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에 예전에 한경 와우 개국 이벤트 할 때 같은 팀으로 일했던 디자이너 ㄱ씨와 오랜만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2년 만인가? 만날 장소를 고르다가 결국은 논현역이 직장인 ㄱ씨 근방으로 약속을 잡았다. 보통 뭐 먹을 때는 내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날은 그녀의 영역이니 안내를 받아 졸졸졸 따라다니는 특이하면서 즐거운 날이었다. ㅎㅎ
일단 저녁은 강남 교보타워 사거리에 있는 중국집 과문향. 화상이라고 써붙여 있지는 않은데 중국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주문을 받는 사람들 중에 젊은 남자 하나를 제외하고는 한국말을 못 알아들어서 손짓 발짓을 동원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음.
그렇지만 그 의사소통의 불편은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한다.
일단 요리 가격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싸다. 그냥 중국 수입상에 가도 4~5천원은 줘야할 엄청 커다란 청도 맥주가 6천원. 만원으로 특가 제공하는 꿔바로우(=탕수육 ^^) 과 같은 요리가 3종류 있고, 매일 스페셜이라고 요일별로 2만원에 육박하는 요리들을 만원 초반대에 내놓는 게 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가격 할인과 상관없는 요리들도 다른 곳의 60% 정도의 가격. 전가복이 45000원인 거 보고 눈물 흘릴 뻔 했다. 요리는 10년 전 가격이라고 하면 되겠음.
앉으면 이렇게 세팅을 해줌.
자스민 티야 뭐... 색깔이 안 나오면 찻잎을 계속 보충하는지 씁쓸밍숭맹숭한 맛. -_-
저 땅콩은 진짜 안주로 환상적인 맛이다.
둘 다 별로 술생각이 없었는데 땅콩을 먹자마자 "맥주 한잔만 하자" 소리가 저절로 나왔음. ㅎㅎ
금요일 스페셜이 라조기가 아니었다면 그걸 택했겠지만 둘 다 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통조림이 아닌 것 같다는 동파육을 시켰다. 동파육과 맥주 사진은 분명히 찍었는데 중간에 메모리 카드가 떴는지 뭔가 오류가 생겨서 카메라 본체 메모리에 저장이 되어 버렸다. -_-; 케이블 찾아서 연결하기 귀찮아서 동파육과 칭따오 맥주 사진은 생략.
2년 전인가 3년 전에 금보석이 폐업한 이후 제대로 만든 동파육을 찾기가 하늘에 별따기가 되었다. 신라호텔은 너무 비싸 우리 같은 서민에게는 엄두도 안 나고 다른 곳은 내가 중국요리 재료상에 가서 사다가 데워 먹는 것보다 못한 통조림들이 대다수라 몇년 간 맛을 못 봤는데... 이 동파육 제대로 찌고 삶아낸 진짜인 것 같다. ㅠ.ㅠ 이 정도 맛이라면 통조림이라도 기쁘게 속아줄 수 있다는... 아쉽다면 청경채가 아주 조금 숨이 덜 죽었다. 싱싱한 아삭함과 익은 맛의 절묘한 선에 걸쳐야 하는데 거기에 덜 미쳤음. 그래도 맛있는 동파육에 용서~ 동파육 19000원.
동파육을 먹고 식사로 탄탄면과 소룡포를 시켰다.
먼저 나온 게 탄탄면 (=단단면)
사실은 저 빨간 게 잔뜩 얹어져서 제법 예쁘게 나오는데 동파육을 이미 한접시 해치우고도 전혀 줄지 않은 식욕을 가진 두 여인네는 열심히 비벼놓고 나서야 사진을 안 찍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
모양은 별로지만 그래도 기록 차원에서.
탄탄면은 일본식으로 국물이 많은 것만 먹다가 이렇게 비빔국수가 나와서 처음엔 좀 당황했다.
청경채 두 조각과 양념장, 면으로 간단하게 구성됐는데 처음에는 맵지 않지만 은근히 점점 매워지는 알싸한 맛. 느끼한 요리 먹은 뒤에 식사로 괜찮은 것 같다. 6천원.
소롱포와 소롱포를 찍어먹는 홍초
역시 맛있는 소롱포에 굶주려 있던 처지라 기대를 엄청 갖고 주문을 했는데... 앞서 요리들이 만점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소롱포는 그럭저럭 먹을만 하네~ 정도.
내가 생각하는 소롱포의 포인트는 피를 살짝 찢었을 때 죽 흘러나오는 그 뜨겁고 감칠맛 나는 육수이다. 그걸 후루룩 먹고 나머지 소와 피를 먹는 게 백미이고 즐거움인데 일반 만두처럼 속이 꽉 차고 육수는 별로(=거의) 없는 좀 정체성이 모호한 구성.
만두라고 생각하고 놓고 봤을 때 괜찮은 맛이지만 소롱포로 봤을 때는 자격 미달.
그냥 고기만 넣은 소롱포와 새우를 같이 넣은 소롱포, 두 종류가 있는데 우리는 8500원짜리 더 비싼 새우가 들어간 걸 선택했다. 이건 획기적인 변화가 있기 전에는 비추.
그래도 전반적으로 양도, 질도, 가격도 만족스러운 곳이다. 위 가격에 10% 세금 따위는 붙지 않음!!! 근데 요리는 싼데, 면과 만두를 포함한 식사류는 서울 강남의 일반적인 가격대이다. 면 먹을 돈에 몇천원 더 보태서 요리를 먹고 그걸로 배를 채우는 게 남는 장사라고 권해주고 싶음. 나도 다음에 가면 그럴 예정이다. ㅎㅎ
많이 시켜도 허전하고 계산서 받으면 눈알 튀어나오는 게 강남권의 중국집이라는 선입견을 해소시켜주는, 강남권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든 중국집이다. 임대로 엄청 비싼 동네일텐데 망하지 않도록 여기저기 광고를 해서 많이 먹으러 보내야겠다. 이달 말에 동생이 오면 여기 가서 전가복이랑 다른 요리들 먹어봐야지~ㅇ
이렇게 먹고 바로 대각선 방향에 있는, 무슨 벌집이나 화성을 무대로 한 영화의 외계인이 사는 세트처럼 생겨서 전혀 땡기지 않는 건물에 디저트가 맛있다고 ㄱ씨가 가자고 해서 또 쫄래쫄래. 그곳이 바로 테이트 어반이었다.
사람이 많아서 내부는 찍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좀 보기 드문 높은 천장을 가진 역시 내 눈에는 좀 독특한 인테리어였는데, 디자이너인 ㄱ씨는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걸 제외하고는 의자나 다른 인테리어 재료는 비싼 걸 쓰지 않았다고 간단히 견적을 냈다. ㅎㅎ;
저녁이고 둘 다 카페인에 약해서 맛있어 보이는 케이크와 -비가 오긴 하지만- 밀크빙수를 먹자고 하고 나는 자리를 잡고 ㄱ씨는 주문으로 분담.
그런데... -_-;
보다시피 와플이다.
사연인즉, 머리로는 분명히 밀크빙수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입에서 나온 단어는 와플이었던 모양.
본인이 받아온 영수증에 확실히 와플이 찍혀 있고 이건 주문 들어가면 바로 굽는 시스템이라 취소도 안 되는 거라서 그냥 접수.
사진에서 보다시피 사이즈도 꽤 크고 또 두꺼워서 와플을 받자마자 함께 주문했던 케이크는 싸달라고 해서 따로 챙겼다. 아무리 우리 둘이 식신이라지만 배터지게 중국음식 먹고 와플에다 케이크까지 먹는 건 무리. ^^;
거제도에 있는 전용 농장에서 유자와 블루베리 등등을 키우고 있어 여기서 파는 그런 과일 아이스크림은 다 전용 농장 제품을 이용한다고 함. 저런 얘기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어쨌든 바닐라처럼 보이는 유자 아이스크림은 유자 향만 들어간 게 아니라 유자껍질도 씹히고 꽤 실한 유자 맛이 나기는 했다.
둘이서 엄청 노력했지만 아이스크림과 과일만 다 걷어먹고 와플은 반 남겼음. 아까웠다. -_-a
가격은 12000원으로 강남권에 이 정도 와플이 이 가격이면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됨.
친근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건물이지만 내용물은 꽤 만족.
주차는 1시간만 무료.
근데 난 저렇게 아이스크림 얹은 디저트 와플보다는 깔끔하게 버터랑 메이플 시럽 발라 먹거나 베이컨 같은 걸 곁들여서 담백하게(^^;) 식사로 먹는 와플이 더 좋음. 예전에 미국에 동생이 살던 동네에 와플 전문점의 두툼한 오믈렛과 소세지 등등을 곁들인 와플 브런치 정말 환상이었는데. 정말 거긴 먹다먹다 지쳐서 늘 눈물을 머금고 남기고 오곤 했다. 갑자기 먹고 싶군.
그나저나 ㅅ님이 블로그에 와플~와플~ 노래를 하던데 본의 아니게 염장샷이 되어 버렸다.
염장질하려고 먹거나 사진 찍은 게 아니라 우연의 일치라고 양심선언하겠음. ^^
그리고 그쪽 블로그에 뽐뿌질 받아서 나도 오늘 회의 나간 김에 현대 들러서 성게알 사와서 먹었으니 뭐 피장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