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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이민

by choco 2009. 9. 9.
작년과 올해 내 주변에서 취업이나 학업을 이유로 떠난 사람이 학교를 졸업한 이후 최고로 많다.  

학교 다닐 때나 졸업 직후 근방에서 나간 친구들은 정말 학업이었고 거기서 현지인 만나 결혼한 걸 제외하고는 다 들어왔지만 이번에 나간 사람들은 전부 공부한다는 게 좀 우스운 나이들.  사실상 이민이다.

돈도 좀 있고 연고도 있는 사람들은 캐나다나 미국으로, 그게 좀 떨어지는 사람들은 동남아나 뉴질랜드로 날았는데...  나중에는 어떨지 몰라도 지금은 정말 후회가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한다.  뉴스 보면 여전히 열 받지만 안 보면 그만이고 (이건 너무 무책임하잖아!) 자신이 얼마나 피폐하고 여유없이 살았는지 객관화가 되니까 서늘해진다는 얘기를 누가 했는데 정말 동감. 

요 1년 반동안 내가 얼마나 비좁아지고 소위 똘레랑스가 없는 편협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 실감을 하는 터라... 더더욱 와닿았다. 

훌훌 떠날 상황이 아니고 걸리는게 많다는 핑계를 대지만 냉정하게 얘기하자면 아직은 떠날 용기가 나지는 않는다는 것. 더불어 나갔을 때 내가 이 정도 대접(?)을 받으면서 이 정도 생활수준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는 거겠지. 

조기 유학 붐이 본격적으로 일기도 전에 1세대로 나가 많은 시간을 해외에서 보낸 동생은 다음 직장을 미국이나 캐나다로 잡아서 아예 영주권을 따볼까 고민하고 있던데 솔직히 많이 부럽다.  내가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편하게 보낸 시간동안 물설고 낯설은 곳에서 영어 배우고 적응하느라 고생한 대가니까 질투까지는 못하고.  나도 어떻게 빌붙어 볼 수는 없을까 하고 결단을 내리고 가라고 충동질하는 중.  ^^;  

이번 정권이 아륀지~를 외칠 때부터 생각한 건데 정말 영어가 일상화가 되면, 좀 미안한 얘기지만 아주  정말 애국심이 있는 극소수나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어떤 상황이 있지 않는 한 똑똑한 이공계들은 한국에 하나도 안 남아 있을 걸. 

IMF 터졌을 때 삼성 다니던 친구 하나와 아는 사람 하나가 나가란 소리도 안 했는데 (상당히 촉망도 받았음) 사표 내고 미국으로 취업 가서 지금 시민권, 영주권 받아서 연봉 10만불 엔지니어로 해피해피하게 잘 살고 있다.  한국에 그대로 있었으면 10만불은 고사하고 지금 언제 짤리나 덜덜 떨고 있었겠지.  학벌은 별반 좋지 않지만 역시 이공계인 ㄷ군도 작년에 나가버렸고. (내 컴퓨터가 걔 휴가 들어올 때까지 버텨줘야 하는데... ㅠ.ㅠ)

근데 전혀 나갈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나가는 건 좀 기분이 묘하네. 난파선에서 뭐가 빠져나간다는 느낌이랄까.  동생 친구 중에 잘 사는 애는 아예 부모가 캐나다에 집까지 사줘서 조카랑 같이 나가 공부하면서 영주권 받으려고 한다는데 그건 샘이 좀 많이 남.  저 나이에 부모가 사준 집에서 학비 받아서 공부를 할 수 있다니.

여기 떠나서도 일년에 천오백만 벌 수 있으면 나도 태국으로 뜨련만. 한국을 뜨면 일년에 오백도 벌기 힘든 처지라... 은퇴의 그날을 위해 열심히.  미국 교포가 두번 꼬였었는데 그때 그냥 넘어갈 걸 그랬나.  ㅎㅎ;  여하튼 나도 이민 갈 거라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