협박 전화를 받기 시작한게 태백산맥 1부가 단행본으로 나왔던 1986년 7년부터 극심해지기 시작했는데, 밤에 이제 전화를 해가지고 너희 집 바로 폭파된다, 너희 가족 다 몰살시키겠다, 너희 아들이 어느 대학 다니는지 다 안다, 이런 식으로 해서 괴롭히는데, 그것이 사흘걸이로 전화가 새벽에 꼭 옵니다. 그래서 그것이 10년 이상 계속 되어서 1994년에 고발을 당했는데, 그 고발을 해놓고도 전화가 계속 오는데, 하루는 무슨 전화가 왔냐면, 나환자 협회, 그 사람들이 15만명이래요. 그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겠다는 거에요. 왜 그러냐하면, 태백산맥 속에 나환자들이 문둥병환자들이 어린애들을 죽여서 간을 꺼내먹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자기들의 명예를 훼손했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그건 아니다 그건 속설일 뿐이고, 나는 태백산맥을 나환자촌인 나자로 마을에서 썼다, 그리고 거기에 나환우들의 고통을 생각해서 내가 적은 액수지만 기금도 후원하고 했는데 이럴 수 있느냐, 당신들의 ( )가 누구냐. 했더니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어서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었고, 별 일들이 많았지요.
--> 이 무슨 쇼쇼쇼인가! 라고 분노하고 싶지만... 이때는 반공이란 굴레에서... 지금은 또 다른 각자의 이유로 비슷한 테러가 소위 매스컴을 타는 인간들에게 수없이 반복되는 관계로... 국민성의 문제인 것 같다.
2009. 아마 지금 이런 게 나오면 가스통 들고 쫓아오지 않을까? 그것도 정부 지원을 받으면서...
0936 질문
1000 엄청난 상처를 받았지요. 태백산맥을 쓸 때도 좌익이, 사회주의자, 빨치산 부분을 쓸 때는 이미 내가 국가보안법을 넘어가자고 각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주저하고, 이걸 써도 괜찮을까, 이 대목을 썼는데 끌려가지 않을까, 스스로 굉장히 검열하게 되요. 그리고 그 부분, 그 사람들이 검열하는 부분을 쓸 때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요. 새벽 세네시에도 벌떡 일어나가지고 다시 보고, 그런 식으로 정신적인 억압을 당했는데, 수사가 정식으로 시작되고 나서 그들이 나한테 하는 말이 잘 걸렸다, 오래전부터 벼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수사를, 심문을 당하면서 왜 힘들지 않았겠어요.
--> 0000를 할 때가 바로 이런 시기였겠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작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셨다. 글감옥이란 단어. 지금도 기억나고... 작가에게 감동받아 본것은 거의 처음이었던듯. 그러나 부인 김00 시인은 별로였다 -_-;;; 왕비병이 좀....
2009. 지금 작가나 지식인, 사상가 중에서 같은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이 무지 많을 것이다. 학문과 예술의 기나긴 흐름에서 봤을 때 지금 정권이 그런 자유로운 영혼에 가한 상처는 엄청난 퇴보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경제 뿐 아니라 이런 부분에서도 뻘짓을 하기 때문에 이메가 일당은 욕 먹어도 싸다. 한일병합 100주년이라니... 내 참.....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옴. -_-+++++++
그리고 태백산맥 고발을 당하고 나서 아리랑을 쓸 땝니다. 아리랑에서도 아리랑을 쓴 이유가 식민지 시대의 역사가 남쪽에서는 남쪽대로 왜곡하고, 북쪽에서는 북쪽대로 자기들 편의대로 왜곡을 했거든요. 그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썼기 때문에 또 김일성이가 보청보 습격한 사실이 나온단 말이죠. 또 고발거리가 생긴거죠. 이런 것들을 어떻게 써야할 것인가 하는 고민. 그리고 인제 한강을 쓰면서는 또 검찰 수사를 받았는데, 남쪽에서 반공주의를 내세우면서 분단을 획책한 것, 어떻게 획책했는가, 북쪽에서는 북쪽대로 또 자본주의, 민주주의를 욕하면서 또 어떻게 분단을 획책했는가를 쓴단 말이죠. 그래서 또 걸리게 되어있었어요. 끝없이 11년동안 고소 고발 당해서 시달리면서 정신적으로 글을 써나가면서 받은 핍박, 스트레스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 아리랑... 주적(=일본)이 워낙에 명확한 관계로 태백산맥에서 만큼의 사상적 충격은 느끼지 않았었는데. 전라도 사투리의 맛깔스러움과 그 음악적 운율에 폭 빠졌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1206 질문
1230 제가 1994년 4월에 고발을 당해가지고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린 것이 1995년 4월입니다. --> 잘못 말씀하심. 2005년 4월.
2009. 바로 이 무혐의 판결을 갖고 3부작 다큐의 3부 프롤로그를 열려고 했는데... 골수 우익(^^ 수구꼴통은 아니었음.)인 PD가 완전히 달리 편집을 해서 빠져버렸음. 그해에 다큐를 줄줄이 하고 거의 마지막 프로젝트라 기진맥진한 상태여서 안 싸우고 넘어갔던 게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그 나레이션을 꼭 썼어야 했는데... ㅠ.ㅠ
만 11년동안 시달림을 받은 것인데, 그 통보를 받고 나니까, 그 11년동안에 계속 매일 감시당하고 고문당하는 초조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다가, 드디어 내가 해방이 되었구나, 자유를 얻었구나 하는 확인을 하면서 양쪽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친 것 같은 그런 홀가분함을 느끼면서 앞으로는 정말 제대로된 문학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1323 질문
1339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1부 2부 3부가 나오면서 자기 부모가 좌익을 해서 연좌제에 걸려서 평생을 음지에서 살던 사람들이 수십 명이 전화를 했어요. 자기 아버지가 지은 죄를 다 사해주고, 그리고 사람으로 대접해줘서 고맙다, 우리 아버지가 한 짓이 나쁜 짓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기가 비로소 자기한테 씌워진 죄를 벗는 기분이다, 그런 전화를 수십통을 받았고,
1418 또 한가지 재미있는 것이 어떤 젊은 여자가 전화를 했어요. 울먹울먹하면서 전화를 했는데 자기가 전라도 출신이었다는 거에요, 그런데 서울 남자한테 시집을 갔는데 시집 식구들이 전라도 사람이라고 해서 사람 취급을 안해주더라는 거에요. 그런데 태백산맥을 읽고 나서 비로소 아 정말 전라도 땅이 이런 데인가, 하면서 자기를 사람 취급을 해줘서, 선생님 덕에 시집살이가 편해져서 정말 고맙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공산당 때문에 내 가족이나 친구가 처참하게 죽었다면 관련된 모든 인간이 원수로 보이는 것은 인간으로서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극복하고 보듬어안는 것은 인간 이상의 경지가 요구되기 때문에 직접 겪은 세대들의 분노는 이해를 하지만... 전라도 지역에 대한 이 비정상적인 차별은 솔직히 이해가 안됨. 다행히(?) 난 차별의 반대편에 선 가장 대우받는 지역 출신의, 역시나 같은 편견을 가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다행히 그 중심부가 아닌 서울이란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덕분에 편견의 노예가 되는 것은 피했고 불합리성에 대해 생각할 머리를 가졌지만...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촌들 -더구나 나와 같은 세대고 더 어린-이 가진 똑같은 편견의 대물림은 솔직히 학을 떼게 됨. 얘기가 엉뚱한 곳으로 많이 샜는데... 백마디 말보다 한권의 책이 사람 하나를 살려준 셈인가? 멋지다.
1448 질문
1503 물론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대하소설이 많고 치열한 작품이 많은 이유는 우리 민족의 백년동안의 역사가 그 어떤 나라, 어떤 민족보다도 처절하고 고통스럽고, 그리고 우리는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치열하게 살아서 대하소설이 많은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통일이 안됐는데, 통일이 안됐을 때는 계속 분단 비극이 만들어지는거지요. 그럴 때 통일이 된 다음에 또 다른 대하소설들이 나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대하소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우리 민족의 비극적 역사 위에 항상 머물러 있다는 것을 젊은 작가들은 인식해야할 겁니다.
--> 우리나라에 진짜 대하소설이 많은 것 같기는 하다. ^^; 이런 비슷한 얘기를 하버드대의 한국문학 전공 교수가 했었는데... 그 인터뷰도 한번 찾아봐야겠군.
1553 질문- 한국문학의 위기
1611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단편적인 단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은 우리가 문학을 시작했던 1970년대 초만해도 우리나라 문학작품이 안팔려서, 그리고 다 가난하니까 책을 살 돈이 없어요. 그래서 문인들이 자비출판을, 부인이, 마누라가 계를 5년짜리를 하면 그 곗돈을 타서 시집내고, 소설책을 냈던 시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살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책이 팔렸는데 지금은 출판사들이 계속 책을 작가들에게 내자고 합니다.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달라지고 발전을 했고,
1655 80년대에 비해서 덜 팔린다 하는데, 그것은 인터넷이나 컴퓨터 이런 것들이 중간과정에서 문화적 이기들이 나타나서 그에 편중현상이 나타나서 그런 것 뿐이지, 우리 문학에 대한 외면이 아니고, 특히 60년대 70년대에는 일본문학과 특히 서양문학에 쏠림 현상이 너무 지나쳐가지고 세계 문학 전집이 100권짜리가 수십군데에서 나오는데도 한국작품은 전집이 안나와서 한국 작가들은 밥을 굶주리는 그런 시대를 거쳐왔어요. 그러니까 딴 시대보다 오히려 많이 읽고 있다는 확증을 현실적으로 해야하고, 80년대보다도 좀 덜하다 그걸 가지고 잘못된 현상이다, 한국 문학이 죽는 시대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문화적인 편견이면서 독자들을 오도해 가는 것이니까 그런 판단은 경솔하게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문학은 건재합니다.
--> 이 마지막 문장을 말씀하실 때의 그 신념에 가득한 확고한 표정. 멋지십니다. 서구에 비하면 확실히 젊은 작가들도 많긴 한데... 책을 더 많이 읽는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좀....
1752 질문
1804 한국은 시인을 엄청나게 우대하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의 역사가 2000년이고, 시를 잘 써야만 정치 헤게모니를, 쉽게 말하면 벼슬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역사가 1000년입니다. 그래서 10대 때 모두가 시인이 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고, 지금도 시인의 숫자가 많고, 또 시집이 잘 팔립니다.
--> 이 말에 올인. 과거 시험에서도 경전 해석보다는 시에 더 높은 점수 비중을 뒀고 그쪽을 잘 한 사람들이 출세했다. 1000년동안 시를 잘 써야만 출세하는 역사적 배경을 가졌으니 유전자 변형이 충분히 있었겠지.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 나중에 들은 뒷얘기에 의하면 노랗게 표시한 저 부분은 고은 선생과 김지하 선생을 지목하고 애둘러 말한 것이었다고 함. ㅋㅋ
딴 나라에서는, 선진국에서는 시집이 절대 안팔립니다. 소설집만 팔리는데, 지금도 문학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많고 우리의 역사가 그만큼 치열한, 다이나믹 코리아라고 말할 정도로 활동력이 있는 삶들을 살고 있기 때문에 소재들이 충분하니까, 더 치열하게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문학을 하게 되면 독자들과 서로 사랑하는 호화로운 문학의 르네상스는 우리 앞에 계속 펼쳐집니다.
1913 문화를 지배하는 거에요. 점쟁이들 말도 굉장히 기분 나쁘잖아요? 그건 언어에 이미 지배당하고 있다는 거거든. 미신을 믿는게 아니고. 언어의 힘이 엄청난 것인데, 한마디로 취약을 해버리면 그 양반은 자기가 겪은 바에 의해서 말한 거에요. 체험 중심으로, 나는 고문만 당했다 이거에요. 내가 볼 때는 그게 아니거든. 그것만 말하면 일부분이거든. 경제발전을 빼고 나면, 70년대는, 오늘과 같은 이것은 70년대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건 박정희 공이 아니라 국민 전체의 공이란 말이에요. 그걸 어떻게 말 안하냐고. 나는 그렇게 편파적인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해요. 왜냐면 소설은 객관성과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특히 리얼리즘 소설은... 그래서 내가 아까 그대로 말한대로 해야돼. 만약에 겹친다면 어쩔 수 없어. 빼야돼. 더 해봐야 똑같애. 가장 문학적인 것은 역사적인 거야, 가장 역사적인 건 인간의 삶의 중심이라는 거지, 그러니까 김지하 선생은 김지하 선생대로 관점이 있고, 그건 내 관점이니까 마땅찮으면 빼버리던지. 나는 편집까지 해주는 거야.
--> 여기선 카메라 각을 바꿔서 찍었음. 거의 이미지 느낌 촬영이었는데 막판에 이런 대박을 터뜨려 주시다니. ㅎㅎ 근데 김지하 선생님과 이분이 과연 어떤 관계인지 궁금.
너무 많은 생각이 있기에 사족은 오히려 간단히. 98년과 비교해서 얼굴은 늙었을지 몰라도 생각은 하나도 안 늙었다. 그것이 부럽다. 한강은 안 읽었는데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음.
2009. 한강은 아직도 안 읽었다. ㅎㅎ; 언젠가는 읽어야지. 제사 준비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