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블로그에 공개를 했다가 블로그를 닫으면서 감췄던, 그때 만났던 작가와 평론가들의 인터뷰들의 녹취록을 여기에 다시 공개를 하려고 한다. 지금 이런 시기에 다 함께 꼭 봐야하는 기록이지 싶어서.
우리 전 세대에 어떤 일이 있었고, 우리가 민주화며 자유라는 걸 얼마나 힘들게 이뤄왔는지, 또 불과 1년 사이에 그 힘들게 쟁취한 것 중 얼마나 많은 걸 잃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05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기억하는 의미에서 녹취록에 달린 코멘트는 다 내버려두기로 했음. 2009년의 내 생각은 2009라는 표시를 한 다음에 덧붙이겠다. 짬이 날 때마다, 또 기운이 날 때마다 하나씩 가져오는 작업이라 많이 느릿느릿하긴 하겠지만. 끝까지 가봐야지.
들어가기 전에 뻘소리를 하나 덧붙이자면... 지금 정권에서는 알아서 기느라 다 커트될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시종일관, 4.19 가 망한 거 너무 아까워~ 박정희 별로 안 좋은 놈, 전두환, 노태우 진짜로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데, 나레이션 쓰면서 정말 속이 다 시원했다. 움화하하하.
광화문에서 열리는 8.15 행사를 찍어오라고 했더니 시청에서 이명박이 여는 8.15 행사를 찍어올 정도로 친한나라에 열혈 반노, 반열우당인 PD에 (나중에 알고보니 부친께서 전노시절에 한딱가리 하셨더라는... ^^;;;) 북쪽 지도자 동지와 한나라를 동격으로 보는. 반 열우긴 하지만 영원한 골수 반 한나라 메인 작가, 그리고 부산에 살면서도 민노당원인 부모를 둔 서브 작가의 환상적인(?) 결합.
내가 대본에 넣어놓은 게 편집에서는(김추자 간첩소동, 조정래 무혐의 사건, 박노해) 사라져 있고, 몇초도 안 되는 그림에 기어이 하고 싶은 소리를 우겨넣는 (조정래 고생한 사건, 신경림 시인 얘기 등~) 서로 간의 조용한 기싸움이 오갔던, 그렇지만 꽤 재미있고 나름대로 우호적이었던 작업이었다.
그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웃고 놀리는 여유도 있었는데... 2005년이니까 가능했지 지금은 그 논조로 방송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음. 일단 내 자신이 너무 퍽퍽해져 버렸다. 저 일당에 대한 인내심이 완전히 바닥나 버렸다고 해야하나... 여튼 이 3부작은 다큐로서는 드물게 막히는 것 없이 즐겁게 했고 내 새끼 중에 가장 사랑하고 뿌듯한 놈이기도 하다.
3D인 내 업종의 몇 안 되는 좋은 점 중 하나가 나처럼 정상적인(?)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교차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은 친분이 절대 없음에도 있을 수도 없지 불구하고 오히려 어정쩡한 지인보다 더 내밀하고 진솔한 얘기를 들을 수가 있다. 특히 이번처럼 역사성이 있는 다큐를 할 때는 휴먼 다큐와 또 다른 깊이있는 얘기를 들을 수 있어 좋음.
김지하
Q-당시 발표한 작품, 분위기
0041 그 당시 그 문단에 알려져 있듯이 황토길이라든가 이런식으로 저항적인 이미지가 부분적으론 있었지만은 전체적으로는 하여튼 여러 가지 계열이 혼란되 있었고 특히 강한게 초현실 주의적이었죠 그리고 그림시, 글자로 이렇게 그림을 무늬를 만드는 그림시, 형체시라고 하죠. 그런게 있었고 그중에 이제 예컨대 USA라는 게 가끔 나타나는데 그게 이제 좀 저항적인 이미지하고 연관되죠. 한마디로 말하긴 힘들어요. 그당시 나의 복잡한 머릿속을 반영하는거죠
Q-분위기, 반응
0049 재밌다. 기발하다 뭐 그런거죠, 깊이 감동하고 뭐 그런건 없고 기발하다. 해마있죠 바다에 있는거 그런 모양으로 포스터칼라로 썼습니다. 해마모양으로. 재밌단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 이상은 뭐.
Q- 사상계에 오적을 쓴 계기, 파장
0233 사상계는 친구가 편집장을 할땝니다 그때. 정치시를 하나 달라 재미난 정치시를 달라 그랬을 땐데, 내가 서울 문리대 연극반의 연출을 하고 있을 땐데 버스타고 대학을 가다 보니까 신민당 당시 야당 기관지에요 민주전선이라는데 조그맣게 요만하게 동빙고동 도둑촌이라고 해가지고 기사가 났어요
0313 국회의원, 재벌, 장차관, 장성, 이런사람들이 돈많은 사람들이 호화주택을 서로 같이 막 지었어. 따로따로 지으면 그게 공개가 안될텐데 현저한 유환이라고도 그러고 과시적 유환이라고도 그런, 돈있으면 뽐내고 싶어하는 그런걸로 주위에서 욕을 먹었죠.
0348 도둑놈들 촌, 소촌, 도둑촌, 그기사를 보고 이게 정치시로써 좋겠다. 선택을 했고 나는 학교다닐때부터 판소리를 현대화 해보자 하는게 꿈이었으니까 판소리가락을 현대화하는 내용을 그 도둑질하는거 부정부패 비리랑 잡아봐야겠다 그래가지고 꼭 사흘밤 꼭 사흘동안 썻어요. 믿질 않는데 꼭 사흘이에요 그리고 앞으로 뭐 이렇게 될꺼라는 둥 이것 때문에 혼이 날거라는 그런 생각은 아예 없었어요
0437 그냥 그 자체 시가 후라이때리고 과장하고 이런것에 대해서 재미나가지고 스스로 낄낄대고 웃고 그렇게 쓰면 신명이 지폈다고 그러나 신명. 나는 몰라 그게 과장이 굉장히 심한데 연못속에다가 뭐 붕어들을 얼어죽지 말라고 온도계를 놓고 집안에다 에스컬레이터를 놓고 이런 얘기가 많아요. 이 전부 과장인데 난 가보질 않았거든.
0516 근데 정보부에서 너 이 새끼 이거 과장이 틀림없는데 가서 확인해보고 와가지고 과장한거 조금만이라도 있으면 넌 죽는다 그리고 네평을 읽고 동빙고동 갔어. 아 이제 난 죽었구나, 가보질 않았으니까. 순전히 신명이 지펴가지고 과장을 한거야 아 이 네평을 다 돌아봤는데. 이야 이 김지하 애국자다.이거야 그럼 그새끼들 다 때려죽여야 된다. 정보부애들 불만이 많아
0551 아 그래서 그말을 듣고 이 사회, 이 나라에 대해서 큰 절망에 빠졌다구. 그게 사실이라면 그게 어떻게 돼 차지철이네 집에는 즤 노모가 한강을 바라보게 한다고 에스컬레이터를 만들어가지고 4층인가까지 올라가도록 했고. 실제로 연못속에 온도계를 넣엇대요 그래서 내가 놀래버렷어. 내가 놀래버렸어. 그게 제일 기억에 남는거야 깜짝 놀래
--> 신이 내린다는 게 바로 이런 거겠지? 이 정도로 극적이진 않지만 비슷한 경험을 했던 입장에서... 나도 이때 소름이 잠깐 돋았다.
Q-당시 정보부에 끌려갔을때 상황
0641 끌려갔죠 아까도 말씀드렸다 시피. 이사람들이 가서 확인해보고 진짜니까, 그때는 내가 이제 대접을 받았지요 근데 내 목적은 그대 야당이 그 대통을 안하고 있었어요 . 야당하고 박정희하고 싸움을 붙일려고 한거거든, 나오자마자 마산요양원에 있었으면 좋겠다이래가지고 짐싸가지고 오너라해가지고 석방이 됬죠 잠시. 나와가지고 신민당이름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을 해버렸어요. 금방 들어가지, 그래 한밤중에 잡으러 왔더라고 거기서 야당하고 대 전쟁이 벌어진겁니다
0742 왜그렇게 했느냐 난 박정희를 끝내야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떻게든 싸움을 붙여야된다 지금생각하면 너무 하지 않았느냐 그런 사람들도 있어 내가 생각해도 환갑이 넘고 나니까 왜그렇게 지랄을 했던고 하는 생각이 들지만은 그당시로썬 그것도 하나의 투쟁이죠 그렇게 됐어요 그 뒤부턴 신문마다 이제 부패문제가 터지고 그게 바로 베트남 참전댓가로 들어온 외화들이거든요 달러들. 엄청나게 달러가 많이 들어왔어,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그때부터 경제적으로 좀 풍요로워 집니다. 그달러를 그런데다 써먹었다니 그건 맞아야 된다고 그런 결론이죠.
--> 분노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나를 포함해서. 그러나 행동하는 사람은 적다. 그런 면에서 존경. 작가는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은 출연자를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기 싫은 대상에게 억지로 정을 붙이는 것은 고역인데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과 사랑에 빠지고 있다. ㅎㅎ
Q-사회적으로 그런 분위기에서 문학을 한다는 의미?
0906 나는 아까도 얘기했다시피 고등학교, 대학 초년까지도 사회부 전후까지도 초현실주의였어 근데 그안에는 생명의 문제가 그때부터 한 열일곱살때부터 있었어요 지금와서 내 생명이 바깥으로 나와있지만, 뭐 그런때고
0933 516군사쿠테타가 419의 반동으로 일어났고 그래서 군사정변이나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이 여기서부터 시작될땝니다. 그때부터 우리가 4월혁명을 재평가 하면서 민중주체의 민족문학, 민중주체의 민족예술, 그리고 변혁, 사회변혁 이런문제들을 주제로 해서 천구백육십이년, 삼년경부터 그게 시작됩니다. 그 이전에 물론 신동엽같은 시인이 있죠. 그러나 대체로 우리때의 민족문학 민중문학, 변혁을 향한 문학이 시작되죠.
1029 그게 그때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일회담 반대 한일 행미행정협정촉구 시위 그런 것이 있엇고 그뒤로 한참 넘어가면 삼선개헌 반대가 있고 그뒤로 또 민주화운동이죠 민족문화운동이 있고 탈춤, 판소리, 민요 이런것들이 확대되고
1113 이용이라기보다 이게 그러니까 간단히 해서 표현에 있어서는 민족주의자고 내용에 있어서는 갈래가 여러 가지 사회주의 좌익 신좌익 있죠 마르쿠제라든가 에릭프롬이라든가 이런 신좌익, 그다음에 모택동사상도 많이 들어왔어. 또 우리나라 자신의 개혁적 사상들 진보주의 이런것들이 여러 가지 복잡해요, 불교적인 것들도 있고 가톨릭적인것도 있고 그런 여러 가지가 얽히면서도 우리 민중을 주체로 하는 민족통일 민족 개혁, 제3세계 운동 예술 운동 이런게 모토화되있었죠 그리고 그당시에 외국자본에 의해서 공장 중공업 근대화하면서 시골에 있는 젊은 노동력을 막 끌어들이잖아요 노동자들 막 끌어들여서 아주 값싼 노임으로 그렇게 했죠 문제의 초점이 점점 그쪽으로 옮겨가죠.
1237 자유민주주의 과 함께 민생 사회보장 평등 고용문제 농민들문제 이렇게 옮겨가죠
Q-저항문학의 상징으로 많은 고통을 겪으셨는데 참기 어려운 기억?
1314 상징이라고 하는 것은 난 피하고 싶어요 반납하고 싶으니까 도로 가져가시고
--> 이때의 웃음. 농담처럼 말했지만 차라리 그게 더 큰 웅변이었다.
그 한번만 더하다가는 못살게. 제일 고통스러웟던 것은 정신착란이죠. 독방은 원래 5년인가이상은 행정법에 못두게 되어있어. 간첩들도 그래서 여러 가지 조치를 한다는데 그건 잘 모르겠고 나는 칠년을 있으니까 벽이 들어오고 천장이 내려오고 아주 답답하죠 소리지르고 싶고 벽에 테레비모니터가 있어가지고 그거 다 정보부로 연락이 되죠 그럼 내가 조금만 죽겠다고 그러면 와서 각서 쓰라고 항복문서, 그럴순 없는거고 아주 그때 제일 혼났어요,
--> 고은 선생 인터뷰 때 들은 얘기와 종합해서 판단할 때... 한국의 감옥은 당시 주적이던 소련의 시베리아 정치범 수용소보다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래서 욕하면서 닮는단 소리가 나오겠지.
그래갖고 그때 내가 시작한게 생명이라는게 뭐냐 이런 감정이 왔었고 그래서 난 그때 카톨릭이었는데도 아무리 기도해도 안되 그래서 가부좌틀고 백일참선을 들어간거에요. 근데 꼭 백일만에 박정희가 죽었다고. 그러니까 백일기도 드렸다고 그러는데 기도할만큼 내가 독종은 아니고, 그게 제일 괴로웠죠
1503 그러진 않았어 나 그렇게 독한사람은 아니야
--> 정말 그때 박정희 죽으라고 빌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 대단하십니다. 같은 상황이면 난 모든 기를 그쪽에 모았을 텐데. 그래서 나는 시를 못 쓴다. 근데 거기엔 불만 없다. ㅋㅋ
Q-언어, 국경을 넘어 문학의 연대가 가능?
1534 물론 가능하고 또 가능하지 않으면 가능하게 만들어야합니다. 두가지 얘기만 할께요 하나 러시아의 보르고진이라는 이론가가 있다고 하는데 나도 확실히는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그사람 연구내용은 캄차카반도의 이떼메이라는 부족의 언어하고 스페인 바스크지방, 지금 분리주의 운동하죠 바스크지방의 토착적인 언어하고 아무런 역사적인 연락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거의 비슷하다고 그래요 왜이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뭘까. 그건 참 우주진화사 인류진화사 전체의 안에 들어있는 인간의 의식, 정신의 발전사하고 연관이 안되겟어요? 그 보편적인 식에 있어서, 저 끝에서도 A를 A라 부르고 저 귀퉁이에서도 A를 A라고 부르고 그거나 마찬가지로
1647 문학도 완전히 바다로 떨어진 섬들과 섬들사이에도 똑같이 불의에 대해서 독재에 대해서 억압이나 착취에 대해서 또는 전혀 거짓에 대해서 반대할수 있는 자유가 있고 반대하는 것이 문학입니다. 그문학에 대한 똑같은 관점이 문학은 그런데 대해서 반대해야 된다는게 아무리 먼 섬에서라도 서로 같은 생각을 할수 있는게 아니냐 바스크지방하고 캄차카처럼 말입니다. 근데 다 뉴스를 보고 있고 소식듣는 일본이나 케냐에서 그거야 고맙죠 굉장히 고맙지만은 ,문학에 있어서 연대라는 것은 오히려 그 언어의 자연발생적인 동일성보다 훨씬 자각적이고 또 의무까지도 가는게 아닌가 그런데 하나 걱정은 모르겠습니다
1801 우리가 외국에 대해서 우리 문학이 그렇게 활발히 비판연구되고 있진 않은 것 같아요
Q-장르문학 아드님이 쓰시는 판타지문학을 어떻게 보세요
1833 나는 잘 모르겠구요 그친구가 쓴 논문을 봤는데 하나 게임이론에 토대를 둔 소설문학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유심히 봐야될거 하나 있어요 중심이 없다는 것, 즉 통시적 서사구조가 아니고 작가가 입을 벌릴때 시간이 시작해서 그냥 죽 작가에서 흘러가는 그런시간이 아니고 프레야에 의해서 여기서 저기서 다양하게 각기각기 시간이 일어난다는거 이런 구조를 기본으로 해가지고 서사방법이 전혀 다르죠
1923 그래서 환상소설이나 에스에프나 이런 인터넷소설같은 것이 시작한다면 그것이 이제까지 우리가 문자로 또는 정상적인 실존적인 문학으로써 표현하기 힘들었던 여러 가지 오묘하고 복잡하고 개인적인 차이가 많은 그러면서도 서로가 연관되는 그런 상당히 도달하기 힘든 문학적 수준을 표현할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더 어려운 분야를 손을 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친구보다도 전체적으로 봐서는 그쪽이 아날로그 문학을 흡수해야 할겁니다. 유비쿼터스 단계에 가면은 경쟁력이 종다양성으로 번지기 때문에 수많은 종류의 매혹들 가운데 얼른얼른 선택하는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연히 영화가 점차적으로 발전하면서 뭘끌어들이죠? 색채를 통해서 회화를 끌어들이고 그래서 다 죽었잖아요, 또 드라마를 통해서 연극이나 문학을 끌어들이고 또 토키를 통해서 음악을 끌어들이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 디지털이라는 매체가 고화질로 요구하고 여러 가지 변화를 겪으면서 유비쿼터스 단계에 가면 아날로그 예술들의 그 나름의 깊이, 그나름의 오묘한거를 더 가져다가 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 다들 내가 왜 이걸 질문에 넣었는지 모른다. ㅋㅋ 순수문학에서 냉대받는 장르문학에 대한 인식을 소위 거두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이런 질문을 곳곳에 던졌는데 연세답지 않게 아들때문에? 상당한 매체 이해력을 가지신듯. 이분보다 젊은 김훈 선생의 경우는 극히 반대의견. 그것도 재밌으니 나중에 올리기로 하고...
Q-박경리 선생님을 사위로서가 아니고 문학인으로 평가.
2154 작가에서 있어 물론 생활과 예술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작가에게 있어서 생활을 그렇게 중요시 하질 않습니다. 문제는 작품의 성취죠 작품의 성취로 본다면 우리 빙모님 경우에는 김약국의 딸들하고 토지는 완벽한 작품이죠 그리고 사실 그 토지에 난 완전히 손을 들었으니까 왜냐하면 내가 끝끝내 지금도 그렇고 추구하는 것이 불교를 배경으로한 동학이거든요. 불교를 배경으로한 동학, 학생시대부터.
2242 근데 그 제2차 바티칸 공회라는 공회를 거치면서 개인의 내면적 구원과 평화, 내면적 평화와 사회적 혁명을 다 지켜나갈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게 카톨릭이었기 때문에 1962년에서 64년 그래서 내가 가톨릭에 들어갔던건데 원래 우리 집안은 동학 근데 그 동학과 불교의 관계를 기본뼈대에서 그렇게 훌륭하게 묘사할줄은 깜짝 놀랬죠 뭐 최고작
2325 그러니까 지금 말하는 우선 이것이고 그것이 다른게 아니고 사관아닙니까. 역사문제를 다룬 그것도 역사문제인데 역사문제를 다루는 작가에게 있어서 역사 사학자보다 훨씬 더 깊고 넓고 복잡하면서도 일관성있고 감동적인 사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관이 불교밑에 있는 동학사관이다 이거죠 외래적인것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죠 그작품보면 그런 것이 저로서는 현대작가들한테 잘 없는 그런게 아니냐
Q-70년대를 한마디로
2425 한마디로, 한마디로 고문이죠. 왜냐하면 내가 오적때 감옥에 들어가니까 옆방에 웬 할아버지가 있어, 옆옆방인가 그래서 당신은 왜 들어왓냐고 자꾸 물어봐. 말을 안하다가 나중에 말을 하는데 그대 물론 쌀생산량이 적었으니까 하여튼 쌀을 많이 생산한다 그래가지고 통일벼,라는 종자가 있어요 이걸 뭘 강요했어요 정부가. 그러니까 통일벼라는건 수입도 얼마 안되고 통일벼가 찰지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농민들은 못살죠. 제일 좋은쌀은 아끼바리라는건데 아끼바리대신 통일벼 자꾸 심으라고 하니가 화들이 났지. 아주 원래 토박이 농민들이. 근데 그때 농촌지도소 라는게 있었어요. 농촌지도소 소장이 맨날 통일벼 심으라고. 대낮에 논둑길 가다가 저쪽에서 농촌지도소 소장이 오는데 이양반 술이 취했어 영감이, 야 통일벼도 쌀이냐 그랫다고. 바로 그거 박정희 비판 아니냐, 그래서 반동법으로 들어왔어 그래서 내가 그얘길 듣고 가만히, 이거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그게 뭐요 내가 가만히 두고 두고 생각해봣어 그게 뭐냐고 고문이야 고문. 아 아끼바리좀 심으면 어때.
2620 그러니까 한마디로 그거여 통일벼도 쌀이냐. 그 외 막 걸린 반공법 굉장히 많았어. 술쳐먹고 에이 18 그러면 그 체제 뭐야 하여튼 그래서 북한체제를 거꾸로 옹호하는 그런.
김지하 오적이 안나왓으면 딴사람이 오십적을 썼을 거야
--> 마음이 아팠다. 술 한잔 마시고 한마디 한걸로 감옥에 끌려 들어왔던 그 촌로는 그 이후에 어떻게 됐을까? 근대화 혹은 산업화라는 것은 어느 나라나 예외없이 농촌의 희생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거라지만... 그냥 막연한 수치와 달리 이런 피부에 닿는 얘기는 가슴이 아프다.
그런데... 필요한 부분만 질문하다보니 오적 필화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이 묶여서 질문 들어갔다. 모른 게 아닌데 제대로 조사고 안하고 왔다고 혼났음. ㅠ.ㅠ 고은 선생 편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고은 선생님도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YH 사건 무시하고 김대중내란음모사건 바로 질문한다고 노하셨음. 모르는게 아니라... 그 부분은 저희한테 필요가.... 없거든요
2009.
요즘 시대를 보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책 제목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90년대 이후의 문학을 얘기할 때 평론가들이 사회에서 개인으로 관심이 돌아간 시대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데 한 10년 쯤 뒤에 한국 문학사를 다시 정리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면 2008년부터를 개인으로 회귀했던 문학적인 관심이 다시 사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여전히 개인에게 천착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소한의 감수성과 양심이 있는, 김윤식 선생님의 말을 빌려, 벌레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아플 것 같다.
70-80년대에 어렸다는 걸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는 모양이다.
여기에 다 쏟아 부어서 문학은 더 이상 하고 싶은 얘기가 없다고 믿었는데 나중에 4부에 해당하는 얘기를 쓰고 싶다.
그때의 화두는 이 시간, 그때 당신은 무엇을 하고 계셨었나요? 가 될까?
정권에 바뀌면 엄청나게 많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나올듯. 주변에 보면 나중에 자료 찾기 힘들 수 있다고 벌써부터 영상자료 찍어놓고 모으기 시작한 감독들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