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에 머리를 감은 관계로 누워서 책보는 건 불가능이고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오늘도 한분 옮겨온다.
김윤식
어른께 아랫 사람이 해서는 안 될 말이지만 너무 귀여우시다. ㅎㅎ;;;
섭외하던 취재 작가가 전화드릴 때마다 거의 청심환이 필요할 정도로 무섭게 전화를 받으셨지만... 모 작가의 귀띔으로 준비해간 레드망고에 바로 녹으셨음.
아이스크림 통을 내밀자 "뭘 이런 걸." 하면서 받으시는데 웃고 싶은 입과 눈의 경련이 압권이었다고 함. ㅋㅋ
나도 아이스크림 매니아기 때문에 동감한다.
선생님 다음에 인터뷰 드릴 때는 건강에 좋은 돌로미티 생과일 아이스크림으로 사다드릴게요.
2009. 돌로미티 아이스크림 없어졌다. 합리적인 가격에 상큼하니 맛있는 생과일 아이스크림 전문점이었는데. 아루가 있던 자리에 브런치 & 디저트 카페가 생기고 거기서 생과일 아이스크림을 팔기는 하는데 삐까뻔쩍한 자리값인지 합리와는 몇 광년 떨어진 가격이라 그냥 구경만 하고 지나다니고 있음. 어차피 좋아하는 건 딸기, 산딸기, 블루베리니 내가 만들어 먹고 만다. -_-;
Q 419, 1960년대 서울의 봄, 군부 독재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이 한국 문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A 우리 문학은 근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문학인데 대단히 큰 특징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 라는 즉, 인간의, 사람의 위엄에 어울리는 문학, 이것으로 정리될 수가 있어요. 이 전통 위에서 6,7,80년대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이 60년대를 대표 지을 수 있는 사건은 누구나 알듯이 419입니다. 이 4 19라는 것은 옆으로 부터의 운동인데, 학생들이 중심이 된 혁명이죠. 그런데 이 4 19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자유의 문제가 처음으로 문학 속으로 분출해 오는 것입니다. 이 4 19는 옆으로 부터의 혁명이기 때문에 혁명의 주체가 없어요. 그래서 일 년 만에 516 군사 쪽으로 빼앗기고 말았습니다만, 이 4 19라는 사건은 문학적인 성과로서는 대단히 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문학에서 전후, 625 이후의 우리문학에서 가장 큰 과제로 있었던 것은 반공이라는 것이 국시, 터부러 정해져 있었어요. 국시라는 것은 말하자면 국가가 기본 이데올로기로 하고 있는 것인데 이 국시에는 아무도 저항하거나 저촉할 수가 없어요. 반역이기 때문입니다. 이 반공이 국시였어요. 오늘날의 국시라는 것은 잘 먹고 잘 살자가 국시입니다. 국제 경쟁력, 이것인데 그 때는 반공이기 때문에 이 터부에서는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어요. 러시아어 사전만 있어도 잡아가고, 내 연구실에 와서 월북작가 책은 전부 압수해갔고 말하자면 그런 시대입니다.
--> 책 뺏긴 말씀하실 때의 표정과 말투는 봐야 하는데... ㅋㅋ 글로는 절대 설명이 안된다. 새삼 느끼지만 참 무식한 시대였다.
2009. 국방부의 금서 목록 나온 거 보면 확실한 과거 회귀인듯.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책장 어디에 쳐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등에'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등을 찾아내서 안 보이는 곳으로 다시 숨겨야하지 않을까 싶다. -_-;
그런데 419가 남으로써 이 반공에 대한 터부에 대한 저항이 있었어요. 이 문학이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위로는 정치적인 터부가 있고 아래로는 도덕적인 터부가 있습니다. 이 터부를 조금씩 조금씩 위로 밀어 올리는 것을 작가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우리가 150마일로 달리면 위험하고, 149마일로 달리면 일등을 못하고, 그 아슬아슬한 선을 지키는 것, 그것이 작가의식입니다. 그러니까 작가라는 것은 정치적인 이런 감수성을 떠나면 작가라고 할 수가 없어요. 작가의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작가를 주목하고 하는 것은 그 아슬아슬한 선을 어떻게 지켜나가는가 하는 것, 이것을 조금조금 밀어 올리면 자유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고 가만히 있으면 점점 내려와요. 내려와서 자유의 폭이 좁아진단 말이죠. 작가라는 것은 위로는 정치적인 억압을 올리고, 밑으로는 도덕적인 억압의 밑을 더 넓히고 해서 자유의 영역을 넓히는 것, 이거거든요. 그런데 이 반공이라는 터부를 작가들이 어떻게 조금씩 조금씩 올리는가 하는 것, 이 첫 작품이 최인훈의 광장입니다.
--> 어쩌면 말씀을 이리 잘 하시는지. 완전 문학사 강의였다. 보통 인터뷰들은 쓸말이 없어서 고민인데 김윤식 선생님 같은 경우는 너무 좋은 말이 많아서 고르기가 힘듬. 그런데... -_-;;; 순환호흡을 하시는지 그야말로 줄줄줄... 숨도 쉬지 않고 말씀하신다. 편집이 거의 프레임 단위로 잘려야 할듯.
광장이 1960년 10월 새벽이라는 잡지에 중편으로 전문이 연재가 됐을 때 그 때 사람들이 읽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최인훈씨가 발표하는 앞에, 전문에 내놓은게 뭐냐면은 이 작품은 419가 썼다, 이겁니다. 최인훈이가 썼지만, 4 19가 아니었으면 절대 나올 수가 없었다 이거에요. 이 광장이 갖고 있는 게 뭐냐면은 자유입니다. 한 마디로. 여기 주인공이 남쪽도 노, 북쪽도 노,라고 한단 말이죠. 이 북쪽을 극복하는 거, 이건 뭐 반공이고 당연한건데, 대한민국도 거부했단 말이죠. 이것은 그 전까지는 절대로 상상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을 거부하다니 말이에요. 그런데 이 주인공 이명준은 말이죠, 북족도 노하고 남쪽도 노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제 3국으로 갔단 말이에요. 이 작품은 419가 아니었으면 절대 쓸 수 없었어요. 결국 이명준이가 자살을 하고 말지마는, 내가 어떻게 제 3국으로 가나 하고 자살하고 말지만 실제로 인도로 가서 양계장 사업을 하고 살고 있는 사람도 있단 말이에요. 그때 반공 포로 중에 실제로 남도 북도 노 하고 제 3국으로 간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어요. 그때 신문에도 나고 했었는데. 최인훈씨는 그걸 가지고 작품을 썼지마는, 그러니까 이 60년대에 우리문학에서 제일 핵심이 될 수 있는 작품은 광장이고, 이 광장은 419가 썼고 419가 썼다는 것은 국시로 되어있는 반공이라는 이 억압을 이 작품으로 비판하고 좀 더 밀어올렸다는 것, 이것이 419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점입니다.
--> 어쩌면 이렇게 멋있는 표현들을... 나레이션까지 다 써주신다. ㅎㅎ 이번 프로그램은 나레이션 때문에 머리 쓸 일은 적을듯. 현재 조경란 작가를 제외하고는 다들 너무나 멋진 금과옥조들만 던져주시니...
그런데 이 4 19를 또 대표하는 작품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김승옥의 유명한 무진기행입니다. 이것은 64년에 나왔는데 사상계에 발표되었을 때 우리가 이 작품을 읽고 가슴이 눌리우는 그런 감동을 받았어요. 그것은 뭐냐하면 이 4 19가 일년만에 도적을 맞았어요. 이게 516 군사혁명입니다. 그랬을때 한국 사회의 자유의 상한선을 봐버린 사람들에게는 이것처럼 견디기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군부에 저항할 수도 없고 아직 방향이 잡히지 않았으니 저항할 수도 없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고대로 반영해놓은 것이 김승옥의 그 유명한 무진기행입니다. 이것은 허무를 말하지요. 그 안개라는 것은 무진기행에 나오는 안개라는 것은 의식의 안개이지 실재 있는 안개가 아닙니다.
--> 2부 중반의 주요 작품. 2부는 시간이 넘친다. ㅠ.ㅠ 시대가 하 수상할수록 문학에겐 비옥한 토양이 되나보다.
2009. 작년부터 앞으로 남은 몇년이 민주화라던가 인간의 존엄성, 자유라는 측면에서는 암흑기로 평가될 거라는 게 거의 확실해지고 있는데... 이 기간이 문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솔직히 궁금하다. 아마도 개인에 침착했던 작가들에게 다시 사회 문제나 모순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시대였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한 시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려면 최소한 30년의 기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 시간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할 때까지 살아있을 수 있을까? 심하게 장수하는 부계의 유전형질이나 한국인의 평균 수명으로 따지면 가능하겠지만 개개인의 인생사라는 게 평균수명과는 별 관련이 없으니....
한 청년이 무진에 가지 않습니다. 거기서 여학교 음악선생인 여자하고 놀아나고 뭐 그런 내용이 있는데 이 음악선생도 허무에 빠져가지고 자기 앞을 못 보고 있는 것이고 이 청년도 앞을 못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안개 이것이 허무입니다. 이 도적맞은 자유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대책을 아직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가 4 19를 대표하는 두 작품이고 이것은 자유와 이 자유가 차단되었을 때 나타나는 허무의식, 이겁니다. 그러면이 허무의식, 이것이 어느 정도 지속되다가 차차 여기에 대한 대응, 군부에 대한 저항 또는 그런 파시즘에 대한 응전방식, 이것은 70년대에 들어오면서 서서히 나타나고, 이것은 우리 문학에 새로운 장을 열게 되죠.
70년대에 한국 문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회현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70년대의 제일 큰 변화. 이것은 박정희씨의 쿠테타에 의해서 이뤄진 한국의 근대입니다. 한국의 근대화, 이 근대화가 우리나라 전역에서 이뤄졌어요. 이 근대화라는 것은 어느 나라나 다 그렇지만 이것은 자유주의진영에서는 잘 살아나가는 방법, 발전하는 방법은 미국 중심으로 한 근대화라는 것이고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쪽에서는 공산주의라는 그 체제를 가지고 인류가 잘 살아나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근대화라는 것, 특히 식민지 지역에서의 잘 살아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은 근대화라는 이 기준으로 해왔어요. 그러니까 박정희씨가 한 것은 말하자면 자유주의 진영에서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공산주의 쪽에서는 공산주의 방식으로 해나갔고. 이럴 때 근대화를 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근대화라는 것은 공업화, 도시화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혹한 농촌 수탈 없이는 근대화가 불가능해요. 어느 나라든 그래요. 근대화가 어느 정도 이뤄지면 소외된 농촌에 대해서 보상을 좀 하고 이렇게 되어나가는 것이 근대화의 발전 과정이거든요. 어느 나라나 다 그런 것이고. 그런데 우리나라도 근대화를 해나가면서 이렇게 강직한 방법으로 해나갔어요. 첫째 돈이 없으니까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와서 공업화를 해야하죠. 이 공업화를 하기 위해서 도시화가 집중이 되어야 하고, 농촌 수탈해야하고, 노동 수탈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근대화를 해나가는데 근대화를 해나가는 도중에 맨 첫 번째 문학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 뭐냐면 확석영의 유명한 삼포가는 길입니다.
--> 우도 좌도 아닌 가장 중도적이고 냉정한 근대화에 대한 평가가 아닐까? 아마 난 이런 시각으로 박정희 시대를 쓰게될 것 같다. 황석영씨도 꼭 하고 싶었지만 영국에 교환교수로 가신 바람에... 아깝게 황석영이란 이름은 이번 프로그램에서 빠졌음. 문학에는 좀처럼 자극받지 않는 내 감수성을 무한대로 자극한 무기의 그늘때문에라도 꼭 한번 다루면서 만나고 싶었고 또 세계에 소개하고 싶었는데... 아쉬움.
2009. 이때 영국에 계신 게 천운이지. ^^; 작년에 황석영 선생님 모시고(<- 정말 다른 단어는 불가능. -_-;) 다큐하면서 참을 인자를 몇천개나 그렸는지. 작년은 집중이 가능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지 이때 했으면 스트래스 받아서 쓰러졌을 지도 모르겠다.
이건 74년에 신경향에 발표된 건데 그 다음이 객지 하는 이런 작품들입니다. 이 초기에 근대화를 해나갈 때 초기에는 어떠냐하냐면 노동자들이 부랑 노동자입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난쏘공 같은 경우에는 노사문제가 되어가지고 부랑자가 아니고 노사 문제가 되어 있죠. 그런 싸움이지만 그런데 이 초기의 노동자 경우에는 공장 부지로 왔다갔다합니다. 전국이 다 공장 부지로 되어있어요. 여기에서 토목일을 다 하고 그러면 절로 또 옮깁니다. 가방을 보면 톱하고 망치 몇 개밖에 없고 이렇게 이동하는 노동자들이 나타나요. 이 노동자들의 세계를 황석영씨가 삼포가는 길, 객지에서 다뤘지요. 이 삼포가는 길은 삼포가 어디있는지 모르지만 좌우지간 삼포로 갑니다. 가는 길에 이 노동자들, 작부들, 이쪽 길이 다 닦였으니까 불도저 따라서 또 길을 간다 이겁니다. 소설을 길을 가는 건데, 감옥에 나온 사람들 고향을 찾아가고 이렇게 가는 건데, 그 길을 따라 가보니까 거기도 공사판이 벌어져 있는 겁니다. 조선 천지가 공사판이 되어있는겁니다. 이런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객지 같은 것은 전라도 개화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 객지에서도 노사대립이 되고 하는 것 같으면 지식인 노동자가 끼어들지 않습니까.
의식화한다고 해서 지식인들이 노동자가 되어가지고 하는데 이 지식인들이 들어가지도 노동자들을 아무리 의식화하려고 해도 안되요. 80년대에는 얼마나 잘됐습니까. 그런데 그때는 안된다 말이에요. 그 때 노동자들은 부랑 노동자이기 때문에 아무리 의식화하려고 해도 안돼요. 그 지식인의 외로움. 그것이 그 객지의 주된 테마입니다. 그래서 70년대 들어와서 근대화 되어가는 이 과정에서 차차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일컬었죠.
신경림의 농무 같은 것은, 이것은 무진기행처럼 군에서 돌아온 청년들이 고향에 돌아와 보니까 근대화... 온데 공사판이 벌어져 있고 하니까 허무에 빠져가지고 여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그게 농무란 말이죠. 춤이나 추고 어떻게 방향을 못찾고 서림이 처럼 울기나 하고 하는 그런 세계, 그런 근대. 삼포가는 길이나 객지로 오면 조금씩 대응 방식이 싹이 트죠. 그러다가 공장이 다 만들어지고 도시에서 인제 노사문제가 대립이 되고 YH사건이 나오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와서 전면적으로 싸움이 붙죠.
-->난쏘공도 한다. ^^ 근데...조세희 선생님이 올해 중풍 드셔서 인터뷰 불가능.. ㅠ.ㅠ 그래도 해야지. 어찌 난쏘공을 빼고 한국 노동 문학을 얘기할 수 있으랴.
2009. 난쏘공을 쓰실 때보다 더 지독한 시대. 개인적으로 조세희 선생님이 계속 건강을 유지하셔서 지금 시대를 얘기하는 다큐에 꼭 나오시면 좋겠다. 내가 그걸 하지 않아도 상관없음. 냉정하고 사실적으로 우리가 뭘 팔아 먹었는지를 되짚어봐야 한다.
60년대나 70년대나 일제시대나 우리 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 로 요약이 되요. 노사 문제 라던가 남북한 문제라던가 분단 문제라던가 하는 것이 우리 문학의 주류를 이뤘는데, 이것은 사실 사회 과학 쪽에서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터부가 내려있으니까 문학을 통해서 이 정치적인 행위를 모두 하고 있어요. 그래서 창작과 비평 같은 계간지가 그렇게 많이 팔린 것은 정치적인 터부에 문학으로서 대응하는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학만해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노사문제라던가 분단문제나 하는 것은 일제시대에 우리 문학이 일제에 대해서 우리는 벌레가 아니다, 하는 그거 아니었소. 그 전통 그대로 6,70년대에도 우리는 벌레가 아니다,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 하는 이 큰 명제, 문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위엄에 어울리는 이런 문학이다 하는 이 명제 위에 서 있는 겁니다. 그리고 6,70년대라는 것은 한글세대가 완전히 주도권을 쥐고 우리 문학의 새로운 상상력을 열고 나간겁니다. 이 한글 세대가 가진 특수성이라는 것은 한글이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에 연결되는 첫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우리 문학이 세계 문학에 연결되었다고 했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은 60년대 문학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제 거대담론의 시대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한 공부가 필요할듯.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이해가 안 되고 아직은 엉켜있다. 그러나 중요한 얘기이고 아마 이번 프로그램 전체를 엮는 테마가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이어령, 정과리 선생 등의 인터뷰를 다 들은 뒤에 테마는 재정리하기로 결정.
2009. 우리는 벌레가 아니다. 인간은 벌레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가장 기억해야할 명제인 것 같다.
70년대 소설 문학이 황금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
근대 문학이 내 전공인데 내 전공에서 볼 것 같으면 일제 시대부터 문학이라는 것은 상당히 가치 있는, 인간다운 이런 문학이다라는 것, 그 선에서 보면 이런 것입니다. 모더니즘이라는 것은 인간은 별로 그런게 아니란 말이야.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이 무너지고 나서 그 때부터는 우리 문학이 윤대녕의 은어낚시 통신 이게 94년인데, 명제가 어떻게 바뀌었냐하면 인간은 벌레다, 하는 쪽으로 명제가 바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날 우리 문학은 인간은 벌레다 하는 쪽으로 나간 겁니다. 그래서 나는 관심이 없어요. 인간은 벌레다,라는 것은 역사, 사회적인 상상력에서 생물학적인 상상력으로 완전히 상상력이 바뀐 겁니다. 말하자면 DNA가 소설을 쓰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인간은 벌레다, 연어다, 메뚜기다, 모두 다 이렇게 밀고 나가지 않습니까. 이렇게 나갔을 때는 그 문학은 내가 관심이 없고, 그런 문학은 하나마나 취미로 하는 거니까 상관이 없고, 그렇게 나는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모더니즘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어요.
--> 왜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을 하십니까. ㅠ.ㅠ 그러나... 아이스크림으로 겨우 녹아든 선생님의 심기를 상할 용기가 아무도 없어서 더 이상의 질문을 못 했음. 결정적으로 이 얘기도 엄청 건질만한 건더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이 멘트에서 가장 득을 본 사람은 윤대녕씨다. 본래 3부에 정찬씨를 염두에 뒀는데 바로 윤대녕씨로 대체. ^^
연세가 상당하심에도 매력이 있다. 젊을 때는 한 미모(?) 날리셨으리란 결론을 작가팀에선 내렸음. ㅎㅎ 난 스스로 인정하지만 노소나 미추에 관계없이 말 잘하고 똑똑한 남자에게 약하다. 정말 뿅~ 가게 멋있는 할아버지. 대학 때 이분 강의를 청강으로라도 좀 들을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하지만.... 밥벌이에 직결되니 한국문학을 열심히 파고 있지... 이렇게 멋있는 강의를 하는 교수님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다른 분야에 집중을 했을듯. 그때 내 흥미는 제3세계와 신화 쪽에 몰려 있었으니까.
서울에서 열린 세계 시인 대회에 온 윌레 소잉카 보고 어머!어머! 하고 혼자 파닥파닥 뛰고 있다. 이건 제3세계 문학을 수강하지 않았으면 절대 그의 위치와 의미를 알 수 없었으니... 보람없는 시간은 아니었지. 근데 학점은 엄청 낮게 나왔다. 학점 평균 엄청 깎아먹었음. OTL
2009. 나중에... 다큐를 끝내고 난 다음에 표절 의혹으로 한바탕 평론계에서 회오리가 몰아쳤던 인물이라는 걸 알았을 때 조금은 씁쓸하기는 했지만... 말씀을 너무 잘 해주셔서 참 고마웠던 분. 이렇게 똑똑하신 양반이 왜 그런 시비에 말려들었는지 좀 의아하기도 했다. 당사자는 절대 부인했고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분이 평론계에 있어서 절대 강자라는 건 감안을 하고 사안을 판단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뒤늦게 알았을 때 머릿속이 나름 복잡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